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7세기 숨진 男노인 뼈”…선화공주 아닌 ‘서동왕자 무덤’?

산야초 2018. 7. 19. 23:07

[문화]

게재 일자 : 2018년 07월 18일(水)
“7세기 숨진 男노인 뼈”…선화공주 아닌 ‘서동왕자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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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익산 쌍릉(대왕릉)의 석실 내부 구조와 지난 4월 발굴 당시 목제 유골함의 위치.


▲  발굴 당시 목제유골함과 함에 담긴 인골 파편. 문화재청 제공
- 익산 쌍릉 102개 人骨 정밀분석 뒤 反轉 

161~170.1㎝로 당시엔 큰 키 
삼국사기 ‘풍채훌륭’ 표현 부합 

2년전엔 20~40세女 치아 판단 
‘신라 선화공주의 묘’ 추정 화제
 

전북 익산 쌍릉(雙陵·사적 제87호) 대왕릉의 인골(人骨)이 과학적 분석 결과 ‘백제 무왕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이 문화재청에 의해 18일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노년기 남성으로 확인됐다”며 “인골의 주인공이 (향가 서동요 속 주인공인) 백제 무왕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는 국립전주박물관이 2016년 조사 때 대왕릉 유골의 치아가 20∼40세 여성의 것이고, 수습된 토기는 신라계라고 밝힌 것과는 상반된 결론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대왕릉의 인골 주인공 확인을 위해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참여시켜 102개 인골 조각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 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성별은 남성이고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했다.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로 무왕에 대한 ‘삼국사기’의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는 표현과도 맞아떨어진다. 또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나타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인골의 주인공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600년에 즉위하여 641년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으로 보아 무왕의 사망 나이가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나이와 비슷하다”며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인골 분석 결과는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이 중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으나 피장자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왔다. 2016년 전주박물관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계 일각에서는 대왕릉의 피장자가 무왕이 아닌 무왕의 아내로 추정되는 신라 선화공주라는 주장을 제기해 화제가 됐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100년만에 관뚜껑 다시 여니 "왕릉 주인은 백제 무왕"

 
100년 만에 재발굴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대왕릉에 묻힌 주인공이 백제 무왕(재위 600∼641)일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재발굴
내부서 나온 인골 분석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917년 이후 한 세기 만에 다시 발굴한 익산 쌍릉 대왕릉(사진)에서 발견한 인골을 분석해 추정한 '60대 전후 남성 노인, 키 160~170.1㎝, 사망 시점 620~659년'이라는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917년 이후 한 세기 만에 다시 발굴한 익산 쌍릉 대왕릉(사진)에서 발견한 인골을 분석해 추정한 '60대 전후 남성 노인, 키 160~170.1㎝, 사망 시점 620~659년'이라는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익산 쌍릉은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 설화 서동요(薯童謠) 주인공인 무왕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가 묻혔다고 알려진 백제시대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이다.  
 
그러나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은 1917년 조선총독부가 쌍릉을 발굴하면서 대왕릉에서 수습한 유물을 정리하면서 피장자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치아를 분석한 결과 치아 주인이 20∼40세 여성이고, 무덤 내부에 신라계 토기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익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백제문화유산주간인 11일 오후 전북 익산시 석왕동 사적 제87호 쌍릉 대왕릉에서 원광대학교 마한ㆍ백제문화연구소 이문형 책임연구원이 2차발굴 정밀조사 과정 및 출토 유물 등을 설명하고 있다. 백제문화유산주간은 백제역사유적지구 8개소가 지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 백제문화유산이 갖는 역사ㆍ문화적 중요성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국립공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백제세계유산센터 등 8개기관이 협력해 마련했다. 14일까지 열리는 행사 세부 내용은 백제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07.12. chocrystal@newsis.com

【익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백제문화유산주간인 11일 오후 전북 익산시 석왕동 사적 제87호 쌍릉 대왕릉에서 원광대학교 마한ㆍ백제문화연구소 이문형 책임연구원이 2차발굴 정밀조사 과정 및 출토 유물 등을 설명하고 있다. 백제문화유산주간은 백제역사유적지구 8개소가 지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 백제문화유산이 갖는 역사ㆍ문화적 중요성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국립공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백제세계유산센터 등 8개기관이 협력해 마련했다. 14일까지 열리는 행사 세부 내용은 백제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07.12. chocrystal@newsis.com

익산 쌍릉 재발굴팀의 석실 벽면 조사 모습.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익산 쌍릉 재발굴팀의 석실 벽면 조사 모습.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결국 문화재청은 100년만의 재발굴을 결정했다. 문화재청·익산시·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지난 4월 무덤방 가운데에 있는 관대(棺臺·관을 얹어놓는 넓은 받침) 위에서 인골이 담긴 상자를 찾아냈다.  
 
18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대왕릉 인골을 다양한 기법으로 조사한 결과, 60대 전후 남성 노인의 것으로 나타났다”며 “키는 161∼170.1㎝로 추정되고, 사망 시점은 620∼659년으로 산출됐다”고 재발굴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인골은 일제가 발굴한 뒤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상자에 있는 인골은 102개 조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 모두 한 개체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무왕은 백제 제30대 왕으로 백제의 사찰 중 최대 규모인 미륵사를 창건했다. 출생 시점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재위 기간이 41년에 이른다. 620∼659년에 세상을 떠난 유일한 백제 임금이기 때문에 대왕릉 인골의 주인공을 무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연구소의 결론인 셈이다.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나온 인골 상자. 연구소는 무덤 내부에서 나온 인골함을 근거로 대왕릉은 무왕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나온 인골 상자. 연구소는 무덤 내부에서 나온 인골함을 근거로 대왕릉은 무왕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연구소는 각기 다른 뼈를 통해 성별·키·연령과 사망 시점을 추정했다. 조사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가톨릭의대 응용해부연구소, 라드피온, 미국 베타연구소, 퓨전테크놀로지가 참여했다.
 
연구소는 “팔꿈치 뼈 각도, 발목뼈 가운데 하나인 목말뼈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 너비를 봤을 때 성별은 남성일 확률이 높다”며 “161∼170.1㎝라는 예상 키는 넙다리뼈 최대 길이를 추정해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세기 남성 평균 키가 161.1㎝인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큰 편”이라며 “삼국사기에 무왕을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묘사한 대목이 있다”고 부연했다.
 
나이는 최소 50대이고, 60∼70대 노년층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는 결과도 나왔다.
 
연구소는 “목 울대뼈 갑상연골에 노화로 인해 굳어지는 골화(骨化)가 상당히 진행됐고, 골반뼈 결합 면이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다”며 “남성 노년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과 다리·무릎 통증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에 있는 1자 모양 흔적에 대해서는 “골절됐다가 3개월 정도 뒤에 치유된 것으로 보인다”며 “타격보다는 낙상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고, 직접적 사인(死因)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구소 측은 추정 사망 시점 620∼659년은 가속 질량분석기(AMS)로 정강이뼈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유전자 분석도 시도했으나 뼈가 심하게 부식돼 결과를 얻기 쉽지 않았다”면서도 “벼·보리·콩 섭취량이 많고, 어패류 같은 단백질 섭취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석실 석재와 목관, 인골 상자 재질 분석 결과도 공개했다. 석재는 무덤에서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되며, 목관은 무령왕릉과 동일한 일본 특산종 금송(金松)으로 드러났다. 유골함 원료는 잣나무류 판자다.
 
발굴조사단인 마한백제연구소 관계자는 “대왕릉을 보완 조사하고, 대왕릉에서 북쪽으로 180m 떨어진 소왕릉을 발굴해 쌍릉 성격과 무덤 주인공을 더욱 명확히 밝혀낼 것”이라며 “백제 후기 왕릉급 고분에 대한 중장기 연구도 수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gnang.co.kr 


[출처: 중앙일보] 100년만에 관뚜껑 다시 여니 "왕릉 주인은 백제 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