[미식기행 | 명태]
“일인다역! 생태찌개에 술잔 돌고 황태해장국에 속이 풀린다”
입력 : 2017.02.20 16:41
별명만 30여 가지… 다양한 가공방법, 요리로 즐기는 국민 생선 인제 용대리 황태, 포슬포슬한 식감 으뜸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되고 시가 되고 / 약이 되고 안주되고 내가 되고 니가 되고 / 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 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 /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하고 괴기는 국을 끓여 묵고 /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 명태 / 그 기름으로는 또 약용으로도 쓰인데제이요”
가수 강산애가 부른 노래 ‘명태’는 제목 그대로 ‘명태 찬가’다. 노래 가사에 따르면 명태는 그야말로 ‘만능 생선’이다. 예부터 ‘맛 좋기로는 청어요,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명태는 흔하기도 흔하거니와 대가리에서 꼬리지느러미, 뼈, 눈알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내어주며 식탁과 술상을 넘나들며 아낌없이 제 한 몸 바치는 ‘국민 생선’이었다.
2016년,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
명태(明太)라는 이름에 대한 유래는 설왕설래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조선시대 말의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쓴 <임하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함경북도 명천에 사는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가 이 생선을 잡아 고을 군수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군수도 이름을 몰라 ‘명천(明川)에 사는 태(太)씨가 잡았으니 명태라 부르라’고 해서 명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생선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해서 명태라고 불렀다거나 명태의 간으로 기름을 짜 등불을 밝히기도 해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우리나라 바다의 ‘어류 지도’가 바뀐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갈치, 정어리, 쥐치 등의 한류성 어종이 많이 잡혔지만 현재는 고등어, 멸치, 오징어 등의 난류성 어종이 많이 잡힌다. 대표적 한류성 어종인 명태도 우리나라 해역을 떠나 북쪽인 러시아 바다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 오래다.
명태는 1980년 초반부터 1990년대까지 16만여 t이 잡히면서 동해안 수산자원의 3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어획량이 급감하기 시작, 2015년엔 겨우 3t이 잡혔을 만큼 이제 국내산 명태는 찾기 어려워졌다.
해수의 온도만큼이나 명태 어획량을 줄어들게 한 것은 1970년대에 명태 새끼인 노가리 어획을 허용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명태잡이가 극성하던 1970년대 후반, 남한 명태 어획량의 80% 이상은 다 자란 명태가 아닌 새끼 명태인 노가리였다. 때문에 그때 명태의 씨가 마른 것도 어획량 급감의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산 생태를 수입해 찌개나 탕으로 많이 먹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이유로 요즘 우리가 먹는 명태는 생태보다는 러시아산이나 원양산 동태가 더 많다.
그런데 국산 명태가 돌아올 조짐이 보인다. 해양수산부가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해수부는 자연산 어미 명태에서 수정란을 확보해 치어를 생산했고, 이 치어를 다시 어미로 키워서 다시 수정란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가 순항한다면 내년 정도면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양식한 생태를 먹을 수 있게 된다.
명태는 참으로 이름이 많다. 잡는 시기나 장소, 가공법 등에 따라 부르는 별명이 30가지가 넘는다.
3~4월 봄에 잡은 명태를 춘태라 부르고, 음력 4월에 잡은 것은 사태, 가을에 잡은 것은 추태라 부른다. 또한 동해안에서 잡은 것을 진태, 강원도에서 잡은 것은 강태, 강원도 중에서도 간성 앞바다에서 잡은 것은 간태라고 부른다. 근해에서 잡은 것은 지방태, 일본 홋카이도에서 잡은 것은 북양태라 부른다.
가공방법에 따라서 구분하면, 막 잡은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소금에 절인 것은 간태라 부른다. 반 건조해서 코를 꿴 것은 코다리라 부르고, 완전히 말린 것은 북어라 부른다. 배를 갈라서 소금에 절여 넓적하게 말린 것은 짝태, 겨울바람에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 만든 것은 황태라 부른다.
성장정도에 따라 어린 명태를 노가리, 또는 아기태라 부르고 크기가 작은 어른 명태는 왜태라고 부른다. 이밖에도 무두태, 백태, 먹태, 그물태, 낚시태, 막물태, 꺽태 등 명태를 부르는 이름은 많고 많다. 요즘에는 농담조로 ‘귀한 명태’라고 해서 ‘금태(金太)’라 부르기도 한다.
명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먹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복을 기원하기 위해 믿는 신앙, 즉 기복신앙(祈福信仰)과 연관된다. 집이 이사하거나 새로 문을 연 가게에는 어김없이 북어를 걸어두는 것과 전통혼례상이나 제사, 고사 등에 명태를 올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명태는 암컷 한 마리가 10만 개에서 많게는 100만 개 알을 낳는다. 덕분에 신혼부부에게는 훌륭한 자녀를 많이 낳고 자손들에게는 큰 부자의 복이 깃들게 해 달라는 뜻으로 혼례상에 명태를 올렸다. 흔히 우리가 ‘노가리 깐다’는 말을 하는데, 이 또한 명태가 알을 많이 낳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수십 가지 이름만큼이나 명태로 만드는 요리도 많다. 흔하디흔했던 명태는 서민에게 귀하게 쓰였다. 임진왜란 이후 함경도와 강원도 사람들은 명태를 잡아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백성들은 명태를 즐겨 먹었다. 명태살은 전으로 부쳐 먹고, 알은 명란젓, 창자와 내장은 창란젓으로 만들어 먹었다. 말린 북어는 술 먹은 후 쓰린 속 달래는 해장국으로 만들어 먹었다. 김장김치에도 명태를 넣었다. 젓갈을 많이 쓰는 서해와는 달리 동해안 지역에선 젓갈 대신 명태를 김장김치에 넣음으로써 젓갈 역할을 했다.
또한 동해 북부 지역에서는 명태로 발효음식인 식해를 담가 겨우내 반찬으로 먹었다. 뿐만 아니라 명태의 모든 부위는 알차게 이용된다. 눈알은 따로 볶아서 술안주로 먹고, 껍질은 쪄서 쌈을 싸먹는다. 창자는 창란젓, 아가미는 아가미젓, 알은 명란젓 감이 된다.
이렇게 백성과 밀접했던 만큼 명태가 등장하는 속담도 많았다. 강원도 지역에는 ‘여름에 명태나 도루묵, 양다리가 개략이면 흉년’이란 속담이 있다. 여름에 명태나 도루묵이 많다는 것은 바닷물이 차다는 말이고, 이는 곧 그해 농작물이 냉해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식은 밥이 밥일런가, 명태 반찬이 반찬일런가’란 속담은 명태 반찬이 얼마나 흔한 반찬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몹시 인색한 사람의 행동을 조롱할 때는 쓰는 ‘명태 만진 손 씻은 물로 사흘 동안 국을 끓인다’는 속담도 있고, 변변치 못한 것을 주면서 큰 손해를 입힌다는 의미로 ‘북어 한 마리 주고 제사상 엎는다’는 속담도 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는 명실상부 황태의 고장이다. 6·25전쟁 이후 인제로 내려온 함경도 원산 출신의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만들어 먹던 노랑태(황태)를 만들기 위해 원산과 비슷한 겨울 날씨를 가진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진부령, 미시령을 거쳐 가장 적합한 장소인 용대리에 황태덕장을 차린 것이 그 유래라 한다.
1961년 겨울, 얼음을 얼려 동해안에 공급하던 최귀철씨 형제가 함경도 출신의 거래처 사람의 말을 듣고 처음 명태를 얼려 판 것이 용대리 황태덕장 1호로 알려져 있다. 겨우내 추운 날씨가 지속돼 바짝 언 상태에서 마르는 동해안 지역의 북어와는 달리 기온의 변동이 커 10월부터 4월까지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용대리의 황태는 수분이 날아가지 않으면서도 푹신푹신하게 말라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비록 지금은 원양산 명태를 사용하지만 명태를 황태로 바꾸는 것은 용대리만의 바람이다. 초기에 명태가 바짝 얼지 않으면 명태의 수분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게 날씨가 따뜻해 제대로 마르지 않은 황태를 ‘먹태’ 또는 ‘찐태’라 부른다. 먹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최근 맥주집에서 노가리와 함께 서민을 위한 술안주로 사랑받고 있다.
용대리 황태 요리 중에서도 가장 별미는 황태구이다. 1978년 토종닭 식당으로 개업해 용대리 식당의 터줏대감이 된 용바위식당(033-462-4079)의 연영숙씨가 황태구이와 황태국 등의 황태요리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영숙씨는 2007년 황태명인으로 선정되었으며, 황태구이 정식은 인제군의 대표 향토음식이 되었다.
매콤달콤한 양념장은 저마다의 비법이 있지만 보통은 황태대가리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육수에 간 양파와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고추장, 매실액 등을 넣어 만든다. 이렇게 만든 양념장을 손질한 황태에 발라 노릇노릇하게 구워 내면 불고기 저리 가라 하는 황태구이가 탄생한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게 매콤한 황태구이는 담백한 황태국과 어우러졌을 때 가장 맛있다. 용바위식당의 황태국은 별다른 재료 없이 황태와 감자, 파 등으로만 만든다. 찢은 황태에 물을 넉넉히 넣고 들기름 한 숟가락을 떨어뜨려 한 번 살짝 끓인 후 다시 물을 부어 사골 고듯이 40분 정도 끓여 낸다. 이렇게 하면 별다른 조미료 없이도 황태 자체의 감칠맛이 국물에 우러난다. 이밖에 여러 명이 먹어도 든든한 황태찜도 별미다.
전주로 가면 ‘가맥집’이란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가게 맥주집’이다. 슈퍼에서 맥주를 팔며 안주를 내는데 그 안주래봤자 바삭하게 구운 황태구이와 갑오징어포, 달걀말이 등이 전부다. 요즘 보면 초라한 차림이지만 어디 술맛이 말 그대로 술맛인가. 옛 추억에 취해, 정다운 분위기에 취하기를 원하는 주당들은 이 가맥집을 잊지 못한다. 요즘 유행하는 노가리, 먹태 맥주집도 이 가맥집에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태를 툭툭 토막내 무와 대파를 숭덩 잘라 넣고 끓인 생태찌개는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로 주당들의 사랑을 받는다. 보통의 매운탕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양새지만 생태찌개의 국물에서 특히 감칠맛이 더욱 느껴지는 이유는 명태의 뼈에서 우러나오는 육수 덕분이다. 여기에 ‘고니’라 불리는 명태 내장과 알을 넣어 주면 술을 마심과 동시에 해장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명태 천국’ 함경도 해안지역의 요리들
‘동네 개가 명태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명태가 많이 잡히던 함경도 해안 지역에선 명태밥과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명태밥은 굴밥, 콩나물밥처럼 이름 그대로 명태를 넣어 지은 밥이다. 손질한 생태를 토막 낸 후 쌀 위에 얹고 그 위에 무채·콩나물·김치를 차례로 올려 밥을 짓는다. 밥이 다되면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명태순대는 명태 속살을 발라낸 뒤 채소와 밥과 함께 다진 다음 기름에 볶아 소를 만들어 명태 몸통에 넣어 익혀먹는다. 명태가 많이 잡히는 겨울에 주로 해먹었는데 다 만든 명태순대를 바깥에 걸어 얼려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쪄서 대접하기도 했다.
코다리냉면 또한 함경남도 단천 지역에서 만들어 먹던 향토음식이다. 6·25 때 속초시 청호동(지금의 아바이마을)로 피란 온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만들어 먹으면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함흥식 비빔회냉면과 마찬가지로 매운 비빔냉면에 코다리(명태회)가 고명으로 얹어 나온다. 속초 지역에서 주로 먹을 수 있던 코다리냉면은 프랜차이즈 가게가 많이 생기면서 이제는 전국에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만드는 명태요리
주재료(4인분 기준) 코다리 10토막, 대파 1/2대, 무 한 토막
양념재료 고춧가루 3스푼, 간장 5스푼, 올리고당 3스푼, 후추 1/3스푼, 다진 마늘 2스푼, 다진 생강 1/2스푼, 맛술 2스푼, 물 8스푼, 참기름 1스푼
만드는 법
1 손질한 코다리를 토막내어 깨끗이 씻고 채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그릇에 고춧가루, 간장, 올리고당, 후추,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맛술, 물을 넣고 골고루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프라이팬에 코다리, 자른 무, 양념장을 넣고 골고루 섞어 준 후 센 불에서 끓인다.
4 양념장이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줄이고 국물이 1/4이 될 때까지 조린다. 이때 코다리를 중간 중간 뒤집어 주면 타지 않고 양념이 고루 밴다.
5 무가 익고 양념장이 적당히 조려지면 대파를 넣고 1~2분간 더 익힌 후 참기름을 넣고 골고루 섞는다.
생태수제비찌개
주재료(4인분 기준) 생태 5~6토막, 밀가루 1컵, 무 100g, 대파 1대, 두부 반모
부재료 양파, 풋고추, 홍고추, 다시마, 소금, 후춧가루
양념장 재료 고추장 1스푼, 다진 마늘 1/2스푼, 고춧가루 2티스푼, 다진 생강
만드는 법
1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수제비 반죽을 해 젖은 면포로 덮어 둔다.
2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3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끓여 우린 후 나박하게 썬 무를 넣고 양념장을 풀어서 끓인다.
4 국물이 끓어오르면 생태를 넣고 끓인다. 생태가 어느 정도 익으면 썬 두부를 넣고 반죽해 놓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떠 넣는다.
5 수제비가 익어서 떠오르면 손질한 양파와 대파, 고추를 넣고 끓이다가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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