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진국 정부가 富國强兵을 추구한다, 우리만 이념에 갇혀 거꾸로 가겠다 한다
정답은 나와있는데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이 우리 해군에 자꾸 시비 거는 것은 전력 우위의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초계기와 광개토함이 실제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군함이 곧바로 수장(水葬)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 이견이 없다. 미사일 성능과 무기 체계에서 뒤지기 때문이다. 우리 해군력은 일본에 절대 열세다. 과거 독도 해역에서 한·일 해군이 충돌하면 반나절 만에 궤멸당한다는 시뮬레이션도 있었다. 그 후 해군력 증강으로 격차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뒤처진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본이 만만하게 보고 집적거린다.
한·일 간 힘의 역전을 거슬러가면 1543년이라는 상징적 연도와 마주치게 된다. 그해 일본에 유럽산 철포(鐵砲) 두 자루가 수입됐다. 조선에선 주세붕이 세운 첫 번째 서원이 생겼다. 일본은 서양 무기를 받아들였고, 조선은 성리학 서원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한 왜인(倭人)이 귀화를 요청하며 총통(銃筒)을 들고 왔다. 1589년엔 쓰시마 영주가 조총을 헌상해왔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신무기를 창고에 집어넣고는 잊어버렸다. "우리가 본래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는데 어찌 다른 기술에 기대겠는가"라며 무시했다.
현실에 눈뜰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자기 환상에 빠져 세상을 보려 하지 않았다. 외래 신무기의 놀라운 성능 앞에서도 조선 왕은 "(우리의) 옛 물건은 신령한 힘이 있다"고 하며 아집 부렸다. 일본이 조총 중심의 전투 혁신을 이루는 동안 조선은 주자(朱子)의 나라로 변했다. 중국보다 더한 성리학 교조주의의 꽃을 피웠다. 본지 연재 중인 '박종인의 땅의 역사'에 뼈아픈 구절이 나온다. '적(敵)이 제 손으로 신무기를 거듭 바쳤음에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조총을 앞세운 왜란의 참화를 맞았다. 돌이켜볼수록 가슴 아픈 자멸의 역사였다.
힘 있는 자가 큰소리치는 것이 영원한 국제정치의 법칙이다. 지금 한국은 좌파 관념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지만 우리 주변에선 변함없이 힘의 논리가 판치고 있다. 미·중은 글로벌 패권을 놓고 전방위 충돌 중이다. 경제·군사 대국으로 굴기(�起)하려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이 격렬히 대치하고 있다. 러시아 푸틴은 '차르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일본 아베는 메이지 유신의 영광을 외친다. 힘과 힘이 부딪치고, 국력과 국가 의지가 한 치 양보 없이 격돌하고 있다. 총성만 울리지 않았을 뿐 전쟁판이나 다름없는 파워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한 나라의 국력은 곧 경제와 국방의 힘이다. 경제가 강하고 군사력 센 나라가 우위에 선다. 이것을 옛날 식으로 표현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100여년 전 구미 열강은 부국강병 전략으로 전 세계를 먹어 치웠다. 부국강병 게임에서 뒤진 중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했고, 우리는 나라까지 빼앗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진국이 경제 키우고 강군(强軍)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잘나가는 나라는 예외 없이 부국강병을 국가 목표로 삼고 있다. 안 그런 나라가 어디 하나라도 있다면 말해보라.
그 세계적 흐름에서 동떨어진 나라가 우리다. 희한하게도 한국에서는 부국강병이 구시대 패러다임인 양 배척받고 있다. 국정도, 정책도 거꾸로 간다. 소득 주도론과 탈원전, 대기업 적폐몰이, 반(反)시장 개입, 노동 개혁 포기, 방만한 재정 씀씀이 등이 경제를 쪼그라뜨리고 있다. 군사훈련 중단, 군 복무 기간 단축, 대전차 방어벽 철거, 휴전선 지뢰 제거, GP 철수 같은 무장해제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마치 못살고 힘없는 나라를 만들려고 안달이라도 난 듯하다. 한참 더 성장하고 강해져야 할 나라가 축소와 문약(文弱)의 길을 걷고 있다. 세상에 이런 자해극이 또 없다.
그것은 정권 핵심층의 유전자에 새겨진 '운동권 DNA' 때문일 것이다. 이념의 철옹성에 갇혀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 실용 대신 도덕 우선의 관념론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정부는 다 같이 잘사는 '포용 국가'를 만들겠다고 한다. 감동적인 비전이지만 힘과 실력이 없다면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다. 부국(富國)이 뒷받침돼야 포용도, 복지도, 분배도 가능하다. 강병(强兵)이 있어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다. 중국 전투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다. 아베는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틈엔가 국제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가 이런 모습
은 아닐 것이다.
국부(國富)를 늘리고 국방력을 키우는 것은 국가 경영의 기본 중 기본이다. 모든 선진국이 예외 없이 부국강병의 성공 공식을 따랐다. 이 정부는 거꾸로 가겠다고 한다. 정답은 나와 있는데 눈을 감은 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적이 신무기를 갖다 바치는데도 창고에 처박아 버린 500년 전 조선 조정과 다르지 않다. 안타까운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