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처신(處身)과 보신(保身)

산야초 2017. 3. 3. 23:38







남명 선생이 언제나 몸에 지녔다는 성성자와 경의검 (사진출처; KBS)



처신(處身)과 보신(保身)


#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과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 1570)은 동시대에 쌍벽을 이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좌(左) 퇴계, 우(右) 남명’이라 불릴 정도였다. 게다가 이황의 퇴계학이 성리학의 토착화와 그것의 단단한 학적 체계를 구성하는 데 치중했다면, 조식의 남명학은 학적 체계와 이론화보다는 실행과 실천을 좀 더 중시한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훗날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곽재우 등 다수의 의병장이 남명의 문하생에서 나왔다고 한다.

 # 그런데 남명 선생(사진)에 대해 전해지는 몇 가지 얘기가 있다. 하나는 늘 허리춤에 ‘성성자(惺惺子)’라 불린 방울을 차고 다녔다는 것이다. 선비가 무당들이나 차고 지닐 법한 딸랑거리는 방울을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당시 사대부들에게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모습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남명 선생이 허리춤에 찬 방울은 무속적인 의미가 있던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를 일깨우기 위한 장치’였다고 한다. 실제로 남명 선생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방울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삼가고 경계했다고 한다. 맑은 방울 소리로 스스로를 깨워 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남명 선생은 스스로를 추스르고 성찰하기 위해 방울만 허리춤에 찼던 것이 아니었다. 작은 칼도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칼에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子義)’, 즉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라는 ‘폐검명(佩劍銘)’까지 아로새겨 넣었다. 그래서 남명 선생이 차고 있던 검을 ‘경의검(敬義檢)’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자신의 평생 지표였던 ‘경(敬)’과 ‘의(義)’를 목숨처럼 여긴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사실 문치주의가 극에 달했던 당시에 선비가 평소에 칼을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파격의 이면에는 목숨 걸고 자신을 단도리하겠다는 ‘칼 같은’ 단호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 또한 남명 선생은 자신의 혁대에까지 경계의 글을 새겨 넣어 스스로를 채찍했다. 남명이 허리띠에 새겨넣은 ‘혁대명(革帶銘)’은 ‘설자설 혁자결 박생용 장막충(舌者泄 革者結 縛生龍 藏漠沖)’이었다. 즉 “혀는 새는 것이요, 가죽은 묶는 것이니, 살아있는 용을 묶어서 깊은 곳에 감추라”는 의미다. 장부란 모름지기 세 치 혀를 제대로 가눌 수 있어야 한다. 혀를 잘못 놀려 폐가망신하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러니 가볍게 혀를 놀릴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용’에 비유될 만한 호연지기가 담긴 무겁고 큰 뜻을 가슴 속 깊이 새겨 진득하게 묻어두라는 뜻이 아니겠나? 하지만 제대로 묶어야 할 것이 어디 세 치 혀뿐이던가. 때와 장소 불문하고 흥분하는 남자의 그것과 아무데나 뻗쳐지는 한 뼘 손도 제대로 묶어야 삶이 온전해지리라.

 # 내친김에 남명 선생의 ‘좌우명(左右銘)’도 살펴보면 이렇다. ‘용신용근 한사존성 악립연중 엽엽춘영(庸信庸謹 閑邪存誠 岳立淵中 燁燁春榮)’, 즉 “언행을 신의있게 하고 삼가며, 사악함을 막고 정성을 보존하라.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움 돋는 봄날처럼 빛나고 빛나리라”는 뜻으로 풀 수 있다. 이 중 특히 악립연중, 즉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라”는 구절은 요즘처럼 부박한 세태에 특히 더 와닿는 바가 크다. 이제 각자 스스로에게 물을 차례다. 날마다 자신을 깨울 맑은 방울을 갖고 있는지? 또 안으론 마음을 밝히고, 밖으론 흔들림 없이 행동을 결행하게 하는 ‘경의검’과 같은 마음의 칼날을 제대로 세우고 있는지? 아울러 세 치 혀와 한 뼘 손, 그리고 자신의 그것을 가볍게 놀리지는 않겠다며 스스로를 잘 조여 맸는지? 끝으로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지는 못할망정 이 부박한 세태에 휩쓸려 살지 않도록 스스로 중심은 잡고 있는지? 정말이지 매사 온전하게 처신(處身)해서 명철보신(明哲保身)해야 할 때다. [중앙일보, 2013.3.23]

[글쓴이;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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