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명에 닭과 용 두 동물 등장 예사롭지 않아… 예로부터 명당이었던 듯
계룡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장초금의 <한원翰苑>에 나온다. <괄지지括地志>를 인용해 ‘國백제東有鷄藍山 혹은 鷄山東峙’라 하여 계룡산을 계람鷄藍산 혹은 계산鷄山이라 하고 있다. 백제시대부터 계룡산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라 경멸왕 8년(924) 최치원이 지은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비에서도 ‘계룡’을 ‘계람’으로 적고 있다. 그렇게 보면, 계룡과 계람은 비슷한 개념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통일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체제 정비를 하면서 전국을 대사‧중사‧소사로 나누며, 중사 오악에 서악 계룡산을 지정했다고 나온다. 국가 제사지로서 중요시한 산인 동시에 이미 1천 수백 년 전부터 계룡산이란 지명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대개 산 이름은 산 형세를 가리키거나 풍수적으로 음양에 해당하거나, 명당자리를 말하거나, 동물 모양을 닮은 지형을 나타내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명명한다. 그런데 동물 형태로 나타내더라도 대부분 하나의 동물을 지칭한다. 반면 계룡산은 닭과 용, 두 종류의 동물을 가리킨다. 두 마리의 동물이 하나의 산을 가리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계룡의 유래를 무학대사에서 찾는다. 무학대사가 천도를 하기 위해 이태조와 함께 신도안과 계룡산을 둘러보고는 “이 산은 한편으로는 금계포란형이요, 또 한편으로는 비룡승천형이니 두 주체를 따서 계룡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시기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 무학대사는 1300년대 후반 인물이고, 백제시대는 이보다 1,000년 가까이 앞선다. 단지 산의 형세가 닭 벼슬을 닮았고, 용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사실을 볼 때 애초 지명이 계룡이었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산태극, 수태극이나 쌍룡농주형 등도 산의 형세에 따라 유래한 개념이다. 계룡산은 주봉인 상봉(천왕봉),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벼슬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상봉과 쌀개봉을 이은 능선은 용의 모양을 닮았으며 사방에 계곡과 용추가 있다고 해서 용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연봉들이 마치 9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산이라 하여 구룡산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이 외에도 산세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라 해서 화산, 화채산이라고도 불렀다.
2017년 계룡산 탐방객은 전국 나들이객이 가장 많은 10월에 23만 7,500여 명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 탐방객은 17만 7,000여 명. 10월, 11월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다. 동학사 입구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과 계룡산 곳곳에 핀 진달래가 5월의 계룡산 방문객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