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뚱뚱한 사람의 식당 추천은 늘 옳더라
입력 : 2017.12.29 14:17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서울 삼성동 '히가시노'
오후 내내 깜빡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맛없었던 점심 메뉴를 복기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이 있을 거라는 서울 삼성역 인근에는 제대로 된 식당의 씨가 말랐다. 대신 역 근처 작은 빌딩 하나가 몇백억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셈을 아무리 해봐도 식당이 버틸 임차료가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삼성역으로 매일 출퇴근하지만 내 명의로 된 땅은 김 한 장만큼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그때 후배가 말을 걸었다. "소가 어떻게 웃는 줄 아세요?"
나는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의 대답 따위는 필요 없었다. 100㎏이 살짝 안 되는 후배가 질문과 동시에 답을 스스로 해버렸다. "우하하예요. 우하하. 재미나죠?"
후배가 유머를 던질 때마다 동료들은 헛웃음을 짓거나 재미없다고 면박을 주었지만 은근과 끈기로 무장된 후배는 유머를 멈추는 법이 없었다. 나는 이 후배를 어떻게 갈궈야 저 유머가 멈출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후배는 또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히가시노'라는 이자카야 가보셨어요? 제가 가봤는데 참 좋더라고요." 먹을 것 앞에서는 약해지는 나의 가벼운 영혼은 뚱뚱한 사람의 식당 추천은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요식업의 오래된 격언을 되뇌었다. 그날 저녁 바로 '히가시노'를 찾아 삼성역 뒷골목으로 갔다.
복덕방 사장님 말고는 아무도 역세권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삼성역과 선정릉역 사이 뒷골목에 식당이 있었다. 작고 네모난 양철 판자에 'HIGASINO'라고 간판을 붙인 가게 안에 들어서자 한쪽에 작은 주방이 있고 젊은 주인장이 그곳에 혼자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2만원을 넘기는 것이 없었고 그 이름이 하나같이 단순했다. '오뎅, 고등어, 바지락, 청어' 등등 식재료 이름만 간단히 적어놓은 메뉴에 괜히 믿음이 가 양을 넘치게 주문했다.
제일 먼저 나온 소금과 초에 절인 고등어회<사진>는 그 절인 정도가 가볍게 산책 나가듯 산뜻해 무겁지 않았고 비린내는 비 그치고 난 오후처럼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닭고기는 닭의 허벅지살을 펴서 양념이 된 소금물에 살짝 절이고 튀긴 뒤 쪽파를 썰어 가득 올린 요리였다. 기름기가 많고 부드러운 허벅지살을 써서 한 번 씹을 때마다 입가를 닦을 냅킨을 찾을 정도로 육즙이 흘렀다. 잔디처럼 촘촘히 올린 쪽파는 느끼한 맛을 낚아채듯 잡아줬다. '청어'는 청어를 초와 소금에 절인 누름초밥이었다. 고등어와 달리 위를 토치로 살짝 그을려 구운 맛을 주었고 다진 생강과 파를 조금씩 올려 등푸른생선의 바다 냄새를 가시게 했다.
무엇보다 두꺼운 돼지고기 등심을 속까지 촉촉하게 튀긴 '돈카츠'를 봤을 때 이곳을 권해준 후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두꺼운 고기를 잘 튀기려면 낮은 온도로 정확한 시간을 맞춰야 한다. 주인장은 '돈카츠' 하나를 위해 늘 같은 온도로 돼지고기를 보관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낮게 불을 올려 고기를 튀겼을 것이다. 그 마음과 행동을 우리는 흔히 '정성'이라고 부른다.
그 모든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나가려는 찰나 주방에 있던 주인장이 손을 급히 씻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바빠 잘 챙겨 드리지 못했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나의 후배는 어떤 유머를 던져도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으로 변했고 나는 삼성역을 아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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