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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산이 神들의 거처라면 파르나소스산은 인간과 신의 내통처

산야초 2018. 9. 5. 23:07

[신화와 함께 읽는 세계 고대문명|<2> ‘델피’의 신탁] 올림포스산이 神들의 거처라면 파르나소스산은 인간과 신의 내통처

  • 글·사진 월간산 박정원 편집장  

입력 : 2018.08.20 10:12 [586호]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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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중심 옴파로스에서 신탁… 제우스·아폴론 신화도 전해

    그리스 델피는 ‘신神들의 놀이터’ 올림포스산Olympus(2,917m)만큼이나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올림포스산은 신들의 거처로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었고, 델피는 아폴론 신전이 모셔진 파르나소스산Parnassos(2,200m)의 신탁神託·Oracle으로 그에 못지않게 거론된다. 고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신의 뜻을 전하는 장소가 바로 델피인 것이다.

    동서양 공통적으로, 특히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오라클’이다. 델피에서는 사제, 즉 무녀를 통해 신의 뜻을 해석한 반면, 중국에서는 거북이의 등을 불에 태워 나타난 형상을 보고 하늘의 뜻, 즉 신의 메시지를 해석해 냈다. 중국 최초 청동기문명이라 불리는 은허殷墟 유적지에서 거북이 등을 태운 오라클들이 숱하게 발견됐다. 유적지 인근 은허박물관에는 그 유물들을 그대로 전시해 놓고 있다. 그리고 그 형상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실제로 그 내용들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와 함께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의 초기 형태들도 오라클과 함께 출토돼, 많은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의 고대문명에 대해서는 앞으로 실을 예정이다.

    그리스 ‘델피와 신탁’은 한 묶음이다. 델피가 신탁의 도시가 된 출발점은 크로노스가 삼킨 돌에서 시작했다고 6월호에 밝힌 바 있다.

    티탄 신족의 왕으로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크로노스는 ‘앞으로 태어날 자식 중에 한 명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된다’는 신탁을 듣고는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전부 삼켜 버린다.

    제우스 어머니이자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이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자식 제우스 대신 돌을 강보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주고 제우스를 크레타로 피신시켜 무사히 성장하도록 한다.

    크로노스가 삼킨 돌과 제우스의 형제들은 나중 전부 뱉어낸다. 제우스는 그 돌을 델피의 파르나소스산으로 가져가 신탁의 중심장소에 상징적으로 놓는다. 그 장소가 지금까지 세계의 중심이라고 알려진 델피의 옴파로스Omphalos이자 신탁의 중심장소인 것이다. 신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델피와 관련한 신화는 매우 많다. 그 중에 델피로 입지가 정해진 신화만 살펴보자. 올림포스산은 신들의 거처이다. 아폴론은 올림포스산을 떠나 활과 화살로 무장한 채 인간이 살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나선다. 그 장소가 파르나소스산 아래 남쪽 기슭 숲 속의 빈터였다. 하지만 누군가 이미 터전을 잡고 있었다. 대지의 신 가이아가 홀로 낳은 자식인 ‘피톤Python’이라 부르는 거대한 뱀 같은 용, 용 같은 뱀이었다.

    아폴론은 이 거대한 용을 활로 쏘아 죽이고 신전을 세웠다. 그래서 델피는 아폴론을 모신 아폴론 신전이고, 아폴론의 예언을 받는 신성한 샤먼은 원래 있던 용의 이름에서 유래한 듯한 ‘피티아Pythia’라 부르게 됐다고 신화는 전한다. 피톤과 피티아가 무관하지 않다는 암시를 보여 준다. 동양적 기준으로 피톤이 음이라면, 아폴론은 양이다. 음과 양의 조화로 이뤄진 신탁인 것이다. 따라서 올림포스산이 신들의 산이라고 한다면, 델피의 파르나소스산은 신과 인간을 잇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신탁이 결국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결정적인 고리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장소가 바로 델피다.

    아폴론이 올림포스산에서 내려와 델피에 자리 잡으려 할 때 이미 터전을 잡고 있던 피톤을 아폴론이 화살을 쏴 죽였다는 신화를 그림으로 그렸다.
    아폴론이 올림포스산에서 내려와 델피에 자리 잡으려 할 때 이미 터전을 잡고 있던 피톤을 아폴론이 화살을 쏴 죽였다는 신화를 그림으로 그렸다.
    무녀 피티아가 신탁을 들어 전하고 있다.
    무녀 피티아가 신탁을 들어 전하고 있다.


    아폴론이 활로 델피의 피톤 쏴 죽여

    아폴론 신화에 이어 제우스 신화가 또 등장한다.

    달걀같이 생긴 바위 옴파로스는 라틴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최고의 신 제우스는 세상의 중심을 찾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델피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날려 보낸다.

    아폴론 신을 모신 델피 신전은 대략 B.C 4~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신탁은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가진다. 그 당시에는 당연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가 평평한 지구의 중심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여겨진다.

    B.C 4~3세기면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이다. 중국 은허유적지도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으로 추정한다. 그렇게 보면, 그 당시 동서양은 신에 대한 궁금증, 즉 신탁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였다고 여겨진다. 이른바 ‘신의 시대’이자 ‘신탁의 시대’다.

    제우스가 델피에서 세계의 중심을 파악하기 위해 동서 양쪽으로 날려 보낸 독수리 두 마리는 원위치로 다시 돌아온다. 그 자리가 바로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제우스인 줄 알고 삼켰다가 뱉어낸 돌이 있던 그 장소다. 제우스의 그 돌과 독수리 두 마리가 돌아온 자리의 상징성은 세계의 중심으로 포장하고도 충분히 남는다. 그래서 그곳을 ‘대지의 배꼽’ 옴파로스라 부른다. 신탁으로서 완벽한 입지조건을 신화로 확인하고 있다. 아폴론 신과 최고의 신 제우스가 등장하는 상징적 조건이다. 옴파로스 바위는 델피 바로 옆 델피박물관에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시돼 있다. 혹자는 박물관에 있는 옴파로스 바위도 가짜이며, 1913년 발굴하면서 누군가 몰래 가져간 이후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의 중심 델피에서 아폴론 신의 뜻을 받아 전하는 신탁은 델피를 무역, 상업적으로 매우 번성하게 만들었다. 주변 도시에서 신탁을 받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자使者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더욱이 델피신전에 모셔진 신은 아폴론이다. 델피 수호신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의 신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신탁 제사장은 샤먼이었다. 초기 샤먼은 피티아라 불리는 아주 어린 처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티아는 농염한 여인으로 변했다. 신탁의 절정기에는 여러 도시에서 신탁수요가 많아 피티아가 3명으로 늘어났다. 신탁 초기에 신의 응답은 1년에 한 번 이뤄졌지만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갈수록 늘어났다. 매년 2월 말 3월 초의 아폴론(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폴론이지만 로마신화에서는 아폴로) 생일 때 이뤄지던 신탁은 나중에 매달 17일에 이뤄질 정도로 자주 했다. 신의 계시에 대한 궁금증 수요가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델피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최고의 신 제우스와 독수리. 제우스는 세계의 중심을 알기 위해 델피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냈으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그래서 델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한다.
    최고의 신 제우스와 독수리. 제우스는 세계의 중심을 알기 위해 델피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냈으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그래서 델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한다.


    신탁 제사장 피티아는 피톤에서 유래

    샤먼 피티아는 신탁의례를 하기 전 몇 가지 의식을 치렀다. 먼저, 피티아와 사제들은 신전 바로 옆 카스탈리안 샘물Kastalian Spring로 몸을 깨끗이 씻는다. 일종의 온천수로 지금도 보존돼 있다. 이후 피티아는 월계수와 보리꽃을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에서 태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아폴론 신전 바로 아래 있는 지하성단으로 내려간다. 여기서 사제들과 신탁 신청자들이 한 방에 머물러 있다가 신청자가 큰 소리로 질문을 외친다.

    이어 피티아는 옴파로스 근처 카소티스 샘물Kassotis Spring을 마시고 월계수 잎을 씹는다. 그리고 신성한 삼각대에 앉는다. 피티아는 갈라진 틈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들이마신다. 그녀가 몽환의 경지에 빠졌을 때 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 말들은 사제에 의해 글로 쓰여지고 해석된다. 신탁으로 주어진 대답들은 전부 모호하다. 진위여부를 떠나 그것은 신의 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은 다양한 형태로 전한다. 중국의 신탁이 거북이 등을 태워서 나타난 형상으로 해석했다면 델피의 신탁은 시문이나 참나무잎의 소리나 조각상 머리의 끄덕임 같은 암시, 물고기의 헤엄 등으로 애매하게 나타났다고 전한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페르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에서 신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도 신탁을 받고 전쟁에 나섰다는 기록도 있다. 샤먼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당신을 이길 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신탁을 했다고 전한다. 현재까지 전하는 신탁의 진술과 예언은 1,150여 건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신탁을 하는 장소는 한두 군데가 아니다. 수십여 군데 있었다고 전한다. 그중에서 델피의 신탁이 가장 정확하고 신빙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델피 신탁이 절대적이고 위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델피 신전 가기 전 마을에 있는 우뚝 솟은 오라클 바위.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 있다.
    델피 신전 가기 전 마을에 있는 우뚝 솟은 오라클 바위.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 있다.

    델피 도착 직전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촬영한 마을이 있다. 그림 같은 마을이다. 그 마을 귀퉁이 교회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Ora’s rock’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신탁바위’란 뜻이다. 여기서도 신탁을 했다는 얘기다. 신탁 장소는 교회 시계탑이 있는 곳으로 기운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형상이다. 완전 돌출 지형이다. 사제가 하늘을 향해 하는 행위를 주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사방이 노출된 곳이다.

    이어 10여 분 거리에 델피가 나온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암벽산인 파르나소스산이 병풍처럼 델피를 감싸고 있다. 파르나소스산 정상 봉우리는 키르피스Kirfis라고 한다. 남쪽 산허리는 파이드리아데스Phaidriades다. 파이드리아데스는 두 개의 봉우리로 나뉘어 반짝이고 있다. 일명 빛나는 바위다. 아폴론신전을 보호하는 듯 웅장한 위태를 뽐낸다.

    남쪽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파이드리아데스 암벽 절벽에 반사되어 신탁의 성소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암벽 산을 배경으로 프레이스토스계곡을 거쳐 멀리 코린토스만灣의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을 이룬다. 왼쪽 봉우리는 에토스, 오른쪽은 킨토스, 앞산(안산)은 헬리콘이다. 그리고 헬리콘 맞은편 코린토스만 방향으로 지오나Giona산이 둘러싸고 있다. 델피의 아폴론신전은 완벽한 요새와 같다.

    파르나소스의 앞산은 키르페Kirphe산이다. 키르페 정상 봉우리가 헬리콘. 앞산이 안성맞춤 높이로 델피 신전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더욱이 키르페산에는 예술의 여신 9자매가 살았던 것으로 전한다. 태양의 신·음악의 신·운명의 신이 있는 주산과 예술의 신이 있는 앞산이 맞장구를 치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저 아래는 플레이토스강이 흐른다. 현재 물길은 볼 수 없지만 과거 깊은 협곡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높은 협곡the high valley of the River Pleistos이 두 산을 나누고 있다.

    지형적으로 델피 신전이 있는 장소는 사람 살기에 적당한 순탄하거나 평평한 곳이 절대 아니다. 파르나소스산은 제법 가파르다. 왜 이 가파른 산을 깎아 신전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아폴론 신화가 있기 하지만. 한편으로 아폴론도 왜 하필 이 험지에 터전을 내렸을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몇 가지 입지적 조건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첫째, 델피는 파르나소스산 사면을 깎아 도시를 건설했다. 계곡 바로 위, 즉 산의 가장 아래 물과 가장 가까운 장소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고, 그 위에 신전, 그 위에 극장, 그 위에 원형경기장이 차례로 완만한 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신전과 극장, 원형경기장은 필수적으로 건립돼 있다. 이 건물들은 절대 수평 구조가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 수직 구조로 건립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추정컨대, 신과 인간은 절대 수평적 관계가 아니며, 이 수직적 구조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일종의 고리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신전은 신과 통하는 장소고, 극장은 연극이나 노래 등 예술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했다.

    원형경기장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를 강건하게 단련시키는 장소로 이용됐다. 육체와 정신은 고대로부터 둘이 아니었다. 인간의 정신을 정화시키고, 육체를 더욱 강건하게 다진 뒤에야 신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의미를 전한다고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평지는 신전과 원형경기장의 입지적 조건에서 우선 배제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대 신전의 우선적 입지조건은 신과 인간이 수직관계로 접할 수 있는 경사진 장소가 필요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왼쪽부터 델피 박물관에 있는 옴파로스 바위. 델피 신전에 있는 옴파로스 바위.
    왼쪽부터 델피 박물관에 있는 옴파로스 바위. 델피 신전에 있는 옴파로스 바위.


    델피 신전은 해발 700m에 위치

    둘째, 신전의 해발이 약 655m로 나왔다. 높이를 확인하는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인간이 살기 가장 적합한 고도가 700m 전후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 기압의 변화가 가장 적은 높이다. 사람이 항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해발이라고 한다. 우연인지, 알고 조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절묘한 높이가 아닐 수 없다. 아마 경험상, 아니면 영감을 받아 조성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셋째, 사제 피티아는 신탁을 할 때, 아폴론신전의 갈라진 틈에서 나오는 가스를 흡입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피티아가 어떻게 몽롱한 상태로 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부분만큼은 신화적 허구라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델피 신전 부근이 당시엔 온천지형이었고, 지하단층에서 가스가 올라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가스가 환각성분이 있는 에틸렌 같은 탄화수소라고 보고한 바 있다. 따라서 이 가스를 마신 사제는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적·심리적 집중력을 높여 신과 영적으로 교감했다고 볼 수 있다. 

    영적靈的 구조나 지형적 구조가 어떻게 이렇게 착착 맞아떨어지는지. 짜여진 각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화는 그렇다.

    델피마을에서 델피박물관까지 차로 10분, 박물관에서 델피 신전까지는 5분밖에 안 걸린다. 박물관의 다양한 유물을 보고 신전으로 향했다. 파르나소스산의 암벽이 유달리 반짝거리는 듯했다.

    유적지로 들어간다. 메인 길은 ‘신성한 길’이라 부른다. 제법 널찍하다. 길을 걸으며 화려했던 과거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당시엔 세계 최고의 도시였을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만 찾는 황폐한 유적지일 뿐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아폴론 신전 바로 아래 복제 옴파로스가 방문객을 맞는다. 바로 그 옆 우뚝 솟은 바위, 즉 시빌Sibyl이 최초로 신탁을 올린 장소라고 한다. 신탁 장소는 공통적으로 돌출 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피티아가 몽롱한 상태에서 신탁을 받던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주변은 돌무더기만 무성하다. 상상 속으로 상황을 그려볼 뿐이다.

    아테네 보물창고도 한켠에 있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승리한 것을 감사히 여겨 아폴론 신께 바친다는 글을 남쪽 벽에 새겼다고 전한다. 지금 있는 것은 1900년에 복원한 것이다. ‘Two simple rules for life: know thyself, take nothing in excess인생 두 가지 법칙: 너 자신을 알라, 중용을 지켜라’ 등의 문구 등 격언과 명언이 8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 건너편에는 피티아와 관련 있는 청동 뱀기둥이 있다. 신전은 웅장하다. 수천 년 전에 이런 정도의 건축물을 건립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지금 신전 기둥은 몇 개 남아 있지 않다. 여러 형태의 건축물 흔적이 주변에 남아 있다. 정말 상상 속으로만 그려볼 뿐인 건물들이다.

    델피 신전 제일 위에는 원형경기장이 있다. 지금은 경기장이라기보다는 그냥 과거의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델피 신전 제일 위에는 원형경기장이 있다. 지금은 경기장이라기보다는 그냥 과거의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신전 맨 위쪽에 원형경기장 자리 잡아

    신전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극장이 나온다. 4년마다 열리는 피티아 제전에서 음악과 연극 공연을 하던 곳이다. 정신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했던 야외 공연장이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곳은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위치로 공명이 일어나도록 건립했다.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어떻게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는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그 위로 한참 걸어올라가면 파르나소스 능선 아래 원형경기장이 있다. 이곳에서 육상이나 레슬링, 복싱 같은 경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부 나체로 했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 신과 통한다고 그랬을까…. 원형경기장 고도는 700m가 조금 더 나올 것 같다. 올라오기까지 숨이 찼다.

    여기까지가 델피의 모습이다. 아니 신탁의 모습일 수도 있다. 순수하게 정화시킨 인간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신과의 내통, 이게 바로 신탁이다. 영발靈發의 도시 델피에 가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