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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커넬 샌더스가 운영하는 만두가게

산야초 2017. 12. 25. 21:21

한국의 커넬 샌더스가 운영하는 만두가게

  • 월간외식경영  

    입력 : 2017.12.13 08:00

    [서민식당 발굴기]
    경기 수지 <나미가>

    뒤늦게 창업한 78세 청년 사장님

    지난 주, 저녁 먹을 곳을 검색하다가 만두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만두집을 골랐다. 세 식구가 만두집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주인장 부부가 70대 후반의 어르신들이었다. 서울 대치동 돈가스 집에서 구순의 할아버지 셰프를 처음 뵈었을 때와 비슷한 경외감이 들었다. 바리톤 음성에 정중한 태도로 손님을 맞는 주인장에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 모습은 없었다.  

    주인장 전상진 씨는 올해 78세. 만두장사를 시작한지 10년째다. 그전에는 의류사업가이자 지역 상공회의소 책임자로 일했다고. 2000년대 초반 주변의 권유와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진출했다. 큰 이변이 없었다면 전씨는 지금쯤 중국에 기반을 둔 중견 스포츠의류 업체 회장님이었을 것이다. 사업에 한창 물이 오를 무렵 위중한 병이 발병했다. 급히 귀국해 3개월가량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목숨은 구했으나 그 사이 방치하다시피 했던 중국 사업은 수습불능의 혼수상태에 빠졌다. 무일푼으로 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그때 절박한 마음에 시작한 것이 지금의 만두집이다. 전씨는 2014년 KBS TV '강연100℃‘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20분간 자신의 이런 인생역정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고령에 외식사업을 시작한 점과 푸근한 인상으로 고객을 맞이하는 점이 ‘KFC할아버지’ 커넬 샌더스를 떠올리게 했다. 주인장에게 그 얘길 했더니 안 그래도 자신의 얼굴 캐리커처를 상표로 등록해두었다고 한다.

    이 집은 옥호도 특이하다. 나미가(哪味歌)! ‘어쩌면 이렇게 맛이 좋은가!’ 하며 감탄하는 노래라는 뜻이라고. 입구(口)자가 무려 네 개나 들어갔다. 입으로 맛있게 먹고 그 많은 입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할 만두라는 얘기다.

    왕만두
    조미료 돼지기름 없어 담백한 만두들

    시장기가 도는데다 만두라면 얼씨구나 하는 아내가 실컷 먹자고 해서 우리는 든든히 먹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니 만두 종류가 다양했다. 크게 대별하면 왕만두 군만두 교자 지짐만두, 네 가지였다. 여기에 고기, 사천, 부추 등 내용물 종류에 따라 메뉴 조합이 나온다.

    사천왕만두, 고기왕만두, 새우부추왕만두 등 왕만두는 1개에 1200원. 사천교자, 고기교자, 새우부추교자 등 교자는 1인분에 3000원씩이었다. 우리는 골고루 주문했다.

    가장 먼저 나온 팥찐빵(3개 2000원)부터 먹었다. 디저트 삼아 마지막에 먹어야 하는데 순서가 좀 바뀌긴 했다.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학교 앞 찐빵 집이 예전 70년대 청소년들에겐 아지트 구실을 톡톡히 했다. 찐빵 광고 모델이었던 가수 최희준 씨 얼굴도 떠올랐다. 오늘처럼 추운 날엔 찐빵 모습만 봐도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반죽 숙성이 잘 돼 피가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드디어 큼직한 고기왕만두, 사천왕만두, 새우부추왕만두가 나왔다. 앞서 먹었던 찐빵과 같은 폭신폭신하고 큼직한 보따리에 소가 가득 찼다. 사천왕만두에는 별도의 양념장을 넣어 매운 맛을 강조했다. 청양고추나 마늘, 혹은 고추기름이 들어간 것 같다. 새우부추왕만두는 특히 다즙성이 뛰어났다. 먹는 내내 촉촉함을 잃지 않았다. 만두를 잘라 안을 보니 돼지고기, 양파, 대파, 당면, 부추 등이 그득했다.

    이어 ‘교자 삼형제’가 나왔다. 사천교자, 고기교자, 새우부추교자다. 만두피 거죽만 봐도 구별이 됐다. 사천교자는 붉었고 새우부추교자는 녹색이 진했다. 사천교자는 왕만두처럼 역시 돼지고기와 함께 매콤한 맛이 났다. 조미료나 돼지기름이 들어가지 않아 맛이 담백하고 먹고 난 뒤에도 속이 편했다. 주인장에 따르면 만두 소의 양을 다른 집보다 더 많이 넣어 쪄내는 시간도 그만큼 길다고 한다.

    갈라진 얼음무늬의 ‘만두날개’ 단 중화풍 군만두

    군만두로는 고기군만두와 부추군만두가 있는데 모두 8개에 5000원이다. 중화풍 군만두다. 일명 ‘빙하만두’라고도 한다. 만두를 구울 때 거푸집 가장자리 부분에 전분액이 들어가 구워진 부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빙하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엔 빙하가 아니라 빙열문(氷裂紋)이다.

    빙열문은 우리 전통문양 중 하나다. 고려청자 표면에 흔히 보이는 갈라진 얼음무늬다. 한옥의 담이나 벽면의 마감 무늬로도 쓰였다. 낙선재 아궁이 벽면의 빙열문이 특히 유명하다. 미적 느낌이 뛰어난데다 화기를 막는 주술적 의미로 쓰였다. 이 집 군만두 역시 ‘만두날개’라고도 부르는 빙열문의 만두 가장자리 부분이 눈길을 끈다. 뜨거운 만두에 차가운 깨진 얼음무늬라니 먹으면서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만두는 육즙(?)이 풍부하다. 맥주가 생각나게 하는 만두다. 필자와 아들은 고기군만두, 아내는 부추군만두에 더 점수를 줬다. 부추군만두에서는 한겨울임에도 부추 향이 싱그러웠다.

    배가 불렀으나 국물이 먹고 싶어 떡만두국(7000원)을 하나 시켰다. 사골베이스 국물이 맛깔스러웠다. 특이하게도 국에 간을 하지 않았다. 소금을 함께 내주고 각자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춰먹도록 했다. 손으로 빚은 수제만두 세 개가 들어갔다. 세 식구가 하나씩 나눠먹었다. 가래떡이 부드럽고 끈기가 있었다. 떡만두국으로 마무리 하는 사이, 포장으로 만두를 구매하는 손님이 많이 다녀갔다.

    교자만두, 군만두 등
    이 집은 소자본 외식창업자들이 꼭 한 번씩 다녀갔으면 좋겠다. 최소한 두 부부의 근면과 성실성, 그리고 집념은 배워갔으면 좋겠다. 지금 비록 의류업체 회장님은 아니지만 전씨의 얼굴은 평안하고 행복해보였다.
    지출(3인기준) 팥찐빵2000원+사천왕만두1200원+고기왕만두1200원+새우부추왕만두1200원+사천교자3000원+고기교자3000원+새우부추교자3000원+고기군만두5000원+부추군만두5000원+떡만두국 7000원=3만1600원
    <나미가> 경기 용인시 수지구 광교마을로 91   031-211-7759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외식콘텐츠마케팅 연구소 (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월간외식경영 발행인,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고 인심 넉넉한 서민 음식점을 일상적인 ‘식당밥일기’ 형식으로 소개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