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다부동 전투 승리의 주역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생일잔치가 21일 서울 용산의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생일잔치는 백 장군의 백수(白壽·한국 나이 99세)를 축하하기 위해 미 8군이 준비했다. 1920년생인 백 장군은 23일 만 98세를 맞는다. 그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고 지칭했던 한국군 장성이다.
미 8군이 깜짝 생일잔치 마련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 메시지
책자 만들어 ‘6·25영웅’에 선물
6·25 참전국을 대표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가 백 장군의 백수연에 참석했다. 주한미군에선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대장), 마이클 빌스 미 8군사령관(중장), 케네스 월즈바크 미 7공군 사령관(중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박한기 합참의장, 박종진 육군 1군사령관(대장) 등 한국군 지휘부도 백 대장의 생일을 축하했다.
해리스 대사 등 생일잔치 참석자들은 한줄로 서서 백 장군과 부인 노인숙 여사를 영접했다. 백 장군의 자녀들은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도 영웅이었다”며 “자신의 공적을 늘 남에게 돌렸고 우리에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생일선물로 자개로 만든 지휘봉을 백 장군에게 건넸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무릎을 꿇고 백 장군에게 감사와 축하 메시지를 담은 책자를 전달했다. 김영규 연합사 공보관은 “이 책자엔 전임 주한미군 사령관들과 현 지휘부의 메시지와 사진 등이 들어있다”고 귀띔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백 장군에게 “당신은 한·미 동맹의 초석과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정말 고맙다”고 답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아버지인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미 예비역 육군 대장은 6·25 전쟁 당시 백 장군의 전우였다. 백 장군은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생일잔치에 대해 몰랐다. 에이브럼스 사령관과의 점심식사 자리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가족과 미 8군이 깜짝파티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백 장군은 2016년부터 다리가 불편해져 휠체어로 다니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6·25 전쟁 때 주요 상황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매일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한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8월 대구에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다부동 전투에서 물리쳤다. 이 승리로 북한군의 파죽지세는 꺾였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의 방어선을 다졌다. 백 장군을 지켜보던 미군이 그의 진가를 인정한 계기였다.
6·25 전쟁 중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매튜 리지웨이 육군 참모총장 등 미군 지휘관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 때문에 미군 전체에서도 그의 이름이 잘 알려졌고,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취임하면 그에게 깍듯하게 ‘전입신고’를 하는 게 관례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해리스 대사 등 생일잔치 참석자들은 한줄로 서서 백 장군과 부인 노인숙 여사를 영접했다. 백 장군의 자녀들은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도 영웅이었다”며 “자신의 공적을 늘 남에게 돌렸고 우리에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생일선물로 자개로 만든 지휘봉을 백 장군에게 건넸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무릎을 꿇고 백 장군에게 감사와 축하 메시지를 담은 책자를 전달했다. 김영규 연합사 공보관은 “이 책자엔 전임 주한미군 사령관들과 현 지휘부의 메시지와 사진 등이 들어있다”고 귀띔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백 장군에게 “당신은 한·미 동맹의 초석과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정말 고맙다”고 답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아버지인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미 예비역 육군 대장은 6·25 전쟁 당시 백 장군의 전우였다. 백 장군은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생일잔치에 대해 몰랐다. 에이브럼스 사령관과의 점심식사 자리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가족과 미 8군이 깜짝파티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백 장군은 2016년부터 다리가 불편해져 휠체어로 다니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6·25 전쟁 때 주요 상황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매일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한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8월 대구에 진출하려던 북한군을 다부동 전투에서 물리쳤다. 이 승리로 북한군의 파죽지세는 꺾였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의 방어선을 다졌다. 백 장군을 지켜보던 미군이 그의 진가를 인정한 계기였다.
6·25 전쟁 중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매튜 리지웨이 육군 참모총장 등 미군 지휘관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 때문에 미군 전체에서도 그의 이름이 잘 알려졌고,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취임하면 그에게 깍듯하게 ‘전입신고’를 하는 게 관례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