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예비역 장성들을 챙기기 위해 합참의장이 31일 직접 움직였다. 박 의장은 이날 예비역 단체의 대표 격인 재향군인회(향군)와 성우회를 찾았다. 합참은 보도자료를 통해 박 의장이 김진호 향군회장과 유삼남 성우회장에게 9ㆍ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국방개혁 2.0, 전시작권통제권 전환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은 뒤 적극적 지지를 당부했다고 밝혔다. 유삼남 회장은 박 의장에게 “일부 국민이 9ㆍ19 군사합의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박 의장의 이날 동선은 전날인 30일 출범했던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대수장)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직 국방부 장관 9명이 참여한 대수장은 향군과 성우회의 친정부적 성향을 비판하며 “9ㆍ19 군사합의서는 대한민국을 붕괴로 몰고 가는 이적성 합의서로 조속한 폐기가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론 수위를 조절했다. 최현수 대변인은 31일 “과거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한 예비역 선배의 우국 충성과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9ㆍ19 군사합의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구축을 위해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속으로 걱정이 많다. 예비역들이 정색하고 반발하면 현직 장관과 군 지휘부에 책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전작권 전환을 놓고 향군과 성우회가 반대했던 적이 있었다. 2006년 12월 21일 노 전 대통령이 민주평통에서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전작권 환수(전환) 반대 주장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등 발언했던 게 공개되자 성우회는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좀 절제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시비에 휘말렸다. 여러분 보기 미안하다”고 언급하자 성우회가 성명 발표를 접었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전직 당국자는 “이 때문에 현 정부가 공을 들인 단체가 향군과 성우회인데 특히 성우회”라고 귀띔했다. 2017년 12월 제15대 회장으로 비(非) 육군, 비(非) 하나회 출신인 유삼남 전 해군참모총장이 뽑혔다.
그런데 대수장이 출범하면서 향군과 성우회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향군과 성우회가 9ㆍ19 군사합의에 대해 군내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일부 예비역 장성들이 따로 만든 게 대수장이다. 대수장 관계자는 “성우회가 제 역할만 하면 우리는 해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예비역 장성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최 대변인은 “(대수장 측이) 요청하거나 또 말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