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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탕·헛제삿밥·팥물 꿀빵… 먹어보기는커녕 들어보기도 처음

산야초 2017. 7. 24. 23:34

거지탕·헛제삿밥·팥물 꿀빵… 먹어보기는커녕 들어보기도 처음

거지탕,헛제삿밥 등 다소 생소한 진주음식을 먹어봤다.
맛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진주로 떠나보자.

    입력 : 2017.07.16 11:28

    [진주 이색 음식]
     

    " '거지탕’ 먹어봤어요? ‘진양호 통닭거리’는 가봤나요? ‘수복빵집’ 꿀빵은요?” “비빔밥, 헛제삿밥, 냉면 등 웬만한 진주 음식은 다 맛본 것 같다”고 하자, 진주비빔밥으로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정계임 진주향토음식문화연구원장이 웃으며 물었다. 물론 먹어보긴커녕 들어보기도 처음인 음식들이었다. 그 맛이 궁금해 진주로 갔다. 거지탕이 제일 궁금했지만, 술안주라 하여 맨 나중으로 미뤘다.


    밑반찬에 먼저 반하는 시장통 복국집
    아침 일찍 진주에 도착했다. 중앙시장 안 '하동복집'으로 향했다. 현재 식당을 운영하는 주현숙(65) 대표의 어머니 고(故) 변순악 여사가 1957년 개업했다니 올해로 꼭 60년을 맞았다. 복국이 나오기 전 밑반찬에 먼저 감동받았다. 속대기(돌김의 일종) 쪽파 무침, 멸치 마늘쫑 볶음, 애호박나물, 마늘장아찌, 물메기알젓, 깍두기 등 매일 새벽 새로 만든다는 반찬이 시장통 10여 평짜리 허름한 가게 수준이 아니다.


    반찬을 맛보니 복국이 너무나 기대돼 오히려 걱정이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복어와 콩나물, 미나리만 보이는 미니멀(minimal)한 외모를 배반하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이다. 맑지만 진하고 뜨거우면서 시원하다. 매일 아침 삼천포에서 오는 복어로 끓인다. 국물은 다시마와 멸치 따위로 내고, 비싼 복어는 건더기로 넣는 복집이 많다. 이 집은 국물 낼 때도 복어를 쓴다. "(복어가 아닌 다른 걸로 국물 내면) 그게 복국인가요?"

    특이하게 김가루와 참기름이 담긴 스테인리스 사발이 딸려 나온다. 복어 살과 국물을 떠먹다가 사발에 밥을 담고 복국에 든 콩나물과 국물, 물메기알 젓갈을 더해 비벼 먹는 게 이 집만의 식사법이다. "복국만 먹는 게 단조로운 것 같아 12년 전 개발했어요." 아귀탕·찜도 맛있다. 복국 1만1000원, 아귀탕 1만원(맑은탕·매운탕 2가지), 복수육 4만·5만원, 아귀수육 3만5000·4만5000원, 아귀찜 2만5000·3만5000원. 중앙시장길 29-5, (055)741-1410


    놋그릇 안에 핀 화려한 꽃, 진주비빔밥

    가늘게 썬 소고기 육회가 올라가는 진주비빔밥은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 조선시대에는 소의 식용(食用) 도축이 금지됐다. 농업에 꼭 필요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씨는 ‘식탁 위의 한국사’에서 “서울과 진주에 20세기 초반 전국에서 가장 먼저 도살장이 형성됐다”며 “식민지 시기에 들어오면서 육회가 올라간 비빔밥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정 원장은 “진주비빔밥은 각종 재료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 같다는 의미로 칠보화반(七寶花飯)이라 부른다” 했다. ‘천년의비빔밥’은 정 원장이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며 추천한 식당. 윤우근(67) 진주 칠보화반 비빔밥협동조합 이사장이 운영한다.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놋그릇에 밥을 담고 육회를 비롯한 각종 고명을 올렸다. 보는 순간 왜 칠보화반이라 불렀는지 이해될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나물을 모두 짧게 다듬은 게 다른 지역 비빔밥과 다르다. 윤 이사장은 “비비기 쉽고 먹을 때 입 주변에 묻히지 않도록 배려한 듯하다”고 했다.

    육회비빔밥 9000원, 볶은 나물 대신 생채소를 올린 야채육회비빔밥 9000원. 비빔밥 외에 한우도 판다. 한우석쇠불고기 1접시(250g) 2만원, 한우특수모둠 100g 1만8000원, 한우 1접시(500g) 3만원, 한우특수모둠(100g) 1만8000원, 한우버섯전골 1만원, 한우뚝배기불고기 8000원, 한우소고기국밥 6000원. 강남로 231, (055)762-2389


    헛제삿밥 안동? 진주!

    진주헛제삿밥은 진주비빔밥의 기원 혹은 원형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주헛제삿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정 원장은 ‘식도락가 사또설’을 소개했다. “조선시대 음식 좋아하는 사또가 진주에 부임했답니다. 진주의 제삿밥을 특히 좋아해 매일 대령하라 했는데, 하루는 아무 집도 제사가 없는거라. 아전들이 꾀를 내 ‘그냥 제삿밥처럼 만들어라’ 했지요. 그런데 사또가 ‘이건 제삿밥이 아니다’며 내동댕이쳤답니다. 제사 지낼 때 향 피운다 아입니까. 그 향이 음식에 배 들어간 거지. 그래서 예전에는 헛제삿밥 장사들이 나물 무칠 때 향을 피워놓았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안동 헛제삿밥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안동 헛제삿밥에는 돔배기(상어 고기)가 들어가지만 진주는 안 들어갑니다. 그리고 딸려 나오는 반찬은 훨씬 많지요.”


    ‘진주헛제삿밥’은 진주헛제삿밥 명인 이명덕(70)씨가 운영한다. 연근정과, 방아잎·고추·부추전, 죽순구이, 불고기, 애호박나물, 모둠전, 고추·오이 장아찌, 생선전, 동치미, 돼지삼겹살, 조기·농어구이, 오이지, 부각, 삶은 문어, 찐 생선, 부추·배추김치, 탕국, 각종 떡…. 엄청나게 많은 음식이 방짜 유기에 조신하게 담겨 나온다. 그 유명했던 조선시대 진주교방 상차림이 재현된 듯하다.


    이씨는 헛제삿밥보다 탕국에 더 자부심을 드러냈다. “홍합, 새우, 무, 두부, 버섯, 소고기, 명태, 말린

     문어·홍합, 새우, 죽순, 박, 조갯살 등 13가지 재료를 닭육수에 넣고 끓입니다. 다른 건 아들과 며느리 말을 따라 현대화할 수 있지만, 탕국만큼은 바꿀 수 없지요.” 사발에 밥을 담고 고명을 올린 다음 탕국을 두세 숟가락 곁들여 고루 섞이도록 비벼 먹는다. 고추장은 제발 넣지 말란다. “고추장을 넣어 비벼 드시면 나물 본연의 맛과 저희 집 고유의 간장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헛제삿비빔밥 1만원, 정식(1만5000원)은 헛제삿밥에 딸려 나오는 반찬 가짓수가 더 많다. 수육 1만·1만8000·2만7000원, 금산면 갈전리 1121, (055)761-7334


    거지만 먹기엔 아까운 거지탕

    오후 5시 30분, 드디어 ‘평양빈대떡’이 문 여는 시각이다. 평양빈대떡은 거지탕을 판다는 실내포장마차. 거지탕, 알고보니 잡탕찌개였다.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넣고 끓인 탕 말이다. 평양빈대떡 주인은 “진주 양반집들은 남은 제사 음식을 배 곪는 거지들에게 나눠줬었 다”고 했다. “제사 음식은 다 들어가예. 생선전, 고추전, 방아잎전, 고구마전 같은 찌짐(전)은 일부러 다 부쳐요. 그래서 준비하려면 오래 걸립니다. 여기다가 생선 대가리, 뼈를 넣고 야채 육수를 부어 끓여요.” 냄비는 국물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내용물로 빽빽하다. 바글바글 끓는 국물 속에서 전, 두부, 생선 대가리에 붙은 살을 발라 먹는다. 국물이 간간하니 술안주로 딱이다. “원래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으로 끓이던 거라 상하지 말라고 간 간하게 간했어요.” 국물이 줄면 육수를 계속 부어준다. 육수에 각종 재료에서 배 나온 감칠맛이 졸아들고 졸아들어 그야말로 진국이다.


    딸려 나오는 열무김치와 매콤새콤하게 무친 죽 순·톳 따위 밑반찬도 보통 솜씨가 아니길래 생선구이도 맛보고 싶었다. 주인은 “우리 집은 갈치가 한 토막에 2만원 이하짜리는 없다”며 괜찮겠냐고 묻는다. 토막당 2만원이면 보통 큰 갈치가 아닐 텐데, 허름한 실내포장마차에서 그런 비싼 갈치를 쓴다고?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생선구이를 맛봤다. 프라 이팬에 튀기듯 구운 느끼한 생선구이가 아니다. 가게 앞에 피운 연탄불에 갈치를 정성 들여 구웠다. 두툼한 살집이 촉촉하고 부드럽다. 거지탕 3만·4만·5만원, 갈치구이 2만~3만원, 갈치조림 3만·5만원, 볼락구이 2만원, 빈대떡 1만원. 진양호로 519, (055)742-3412


    팥물 끼얹어 먹는 '품절' 꿀빵

    정 원장이 오전 내내 “‘수복빵집’은 서둘러 가야 한다”고 채근했다. 오후 1시 찾아가 ‘더 일찍 올걸’ 후회했다. 이 빵집 대표 메뉴 꿀빵(5개 5000원)은 이미 품절. 손님이 많기도 하거니와, 하루에 팔릴 만큼씩만 만들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찐빵(4개 3000원)을 주문했다. 찐빵을 이렇게 주는 건 처음 봤다. 찐빵에 보랏빛이 감도는 거무튀튀한 팥물을 끼얹었다. 꿀빵도 마찬가지다.

    이 팥물이 별미다. 묽은 팥물에서 계피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팥죽과 수정과를 섞은 듯하달까. 팥빙수(6000원)를 시켜보니 서걱서걱 간 얼음 아래쪽에는 수정과를, 위에는 팥을 올린 걸 보니 추측이 맞는 듯하다. ‘3명 기준 2인분은 시켜주세요’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다. 포장은 2인분부터 가능하다. 촉석로 201번길 12-1, (055)741-0520
    닭찜으로 유명한 진양호 통닭거리

    진양호(晉陽湖)는 1970년 남강댐이 건설되며 형성된 인공호수. 주변에 닭요리집 4~5개가 모여있어 ‘진양호 통닭거리’라 부른다. 그런데 통닭은 팔지 않고 ‘닭찜’으로 이름났다. 통닭거리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진주통닭’에 갔다. 40여 년 전 LG프로축구단 조광래 감독 어머니가 시작한 집이다. 조 감독을 비롯 LG축구단 선수 사진과 사인, 관련 기사 액자가 벽에 잔뜩 걸렸다.


    닭찜을 주문하자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낸 닭고기가 당근, 감자, 양배추와 함께 걸쭉하고 불그스름한 소스에 버무려져 나왔다. 안동찜닭과 비슷하지만 간장 맛이 덜 난다. 후끈한 후추 매운맛이 강하다. 흔히 ‘치킨무’라고 하는 식초에 새콤하게 절인 무와 동치미 무가 함께 나오는 게 특이하다. 여기에 닭백숙집처럼 아삭이고추·쌈장·배추김치·오이지까지 딸려 나오는, ‘퓨전’ 한상차림이다.

    닭찜, 도리탕(닭볶음탕) 각 2만8000원, 삼계탕(백숙) 2만8000원, 튀김 2만3000원. 판문오동길 11, (055)746-3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