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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로 보낸 소주는 어디로 갔나?

산야초 2018. 5. 6. 23:03

대마도로 보낸 소주는 어디로 갔나?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입력 : 2018.04.19 11:17

    제1부. 조선에서 대마도(対馬)로 보낸 소주는 어디로 갔나?

    일본은 사케의 나라? 의외로 소주의 나라
    일본의 술 하면 일반적으로 어떤 술이 떠오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일본식 청주인 ‘사케(日本酒)’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케는 그들의 전통주이며 오랜 문화를 간직해 왔고, 무엇보다 늘 우리 막걸리와 많은 비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에서는 사케보다 다른 술을 더 많이 마신다. 바로 일본 소주다. 사케의 시장 점유율은 약 7%지만, 소주는 11%다. 다만 일본의 소주는 한국의 소주 시장과는 좀 다르다. 한국이 초록색 병에 들어간 희석식 소주가 전체 소주 시장의 99% 가까운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은 고구마, 보리 등이 증류식 소주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은 취하기 위해 소주를 마신다면, 일본은 원료의 풍미도 즐기기 위해 소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선 통신사의 모습. 대마도와 이키섬을 모두 거쳐갔다. 인솔자는 모두 대마도인으로, 대마도인만 총 500여명이 참여했다

    세조가 대마도주에게 소주를 줬다고?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세조 때 대마도주 ‘소 시계요시(宗成職)’에게 사신을 좀 덜 보내라고 하며 소주를 보내 준 것이다. 15세기의 조선은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대마도를 정벌 하면서, 부산포, 내이포(창원), 염포(울산) 등 삼포를 왜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하는 등 회유책과 강경책을 동시에 썼던 때이다. 이 시대에 대마도주는 조선 정부로부터 ‘대마도 절제사(종 3품)’ 및 ‘첨지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받고 구한말까지 조일간의 교역 및 외교 관련 일을 했다. 일본에서는 대마도번주로 임진왜란 때는 선봉장으로 침략해 오고, 왜란 이후에는 화해정책으로 500명이나 되는 주민들을 보내, 조선통신사를 일본 본토로 안내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대마도 인물로는 구한말,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宗武志)로, 바로 이 대마도주 가문이다.

    중요한 것은 대마도에서 술은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조장 한 곳 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왜 대마도에서는 술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대마도의 인공해협.만제키바시에서 바라본 대마도.지형 전체가 이런 산맥으로 이어져있다
    농업이 발달해야 술이 발달한다
    대마도를 방문하면 단번에 해답이 나온다. 제주도의 약 40% 크기인 대마도는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거의 없다. 척박한 땅에 험준한 산맥으로 이어져있다. 쌀, 보리 등은 거의 재배가 안되기 때문에 대마도의 양조장은 사케용 쌀을 일본 본토에서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먹을 쌀, 보리도 없는데 술을 빚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산맥으로 이어지니 숨기 좋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약탈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왜구 세력이 있기에 좋아 보이는 자연환경이었다. 지금도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나 메밀, 그리고 야채 등이 농업의 주력 산물이다. 현재는 고구마나 메밀로 소주를 만들고 있다. 대마도의 고구마는 ‘고코이모(孝行芋)’라고 한다. 이모는 한국말로 마, 결국 고코이모는 한국 고구마란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대마도의 고구마 소주와 메밀 소주. 대마도의 고구마는 고코이모(孝行芋)라고 한다. 이모는 한국말로 마. 결국 고코이모는 한국 고구마란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대마도의 가와치주조(河内酒造)에서 만든다

    대마도와는 다른 이키섬. 농업이 발달한 풍요로운 곳
    대마도 이즈하라(厳原) 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약 50km를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 이키섬이다. 크기는 약 제주도의 1/10으로 작은 섬이며, 차로 4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이키섬에 도착하는 순간 왜 소주가 이곳에 정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산맥으로 이어진 대마도와 달리, 이키섬은 평지였다. 산은 있지만 높지 않았고, 그 사이사이에 평야가 있었다. 4월에 방문했을 때는 청보리가 평야를 메우고 있었고, 논에 모내기하기 위해 물을 대고 있었다. 대마도와는 다른 풍요로운 섬이었다. 그래서 잉여 농산물이 생기고, 그것으로 소주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농사를 하고 난 여물로 소에게 먹이를 줬다. 그래서 소고기도 발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이키규(壱岐牛)’라는 품종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고급 소고기 품종이다. 결국 대마도로 보낸 소주는 이키섬에서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키섬의 보리

    프랑스 샴페인처럼 WTO <지리적 표시>받은 이키섬의 보리소주
    일본 국세청에서도 이키섬의 보리소주 기원에 대해 한반도 유래설을 가장 유력한 주장으로 기재해 놓고 있으며, 사케 소믈리에 홈페이지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이키섬의 보리소주가 WTO에서 지정한 ‘지리적 표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키섬의 보리를 써서 만든 소주만 ‘이키 소주’라는 칭호를 쓸 수 있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샴페인’, 그리고 코냑 지방의 ‘코냑’, 오키나와 ‘아와모리 소주’와 같은 특별한 지역 문화권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한반도였다.

    이키섬에서 발견한 조선의 소줏고리

    우리의 술은 WTO에서 인정한 지리적 표시 못 받아
    일본이 ‘이키 소주’에 대해 WTO에서 지리적 표시를 받고 있다면 우리는 받은 술이 있을까? 실은, 술 부분에서는 없다. 농식품부가 인정한 지리적 표시에 ‘진도 홍주’와 ‘고창 복분자주’ 등이 들어가 있지만, WTO에서 받은 것은 아니다. 일본의 보리소주 양조장의 역사를 물어보니 대부분 100년이 넘은 곳이 많았다. 그만큼 그들은 준비를 많이 해 왔다는 것이다. 전통주 문화가 단절되었던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에 어려움도 있다.

    이키섬의 이키규. 마블링이 많은 것이 일본 소고기다운 모습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에도 지역적 문화 및 농업으로 연계된 술들이 계속 복원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충남 서천만 해도 ‘소곡주’를 빚는 곳이 50곳이 넘는다. ‘안동 소주’만 해도 5곳 이상의 양조장에서 수십 종의 안동소주를 만들어간다. 제주도에서는 ‘오메기술’, ‘고소리술’도 종류가 많아지고 있으며, 단절된 지역 술들이 모습을 보여가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우리도 WTO에서 지정한 ‘지리적 표시’를 받고 싶다. 외국에 가서 프랑스 ‘샴페인’이나 ‘코냑’처럼 우리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키섬의 보리소주는 우리가 기원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우리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소통과 교류를 통해 같이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키섬의 보리 소주.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양조장이 많다
    *다음 편은 이키섬과 한국을 연결하는 이키 소주 <친구(ちんぐ)>로 이어집니다.

    이키섬 앞바다.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으로 붐빈다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명욱 전통주 갤러리 부관장,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일본 릿쿄(立教)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0년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탈사이트에 제공했다. 가수겸 배우 김창완 씨와 SBS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했으며, 본격 술 팟캐스트 '말술남녀'에도 출연하고 있다. 명욱의 동네술 이야기(blog.naver.com/vegan_life) 블로그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