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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10분…자연이 만들고, 예술이 거들고, 사람이 웃는 섬, 가파도

산야초 2018. 4. 30. 21:50

제주도에서 10분… '초록바다' 보러 관광객 몰리는 섬

자연이 만들고, 예술이 거들고, 사람이 웃는 섬, 가파도

    입력 : 2018.04.20 18:00 | 수정 : 2018.04.20 18:48

    제주도 남서쪽 운진항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섬 속의 섬’ 가파도(加波島)가 있다. 1㎢ (0.84㎢)가 채 안 되는 작은 섬 가파도는 ‘가오리’ 형상과 닮았다. 그 가오리 같은 섬에 4월에는 ‘초록 바다’가 생겨난다.

    이 작은 섬은 겨울에 청보리를 파종(播種), 봄이 되면 초록빛 청보리밭이 꼭 바다처럼 보인다. 이 섬의 고도는 해발 약 20m. 초록빛 청보리밭과 푸른 바다, 멀리 제주 섬이 마치 수평으로 놓인 것 같다.

    푸른 바다와 초록빛 섬, 그리고 흰 풍차. 완벽한 ‘미장센’이 소문나 4, 5월 이 섬에는 ‘청보리 축제’를 보러 오는 관광객으로 흥이 넘쳐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섬의 ‘축제’ 유효기간이 두어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청보리 축제’가 끝나면 가파도는 관광객이 찾지 않는 ‘무인(無人)의 섬’이 된다. 그리고 섬의 민낯이 드러난다.

    가파도 전경. 1㎢ (0.84㎢)가 채 안 되는 작은 섬 가파도는 ‘가오리’ 형상과 닮았다./현대카드 제공
    가파도에서 50대는 청년이다. 농·어업이 쇠락해 일거리가 부족해지자 젊은이들은 섬을 떠났고, 남아있는 주민의 경제적 자립도 위협받고 있다. 한때 인구는 1000여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170여명 만이 섬을 지키고 있다. 그중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는 100여명 뿐. 가파도에 남은 건 ‘한 철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임시 시설물과 훼손된 자연이다.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청과 현대카드가 가파도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생태와 경제, 문화가 공존하는 가파도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섬으로 바꾸는 것. 그렇게 현대카드는 사회공헌활동(CSR)의 일환으로 가파도 마을주민들과 함께 ‘가파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버려진 집 개조하고, 자연은 복원하고

    “6년 전 아내로부터 가파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파도에 왔습니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갑자기 이 섬이 없어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관광객이 오고 난개발이 된 뒤 버려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파도가 이런 악순환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시작입니다.” 지난 12일 7년 만에 가파도 프로젝트를 대중에게 공개한 날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는 섬 개발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꾀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한다. 프로젝트 일환으로 섬 곳곳에 지어진 ‘가파도 터미널’, ‘가파도 하우스(숙박시설)’, ‘가파도 에어(AiR·Artist in Residence)’ 등은 대부분 수평선과 이어지듯 평평한 모습을 하고 있다.현무암 색과 비슷한 회색 위주기도 하다. 가파도 특유의 나지막한 지형, 기존 가옥과 어울리도록 한 셈이다.

    가파도 에어 건축물에서 보는 청보리밭 너머에 주황색, 초록색 지붕 가옥과 회색 돌담이 있는 풍경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가파도 에어는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이뤄져있다./현대카드 제공
    프로젝트에 참여한 최욱 원오원 건축사무소 대표는 “건축 재료도 주민들이 쉽게 고칠 수 있는 소박한 재료를 썼다”고 했다. 원오원 건축사무소는 버려져 방치된 집을 가파도 하우스로 개조하고, 20년간 흉물스럽게 버려진 지하 건물은 가파도 에어로 탈바꿈시켰다. 프로젝트는 난개발된 해안도로도 철거해 섬의 본모습이 드러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옛 거주민의 흔적이 담긴 돌담과 우물을 복원하고 상동포구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건물도 없앨 예정이다.

    가파도 에어 지상층에서 내다보는 청보리밭은 그야말로 장관(壯觀)이다. 손을 뻗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드넓은 청보리밭과 바다 광경이 펼쳐진다. 에어 건축물에서 보는 청보리밭 너머에 주황색, 초록색 지붕 가옥과 회색 돌담이 있는 풍경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모이는 가파도

    가파도 프로젝트의 철학은 ‘섬에 문화를 심는다’는 것. 가파도 에어와 에어에 입주한 작가들이 문화의 중심이다. 가파도 에어는 작가들이 수개월 간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곳으로,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이뤄진 건물이다. 작가들의 개인 숙소와 작업 공간인 개인 스튜디오, 갤러리, 전망대가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큐레이터 등이 참여해 입주할 작가들을 골랐다.

    현재 한국, 덴마크, 영국 등에서 온 작가 7명이 지내고 있다. 작가들은 가파도 자연과 주민에 영감을 받아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유지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은 “전 세계 예술가를 가파도에 초청해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을 장기적으로 알릴 수 있다. 그 자체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힘이다”고 말했다. 작가들 작품이 가파도의 문화적 가치를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3일 가파도 에어에 입주한 정소영(39) 작가는 가파도와 주민을 닮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섬(제주도)에서 또 섬으로 떠난다는 자체가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에요. 지질학적 풍경을 작품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는데 가파도만의 낮은 지형과 현무암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섬을 배워 같이 녹아드는 작품을 할 겁니다.”

    페루 출신의 일리아나 오타 빌도소(37·Eliana Otta Vildoso) 작가도 “변화무쌍한 날씨와 푸른 청보리가 얽힌 가파도의 자연이 섬을 활기차게 만든다”며 “가파도라는 섬뿐만 아니라 버려진 건물이었던 에어에 남겨져 있는 긁힌 흔적 마저 내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3일 가파도 에어에 입주한 정소영(39) 작가(왼쪽)와 페루 출신의 일리아나 오타 빌도소(37·Eliana Otta Vildoso) 작가./이다비 기자
    ◇주민이 주인 되는 가파도 프로젝트

    가파도는 일본의 나오시마(直島)에 비견된다. 예술을 지향하는 섬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나오시마는 구리 제련소가 있던 외면받은 섬이었지만 제련소가 떠나며 낡은 섬, 버려진 섬이 되었다. 1989년부터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낡은 목욕탕이 변신하고, 옛집에 예술가의 손길이 깃들었다. 그렇게 관광객 수십만명이 찾는 세계적인 ‘예술의 섬’이 됐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이우환의 그림과 설치작품,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등이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나오시마는 주민이 생활하는 공간과 관광객이 드나드는 공간이 분리돼 있다. 일본의 출판교육 기업 베네세(Benesse)가 주도적으로 섬 재생 사업에 뛰어들면서 섬의 원주민들이 주체가 아닌 구경꾼이 되었다.

    가파도는 ‘예술의 섬’에 주민참여까지 더하는 재생 사업을 꿈꾼다. 가파도 프로젝트로 지어진 가파도 터미널, 가파도 하우스, 어업센터와 레스토랑, 스낵바 모두 마을 주민이 운영하게 된다.

    “나오시마와 가파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희는 현대카드 지원으로 주민과 제주도청에 의한 섬을 만들려고 합니다. 가파도는 주민들과 함께 예술을 이해하는 섬이 될 겁니다.” 최욱 대표의 말이다. 이미영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장도 “나오시마와 우리의 차이는 운영 주체”라며 “대부분의 시설물은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고 그 수익을 가져간다. 주민이 항상 주인이 되고 모든 혜택의 수혜자가 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주민 반응은 어떨까.

    해녀 출신 이애심(56)씨는 걱정이 많다. “많이 오면 좋은데, 많이 오겠나?” 이 섬에 사시사철 사람이 북적이는 걸 본 적이 없는 해녀의 걱정은 당연하다.

    가파도는 ‘예술의 섬’에 주민참여까지 더하는 재생 사업을 꿈꾼다. 가파도 주민 해녀가 물질을 끝내고 섬으로 나왔다./현대카드 제공
    하지만 ‘다른 청년’의 생각은 좀 달랐다. “우리 섬에서 경제 활동할 수 있는 인구가 100명쯤 되는데 우리 협동조합에 62명이 가입돼있어요. 섬사람 거의 전부가 협동조합이나 현대카 드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봐도 돼. 가파도 하우스, 레스토랑, 스낵바, 어업센터 운영에 주민도 같이 끼워주니까 우리도 좋지. 호응이 좋아. 한 번 와서 보면 알 거야.” 진명환(57) 가파도협동조합이사.

    김옥연(50)씨도 거들었다. “섬사람들이 나이가 많아요. 언제까지 물질을 할 수는 없으니까…우리가 합심해서 만들어가야지요. 우리가 만들어야 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0/20180420023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