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도 경사·영하 30℃ 빙벽·암벽의 상황
설동 속에서… 포타레지에서 다양한 ‘비박’ 현장
최석문·안종능·문성욱의 2012년 알래스카 헌터(4,441m) 북벽에서의 비박. 17시간 등반을 마친 이들은 얼음 절벽을 깎아 겨우 엉덩이를 붙이는 비박지를 만들어 앉아서 잤다. 아래는 천길 빙벽 낭떠러지. 다음 날 15시간 넘게 등반해 북벽을 완등했다. 대부분은 여기서 하산한다. 하지만 이들은 해발 3,841m 지점에서 하룻밤을 묵고 헌터봉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설사면의 눈을 파서 비박 자리를 만들었다. 이때 포레이커(5,304m) 너머 노을이 물드는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영하 40°C의 혹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하룻밤을 보낸 후 악전고투로 정상에 섰다. 내려와서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 하산했다.
2012년 헌터 북벽 문플라워 루트를 등반할 때의 이종관(앞), 조규택, 박종일을 정승권 교장이 찍었다. 총 35피치 거벽에 고난도 빙벽·믹스 루트가 섞여 있어 위험하고 까다로웠다. 가장 힘들었던 건 영하 30°C의 벽에서 얼음을 깎아 자는 것. 스노샤워가 밤새도록 쏟아져 살을 에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2004년 로체(8,516m) 남벽을 등반할 때의 윤치원. 등반 중 눈사태를 견뎌낸 직후의 모습을 김창호가 찍었다. 따뜻한 성품의 휴머니스트였던 윤치원(당시 35세)은 2010년 마나슬루 등반 중 실종되었으며, 김창호 대장은 그를 가장 ‘위대한 한국 산악인’으로 꼽았다.
울릉도 성인봉 정상 일대는 겨울이면 10m에 이르는 거대한 커니스가 생긴다. 매주 눈이 내려 성인봉 오르는 산길은 기본 2~3m 높이의 적설량을 유지한다. 설동을 파고 거처를 마련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산악 스키로 정상부에 오른 울릉도 산악인 최희찬이 설동을 파던 중 잠깐 고개를 내밀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16년 봄 시즌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다국적 숙소 텐트. 당시 13번째 8,000m 고봉 등정을 이룬 김미곤 대장의 원정대를 비롯 일본, 스페인, 중국, 오스트리아 팀이 몰려 북적였다. 등정하기 위한 전진기지다. ABC부터 1~3캠프까지 고도를 높이며 자신과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된다.
정승권 교장이 2010년 엘캐피탄 ‘더 쉬일드’를 오를 때 찍은 모습. 6피치를 올라선 후 포타레지를 치고 쉬고 있다. 왼쪽이 서강호, 오른쪽은 이종관, 아래쪽은 등반자를 확보하는 이명선이다. 이들은 엄청난 고도감의 거벽을 5일(고정 로프 설치 1일 포함) 동안 등반하며 포타레지 위에서만 잠을 잤다.
울릉도 성인봉 정상 부근 커니스에서 설동을 파고 있다. 안쪽에서 파낸 눈을 입구에서 바깥으로 퍼내는 모습이다. 설동은 파기 쉬워 보여도, 한겨울 내내 다져진 눈이라 파는 데 상당한 힘이 든다. 보통 한 평 넓이만큼 공간을 만드는데 최소 한 시간이 걸린다.
완성된 설동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설동은 2월 이후 만들어야 겨울 내내 쌓여 다져진 눈을 파더라도 무너지지 않는다. 적당한 화기 사용은 오히려 천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다만 입구가 열려 있어 환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올해 5월 알래스카 데날리(6,194m) 1캠프에서 2캠프로 향해 스키와 썰매로 이동하는 석상명·김기현 대원. 앞쪽 두 명은 외국 등반가. 최종 5캠프에서 영하 30°C의 추위와 가스로 대부분의 외국 팀이 등반을 포기할 때, 등반에 나서 대원 전원이 등정했다. 김창호 대장은 “다음날도 날씨가 불확실하고 일정상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도전했다”고 말했다.
2001년 김창호·최석문은 1인당 160만원을 각출해 3개월간의 파키스탄 등반에 나섰다. 비행기값 8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으로 버틴 가난한 원정대였다. 이들은 6,000m급 4개 봉을 오르고 시카리(5,928m) 북동벽에 신루트를 냈다. 사진은 시카리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던 이들이 악천후로 하강이 어렵게 되자, 설동을 파고 비박하는 모습. 아침에 고개를 내민 최석문을 김창호가 찍은 것이다. 몇 시간에 걸쳐 판 설동이며 숨구멍만 열고 입구는 막은 채로, 침낭이 없던 두 사람이 꼭 안고 잠을 잤다.
2012년 이명희·채미선·한미선의 남미 피츠로이(3,405m) 등반 당시 모습. 새벽 3시에 출발해 밤 12시까지 21시간 동안 등반한 이들은 누울 공간도 없는 좁은 터에 슬링으로 확보를 한 채 앉아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채미선이 찍은 이명희(왼쪽)와 한미선이며, 멀리 보이는 첨봉이 세로토레다. 등정 후 하산할 때까지 4일을 벽에서 잤는데, 이날이 가장 안락한 밤이었다. 엉덩이 붙일 데가 없어 벨트에 매달려 자기도 했다. 정상 직전의 비박에서는 일출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