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살짝 씁쓸하면서도 알싸… 수더분한 육개장
입력 : 2017.01.14 03:02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대구 달성공원 옆 '옛집식당'
좁은 골목 틈으로 '옛집식당'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군데군데 팬 콘크리트 길에 서서 찬바람을 맞았다. "여기에 국밥집이 있었나? 몰랐네." 억센 사투리를 쓰던 택시 기사는 우리를 내려주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구 달성공원역 근처 4차선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행인도 드문드문했다. 일행의 눈동자에서 '진짜 여기가 맞는 거야?' 하고 묻는 듯한 의구심이 엿보였다. 대구 당일치기 출장이었다. KTX에 몸을 싣고 1시간 30분만 달리면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겨울 대구는 잿빛이었다. 서울의 지독한 추위가 아닌 뼈를 시리게 하는 서늘함에 몸을 떨었다. 동료들과 나는 "남쪽이 더 춥다"고 너스레를 피우며 일을 봤다. 대전밖에 정차하지 않는 고속 열차 덕에 늦은 점심을 먹기 전 업무를 대강 해치울 수 있었다. 직장인의 위장은 출근 시간만큼 규칙적으로 공허함을 주장했다. "뭐 먹지?" 하는 뻔한 질문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예전에 전해 들은 오래된 육개장 집이 떠올랐다. 옛집식당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굴 속으로 몸을 밀어 넣듯 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골목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벽에 붙고 허공에 매달린 친절한 간판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니 낡은 철문이 보였다. 이제 70년이 된 이 집은 그 역사에 비하면 단출하다 못해 외관이 초라했다.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작은 방들이, 안쪽으로는 노인이 혼자 일하는 주방이 있었다. 우리는 자개장이 딸린 방에 방석을 깔고 엉덩이를 붙였다. 미지근한 온기가 몸으로 전해져 왔다. 주변에는 이미 식사하는 이가 몇 있었다. 모두 적지 않은 나이, 단어 끝 억양이 올라가는 대구 사투리를 썼다. 그들 앞에 놓인 상차림도 똑같았다.
이 집 메뉴는 육개장(8000원·사진) 한 가지다. 한우만 쓰기에 지방 물가치고는 값이 조금 나가는 편이다. 까만 점퍼를 입고 손가락 마디마디 반창고를 붙인 중년 남자가 주문을 받았다. 잠시 뒤 은색으로 빛나는 양은 쟁반에 반찬과 뚝배기를 올려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상차림은 간소했다. 깍두기, 짧게 썬 쪽파 무침, 두부 부침, 고추장아찌, 다진 마늘, 그리고 육개장 뚝배기와 밥 한 그릇이었다. 보통 보던 것보다 살짝 작은 듯한 이 집 뚝배기는 그래서 더 정갈해 보였다. 두툼한 소고기가 여럿 들어간 국물은 붉고 은은하게 빛났다. 하얀 김이 공기 중으로 조용히 올라왔다. 불투명한 유리창으로 오후 햇살이 비쳤다.
국물은 뜨겁다기보다 뜨끈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국물을 떠서 바로 입에 넣어도 입안을 데지 않았다. 그 온도감만큼 국물 맛도 자극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니 국물에 더 생기가 돌았다. 살짝 씁쓸하면서 알싸한 단맛이 났다. 그럼에도 파와 고기, 고추기름을 듬뿍 넣어 땀을 빼고 혀를 내밀게 하는 시중 육개장과는 같은 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음식이 육개장임을 알았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오며 모두 꾸밈없이 수더분한 육개장 맛에 감탄하는 얘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깜빡 놔두고 온 휴대폰을 식당에서 주문받던 중년 남자가 들고 헐레벌떡 뛰어와 나에게 건네주는 순간, 모두 말을 잊었다. 육개장 먹는 소리만 들리던 몇 분 전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잊히지 않는 침묵이었다.
겨울 대구는 잿빛이었다. 서울의 지독한 추위가 아닌 뼈를 시리게 하는 서늘함에 몸을 떨었다. 동료들과 나는 "남쪽이 더 춥다"고 너스레를 피우며 일을 봤다. 대전밖에 정차하지 않는 고속 열차 덕에 늦은 점심을 먹기 전 업무를 대강 해치울 수 있었다. 직장인의 위장은 출근 시간만큼 규칙적으로 공허함을 주장했다. "뭐 먹지?" 하는 뻔한 질문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예전에 전해 들은 오래된 육개장 집이 떠올랐다. 옛집식당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굴 속으로 몸을 밀어 넣듯 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골목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벽에 붙고 허공에 매달린 친절한 간판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니 낡은 철문이 보였다. 이제 70년이 된 이 집은 그 역사에 비하면 단출하다 못해 외관이 초라했다.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작은 방들이, 안쪽으로는 노인이 혼자 일하는 주방이 있었다. 우리는 자개장이 딸린 방에 방석을 깔고 엉덩이를 붙였다. 미지근한 온기가 몸으로 전해져 왔다. 주변에는 이미 식사하는 이가 몇 있었다. 모두 적지 않은 나이, 단어 끝 억양이 올라가는 대구 사투리를 썼다. 그들 앞에 놓인 상차림도 똑같았다.
이 집 메뉴는 육개장(8000원·사진) 한 가지다. 한우만 쓰기에 지방 물가치고는 값이 조금 나가는 편이다. 까만 점퍼를 입고 손가락 마디마디 반창고를 붙인 중년 남자가 주문을 받았다. 잠시 뒤 은색으로 빛나는 양은 쟁반에 반찬과 뚝배기를 올려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상차림은 간소했다. 깍두기, 짧게 썬 쪽파 무침, 두부 부침, 고추장아찌, 다진 마늘, 그리고 육개장 뚝배기와 밥 한 그릇이었다. 보통 보던 것보다 살짝 작은 듯한 이 집 뚝배기는 그래서 더 정갈해 보였다. 두툼한 소고기가 여럿 들어간 국물은 붉고 은은하게 빛났다. 하얀 김이 공기 중으로 조용히 올라왔다. 불투명한 유리창으로 오후 햇살이 비쳤다.
국물은 뜨겁다기보다 뜨끈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국물을 떠서 바로 입에 넣어도 입안을 데지 않았다. 그 온도감만큼 국물 맛도 자극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진 마늘을 조금 넣으니 국물에 더 생기가 돌았다. 살짝 씁쓸하면서 알싸한 단맛이 났다. 그럼에도 파와 고기, 고추기름을 듬뿍 넣어 땀을 빼고 혀를 내밀게 하는 시중 육개장과는 같은 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음식이 육개장임을 알았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오며 모두 꾸밈없이 수더분한 육개장 맛에 감탄하는 얘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깜빡 놔두고 온 휴대폰을 식당에서 주문받던 중년 남자가 들고 헐레벌떡 뛰어와 나에게 건네주는 순간, 모두 말을 잊었다. 육개장 먹는 소리만 들리던 몇 분 전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잊히지 않는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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