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5 전투기가 공대지 무장을 발사하고 있다. /wikimedia commons image |
지난 10월 기자는 공군 내부의 정황을 면밀히 알고 있는 관계자 L씨를 만났다. 사석에서 기자와 만난 L씨를 통해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지난 8월 북한이 대북확성기 조준포격 이후 남북이 서로 각을 세우고 있던 무렵이다. 북한은 8월 20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음은 물론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확성기 방송을 멈추지 않으면,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남한을 협박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전쟁에 돌입할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목함지뢰 도발과 대북확성기 조준포격 등을 감행해 남한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던 시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이 고위급 인사를 남한에 급파하면서 남북의 긴장은 완화되었다.
이렇게 긴박했던 8월, 청와대에서는 전군(全軍)에 어떤 지시를 하달했을까. 공군관계자 L씨에 따르면 당시 공중에서 전투대비태세에 돌입한 조종사들 모두가 귀를 의심할 정도의 무전 지시가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수십년동안 그런 명령은 한차례도 없었다는게 L씨가 전하는 공군내부의 전언이다.
공군에서 전투기가 출격하면, 출격이후 부터는 중앙방공통제소(MCRC)의 통제를 받는다. 이는 레이더와 무전(무선교신)을 통해 공중에서 비행중인 우리 공군의 전투기의 작전을 통제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무전으로 전투기 조종사에게 주요 명령을 하달하고,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일례로 전방 몇 마일 거리에서 몇 대의 적군 전투기가 내려오는지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때로는 조종사에게 무장(Armament)을 잘 관리하라는 지시도 내린다. 이것은 조종사가 실수로 무장을 발사하거나 폭탄을 투하 하는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이다.
이런 무전교신 내용은 보통 “체크 아머 콜드 (check armour cold)" 이다.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무장을 차가운 상태로 유지하라”이지만, 무장이 임의로 발사되지 않게 무장을 조종사가 주의깊게 관리하라는 지시다. 만약 무장이 실수로 발사될 경우, 이것은 적국인 북한의 입장에서는 전쟁이나 도발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무장의 관리는 조종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귀에는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체크 아머 콜드”를 들어왔다는게 관계자 L씨의 전언이다. 그런데 지난 8월 조종사들은 처음으로 “체크 아머 핫(check armour hot)”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머 핫” 이라는 말은 유사시 바로 무장을 발사하라는 지시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전투기의 레이더 상에 적기가 걸리기만 하면 바로 무장을 발사할 대비를 갖췄다고 한다. 이 지시는 전시와 같은 상황 외에는 절대 하달되는 내용이 아니라는게 공군관계자 L씨의 말이다.
베테랑 조종사들 중 일부는 “거의 20년 동안 비행을 했지만 이런 무전내용은 처음 들어봤다”고 말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처음 이 무전지시가 내려오자, 공중에서 초계비행을 하던 조종사들은 모두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일부는 중앙방공통제소에 재차 확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이 지시는 잘못된 지시가 아니었다. 참고로 “아머 핫”이라는 지시는 우리가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명령은 유사시 우리 군이 공격을 받으면 곧장 대응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전 여러 정권에서 전군에 지시한 '확전자제 명령'과는 완전히 다른 지시이다.
이 무장 발사 지시는 아무나 함부로 지시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장성급 장군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지시는 합참의장이나 연합사 사령관 정도가 내릴 법한 지시다. 이번 지시는 청와대에서 하달되었다는 것이 관계자 L씨의 말이다.
과거 정권에서부터 우리 군은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었다. 연평도 포격도발, 천안함 폭침 등을 당하고서도 유사한 도발에 우리 군은 당하기만 했다. 북한의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나서 국방장관 등은 항상 “단호하게 수십 배로 응징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속 시원하게 실천에 옮긴 사람은 없었다.
우리 국민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항상 북한의 무력도발에 남한은 질질 끌려가는듯했고, 이런 무력도발로 재미를 본 북한은 잊을만하면 남한을 성동격서 식으로 공격하기 일쑤였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도 유사한 북한의 도발이 있었지만 무장 발사 지시가 군에 하달된 바 없었다는 게 제대군인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 정권은 분명 달랐다. 북한의 무력도발을 더 이상 북한의 협상카드로 내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이번 관계자 L씨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이지만 역대 남성 대통령들도 쉽게 내리지 못한 단호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고위관료를 급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군이 그동안 입이 닳도록 주장한 “수십 배의 응징”을 해줄 참이었다. 북한도 이런 우리의 상황을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투기가 무장을 발사 태세로 걸어놓으면 상대방(북한) 전투기에서는 레이더(R&R)에서 이런 무장발사 대비 상황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함에 놀란 북한은 고위급 관료를 급파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