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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 향 한층 북돋아 주는 '들기름막국수'

산야초 2017. 4. 13. 23:22

메밀 향 한층 북돋아 주는 '들기름막국수'

    입력 : 2015.08.24 09:00

    [국수매니아 김윤정의 '국수를 쓰다'] 들기름막국수

    우리 ‘엄마들’도 늘 밥을 하기에는 힘이 들었을 터다. 국, 찌개, 반찬 가득 차려내야 하는 밥상보다 국수를 삶아 그릇에 척척 담아내는 게 편했을 것이다. 갈치구이와 두부찌개가 물릴 눈치면 보통 국수를 소쿠리 가득 삶아냈다. 여름이면 국수에 들기름, 깨소금을 조금씩 넣고 김치 송송 썰어 비벼 내었고, 찬바람이 불면 멸치를 한 움큼 넣어 우려낸 국물을 부어 냈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은 국수에 대한 인식이 유난히 박했다. 끼니로 치기에는 부족하고, 허울 좋은 음식이기에는 조금 모자람이 있는 음식. 그럴듯한 밥상보다 덜한 대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국수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음식은 막국수며 막국수의 시작은 특히 가난했다.

    들기름막국수

    허기 채우기 위해 먹었던 막국수, 지금은 대표 웰빙 면식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강원도에서는 동치미국물에 메밀 면을 말아먹었다. 당시 메밀은 강원도 지역의 구황작물이었다. 게다가 동치미는 오래 저장해두고 먹기 좋은 식품 중 하나였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가정에서 먹었던 막국수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이후다. 화전민과 북한강 수계댐 수몰지 주민들이 강원도 춘천 등지로 오면서 막국수를 팔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춘천과 홍천에 유독 막국수전문점들이 눈에 띄는 이유기도 하다. 허기를 채우고자 먹기 시작한 막국수는 현재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웰빙 면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막국수는 고명도 다채롭지 않고 모양도 화려하지 않다. 투박한 식감과 구수한 풍미만큼은 묘한 중독성을 유발할 만큼 매력이 있는 메뉴다. 이런 점 때문에 메밀국수는 일정 수준의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갓 삶아낸 국수에서는 짭짤한 맛이 느껴진다. 씹으면서도 하얀 가닥만으로도 ‘참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신문지로 싸둔 기름병을 기울여 기름 두어 방울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 휙휙 저어 먹었다고도 한다. 소박하지만 다른 식재료에 방해 받지 않는 참 맛이다.


    메밀 빻아 금방 반죽해 내린 면에 들기름 두른 막국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 장원막국수>에서도 소박한 막국수를 만날 수 있다. 깊게 들어가야 겨우 나오는 산골 끝자락에 위치해 있지만 찾는 사람이 많다. 외지고 한적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곳은 들기름막국수를 낸다. 쉽게 볼 수 없는 메뉴다. 메밀을 빻아 금방 반죽해 내린 면에 들기름을 두른다. 들기름은 날 듯 말 듯 희미한 메밀 향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향을 북돋아준다. 절구로 그 자리에서 갈아낸 깨 가루로 고소함을 더하고, 부족한 간은 간장으로 맞춘다. 그 위에는 불에 살짝 구워낸 바삭한 김 가루를 얹어 낸다. 목으로 순식간에 넘어갈 때의 국수가닥, 그 뭉치들의 매끄러우면서 묵직한 느낌. 순간 ‘쑤그덩’하고 넘어가며 목을 꽉 채우는 느낌이야말로 국수의 맛이다.


    십여 년이 넘도록 전국에 있는 막국수 집을 다녀도 면 자체의 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은 잘 없었다. 어떤 집은 면이 좋은데 동치미가 너무 달고, 어떤 집은 면이 좋은데 양념장이 너무 매웠기 때문이다. 이곳은 면을 맛있게 먹는 것에 주력했다.

    들기름막국수

    자가제면, 참기름도 직접 짠 것만 사용해

    강원도의 실로암 막국수, 영광정 막국수, 백촌 막국수, 남북면옥 등 결혼 전 아내와의 데이트 코스가 국수집이었을 정도로 많이 먹으러 다녔다고 한다. 그 경험과 기억을 담았다.


    메밀은 직접 제분해 사용한다. 굵거나 깨지지 않은 것을 사용해 전체적인 품질을 높이는데 신경 쓴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춰 제분의 정도, 메밀의 혼합 비율을 알맞게 조절해 반죽하는 것이 포인트다. 메밀 자체도 조금씩 자주 주문해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죽 기계는 매일 분리해 세척하고 조립한다.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고려해 면을 삶고 찬물로 헹궈 최적의 탄성을 낸다. 참기름은 직접 짠 것을 쓴다. 여름내 쑥쑥 자란 깻잎으로는 쌈을 싸먹고, 가을에 맺힌 열매는 기름으로 꽉꽉 짜낸다.


    막국수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분위기다. 산골 끝자락에 자리를 잡은 것은 환경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메밀 자체가 웰빙 식재료인 만큼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공간에서도 손님이 그대로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산이 둘러싸여 있어 공기도 맑고 한옥형 건물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ㄴ’자 구조에다 바닥에 깔린 온돌이 주는 매력은 상당하다. 고재로 된 장식장과 두꺼운 목재를 테이블로 사용했다.


    여름엔 시원하게 먹기도 하고, 착착 감기는 맛을 느끼고 싶을 때면 양념장을 더해 비빔막국수로도 먹는 막국수. 그 옛날 시집살이 하던 며느리가 부엌 뒤쪽에서 막 비벼대던 소박한 국수 마냥 기름 슬쩍 두르고 간장 몇 방울 뿌리면 고단함을 날려주는데 그만이다.
    <고기리 장원막국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19, 031-263-1107
    메뉴 들기름막국수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