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관련 문건을 두고, 박근혜 전 정부나 군의 ‘내란 음모’인 것으로 예단(豫斷)한다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0일 “새로운 문건이 나왔다”며, 기무사가 지난해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에 첨부됐던 67쪽 분량의 ‘대비 계획 세부 자료’ 중에 일부를 선별 공개했다. 지난 18일 기무사가 특별수사단과 국방부에 각각 제출한 문서로,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청와대가 이를 공개한 것은 수사 지휘를 자처하는 월권(越權)으로 비친다. 이미 내린 결론에 짜맞추는 수사를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 대변인이 “청와대는 이 문건의 위법성과 실행 계획 여부, 배포 단위 등에 대해 특수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세부 자료엔)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판단 요소와 검토 결과가 포함돼 있다”고 덧붙인 사실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해당 문건이 ‘소요사태나 폭동에 대처하기 위한 계엄 검토’인지, 아니면 ‘내란음모의 실행 계획’인지는 특수단이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핵심 쟁점인데도, 청와대의 시각은 ‘실행 계획’이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 포고문 등이 이미 작성돼 있다”고 대변인이 굳이 부연한 배경도 달리 있기 어렵다.
그렇잖다면, 특수단도 2일 전에 확보하고 검토 중일 자료를 굳이 청와대가 공개했겠는가.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가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지만, 수사단 구성을 포함한 군령권 행사는 국방부 장관을 통해야 한다. 국방부 장관을 패싱하고 직접 수사를 지시하는 것도, 서류 제출 지시와 함께 수사 관련 문건을 직접 발표하는 것도 월권”이라고 지적한 취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20일 출석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청와대가 공개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라는 요구에 대해 “2급 기밀 문건이라서 곤란하다”고도 했다. 기밀 문건도 청와대 공개는 당연하고, 국회엔 제출할 수 없다는 식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청와대는 이제라도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