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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산수 뽐내는 '작은 금강산'

산야초 2017. 8. 14. 21:38

절정의 산수 뽐내는 '작은 금강산'

여름에 지나칠 수 없는 곳, 바로 계곡이다.
절경을 자랑하는 쌍곡구곡을 보기 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100선' 에 빠지지 않는 산막이옛길까지 가보자.

    입력 : 2017.08.14 06:51

    [국내 여행] 괴산 쌍곡구곡&산막이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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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데크로 길을 평평하게 만들고 가파른 곳에는 나무 계단을 놓았다. 그야말로 산수(山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구슬이 두 개라, 쌍벽(雙璧)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이곳은 암벽이 두 개라, 쌍벽(雙壁)이다. 충북 괴산 쌍천(雙川) 지나 쌍곡(雙谷)에 있다. 괴산은 계곡의 고을. 산 높으니 골짜기 깊다. 아홉 굽이라는 '구곡' 이름 붙은 계곡이 넷이나 있다. 화양·선유·갈은·쌍곡 구곡이다. 더해서 삼십육곡이다. 구곡 아닌 그냥 계곡도 여럿 있다. 여름이면 뜨거워진 몸을 식히려 숱한 사람이 찾는다. 화양과 선유구곡이 가장 유명하다. 쌍곡구곡이 '쌍벽'을 이룬다.


    쌍벽이라 하는데 두 벽은 '쌍벽'이 아니었다. 오른쪽 암벽이 더 높고 크다. 높이 10m 라 했는데 실제 보니 그 절반쯤이다. 왼쪽 것은 더 작다. 그저 바위라 해도 어울릴 크기다. 그런데도 쌍벽이라 이름했다. 우열(優劣)이란 높이나 크기만으로 가리는 게 아니라는 선언이다. 비록 미약해도 그 자리에 있어 더 큰 상대와 어울리며 쌍벽이 된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이 드물다.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다. 인근 펜션에 차를 세울 수 있으나 '손님 외 출입금지'라 적힌 푯말을 보니 주저된다. 갓길 공간에 잠시 세우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제멋대로 생긴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계곡물은 쌍벽 사이에서 웅덩이를 이뤘다가 다시 제 갈 길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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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쌍곡구곡 중 가장 절경인 소금강. 쌍벽 가기 전 들렀다. /이한수 기자

    쌍곡구곡 최고 절경(絶景)은 소금강이다. 자동차 열 대 이상 세울 공간(휴게소)이 있다. 차를 몰아 소금강 절벽으로 다가가다가 '아!' 하는 감탄이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금강산은 대체 어떻기에 이곳을 작은 금강이라 하는가. 땀 찬 신발을 벗었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절경을 한참 바라본다. 우뚝 솟은 단애(斷崖)가 뿜어내는 정기(精氣)가 온몸을 타고 들어오는 듯하다. 찌릿찌릿하다. 도시 스트레스가 달아난다.


    쌍곡구곡 보기 전 산막이옛길을 걸었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100선'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같은 여행지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산으로 막힌 산골 '산막이마을'까지 걸어가던 옛길이다.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시작하는 10리(4㎞) 길을 새로 정비했다. 괴산댐이 생기면서 깊은 산골은 호변 마을이 됐다.


    호수 따라 난 길을 걷는다. 수몰 전에는 연하구곡이라 불리던 깊은 계곡이다. 왼쪽으로 괴산호 물살 소리가 찰랑찰랑 귀를 자극한다. 오른쪽 산비탈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간지럽힌다. 물도 있고 산도 있다. 그야말로 산수(山水). 나무 데크로 길을 평평하게 만들고 가파른 곳에는 나무 계단을 놓았다. 1시간 남짓이면 산막이마을에 다다른다. 힘들지 않다. 나이 60~70대 분들이 발걸음을 더 잘 옮겼다. 호수를 조망하는 전망 공간을 중간중간 만들었다. 세상 시름 잊는다는 망세루, 호수 풍경 좋은 병풍루, 물가 쪽으로 길게 내뻗은 꾀꼬리전망대 따위다. 자연이 만든 피조물이 아기자기하다. 호랑이굴, 매바위, 괴산바위 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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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하협 구름다리에서 괴산호를 바라본다. 일주 유람선이 다닌다. 산막이옛길을 걸어 이곳을 지나면 충청도양반길로 이어진다. 물과 산이 어우러진 산수(山水)를 즐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산막이마을은 등산로 초입 같은 풍경이다. 막걸리 팔고 빈대떡 부치는 주막과 토종닭 삶고 손두부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늦은 점심이다. 허기를 달래도 좋다.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이제보다 더 좋은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노수신 적소(수월정), 삼신바위를 지나 괴산호를 가로지르는 연화협 구름다리까지 걸었다. 지난해 8월 놓은 다리의 길이는 134m. 출렁거리는 다리에서 괴산호를 바라본다. 아찔하다.


    차 세운 곳으로 돌아가려면 1시간 30분 이상 되짚어 걸어야 한다. 괴산호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주차한 곳 인근(차돌바위)까지 배로 데려다 준다. 연하협 구름다리를 다시 건너 산막이마을 반대 방향으로 300m 가면 선착장(굴바위농원)이 있다. 배 타고 호수 쪽에서 바라보는 산막이옛길 풍경은 또 달랐다. '별거 아니네' 하고 여겼던 삼신바위를 왜 절경이라 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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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식 고택.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괴산에 왔는데 이곳을 그냥 지나치면 예(禮)가 아니다. 홍범식 고택이다. 괴산 명문가 출신 홍범식(1871~1910)은 금산군수 때인 1910년 8월 29일 국권 상실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아홉 살 때다. 금산에서 괴산까지 300리 길에 긴 장례 행렬이 이어졌다. 유서 10여 통을 남겼다. 아들에게 적었다.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다. 내 아들아, 너희는 조선 사람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해 잃어버린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장남 홍명희(1888~1968)는 그때 일본 도쿄에 유학 중이었다. '동경삼재(東京三才)'라 불린 천재였다. 두 살 어린 최남선, 네 살 어린 이광수와 함께였다. 세 천재는 훗날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홍명희는 아버지 유언을 끝내 지켰다. 소설 '임꺽정'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홍명희는 공개 활동이 어려워진 1930년대 후반부터 고향에 칩거했다. 지조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은둔은 어렵고 자결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쌍벽이다. 만약 그런 시대를 맞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고택 툇마루에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산막이옛길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요금 2000원을 받는다. 유람선 괴산호를 왕복하는 대운선박(080-200-6745). 신분증 필요. 괴산호 왕복 구간 1만원. 차돌바위에서 산막이마을까지는 비학봉호 이용. 먼저 배를 타고 되짚어 걸어오는 길 추천. 물론 반대로 해도 좋겠다. 산막이옛길에서 연하협 구름다리를 건너면 새로 조성한 충청도양반길과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