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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산·들·바람집

산야초 2019. 2. 27. 23:13

제주 산·들·바람집 | 제93호 5-STAR 인증주택


이달의 잘 지은 목조주택 ⑦월간 전원속의 내집 | 매거진 | 입력 2016.05.12 21:24




바쁜 일상 속 쉼표 같은 하루를 위해 방과 부엌, 욕실 한 칸씩이면 충분했다. 간소하지만 사방으로 열린 이 작은 나무집은 저 멀리 보이는 풍경까지 모두 끌어안는다.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적막함을 덜어줄 것 같은 이곳. 해가 저물자 단아한 선의 박공지붕 집이 환하게 불을 밝힌다.

고요한 제주 풍경 속 자리 잡은 집. 사진은 아직 물부엌의 벽체와 지붕이 생기기 전의 모습이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이 당연해져버린 오늘,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한구석에 휴식과 사색의 섬을 하나씩 품고 산다. 자신을 옭아매는 도시의 흔적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최소한의 생활 속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삶. 건축주 부부에게 제주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단 이틀, 주말에라도 이곳에서 혹사당했던 몸과 마음을 한없이 풀어놓을 수 있기를 꿈꿨다. 집은 아주 작아도 상관없었다. 방 한 칸에 욕실 하나, 거실의 역할을 겸하는 작은 부엌 하나, 그리고 더 욕심을 내자면 다락방이면 충분했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의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에서는 삶의 최소주의에 대해 말하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삼간지제(三間之制)’를 예로 든다. ‘집은 세 칸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덕목이다. 그러면서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에 대해서는 인색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한다. 실내면적 15평, 처마로 나간 대청까지 합쳐야 18평 남짓한 크기의 이 나무집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그리고 산과 들, 바람을 만나기 위해 지어졌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삼간지제의 뜻이 간소한 모양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집이다.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 마당에는 개수대, 화장실, 벽난로를 따로 둔 다목적 옥외공간인 ‘물부엌’이 있어 제주의 바람을 막아준다.


마을 끝자락에 있는 대지는 동북쪽으로 오름이 있고, 서남쪽으로 빌레(넓고 평평한 큰 돌인 너럭바위를 제주 방언으로 ‘빌레’라 한다)가 엎드려 있는 너른 땅이다. 박공지붕의 선이 돋보이는 집은 빌레를 따라 살짝 경사진 땅의 형세를 거슬러 누마루를 올려 앉혀 지었다. 높다란 누마루에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주변 경치는 잘생긴 소나무가 담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HOUSE PLAN

대지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대지면적 : 456㎡(137.94평) / 건물규모 : 지상 1층, 다락

건축면적 : 60.31㎡(18.24평) / 연면적 : 60.31㎡(18.24평) / 건폐율 : 13.23%

용적률 : 13.23% / 최고높이 : 6.4m

공법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 경골목구조 + 중목구조 혼합

구조재 : 벽 - 외벽 2×6 구조목 + 내벽 S.P.F 구조목 / 지붕 - 2×12 구조목

지붕마감재 : 컬러강판 / 단열재 : 수성연질폼(천장 150㎜, 벽체 90㎜ 발포)

외벽마감재 : 무절 제주산 적삼목 사이딩, 컬러강판, 회색 고벽돌 / 창호재 : 알파칸창호 70㎜ PVC 시스템창호(창호등급 1등급)

설계저작권자 : ㈜하우스스타일 김주원

리빙큐브 매니저 : ㈜하우스스타일 김주원

설계팀 : ㈜하우스스타일 최범순, 김보경 

시공 : 서울목재 064-784-8566


PLAN - 1F (60.31㎡)  /  PLAN - ATTIC (33.95㎡)


제주도 다목적 옥외공간 ‘물부엌’

산·들·바람집에서는 이 공간의 벽체를 금속프레임과 복층유리로 구성해 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 주변 경관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했다.

산·들·바람집은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 복층유리로 벽과 지붕을 구성한 옥외공간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벽난로와 개수대, 바깥 화장실을 둔 마당 공간인데 제주에서는 이런 다목적 옥외공간을 ‘물부엌’이라 부른다. 부엌 혹은 다용도실과 비슷하나 바닥에 물을 마음대로 뿌릴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제주도 지역의 용어다. 건축적으로는 제주도의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장치가 되어주고, 날씨, 계절과 관계없이 바깥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더 좋은 공간이다. 사다리를 오르면 원두막 같은 바깥 다락과도 연결된다.


생활의 중심이 되는 부엌과 식당 공간. ‘11’자 형으로 간소하게 구성했다. / 작은 툇마루 위에 위치한 방에서 바라본 부엌


시공포인트 1 │ 풍압에 대비한 처마 내밀기 구조보강

툇마루 위로 70㎝가량 처마를 내밀었는데, 처음에는 서까래와 단부(끝머리)를 노출시키는 디자인을 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5-STAR 인증제도 실사 당시, 밑에서 솟구치는 돌풍의 강도가 세고, 특히 풍압에 대비해야 하는 제주도 지역의 특성에 따라 처마의 단부를 다락의 바닥장선과 연결하여 일체화할 것을 지시받았다. 이에 따라 디자인이 수정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 환경적 특성을 반영하여 더욱 튼튼한 집이 완성됐다.


이 집의 유일한 방. 얇은 한지 문이 다른 공간과 직접 부딪히지 않도록 회랑으로 둘러싸 중간영역을 두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이 집의 중심이 되는 부엌과 식당 공간이 먼저 나타난다. 유일한 방인 침실은 주방보다 30㎝ 정도 단을 높여 마루를 깔고 그 위에 앉혔다. 두 벽면에 한지 문을 달아 밖으로 낸 창까지 합치면 총 세 면이 열리고 닫히는 방이다. 침실 밖의 마루는 걸터앉을 수 있는 툇마루가 되어주는 한편, 회랑으로서 얇은 한지 문으로 구획된 방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중간 영역이 된다. 또, 주방과 침실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 세모난 전면 창으로 오름의 풍경을 담아내는 다락방이 자리한다.


INTERIOR

내벽마감재 : 서울벽지, 친환경한지 벽지, 노루페인트 / 바닥재 : PARKY 원목형 강화마루, 코르크마루(CORK4U), 이건강마루SERA

욕실 및 주방 타일 : 세라믹팩토리, 수입석재타일 및 백색타일 / 수전 등 욕실기기 : 아메리칸스탠다드, 대림요업

주방 가구 : 제작가구(맥스원디자인) / 조명 : 바오조명 / 계단재 : 금속구조 위 멀바우 집성재

현관문 : 코렐도어 / 방문 : 자작합판 위 특수한지마감, 예림ABS도어

붙박이장 : 제작가구(맥스원디자인) / 데크재 : 삼나무 데크재


시공포인트 2 │ *칼라타이와 *레프터타이의 조형적 해석

*칼라타이(collar tie, 조름보) / 지붕의 상단 1/3까지 설치하며 마룻대에 서까래를 고정하는 부재
*레프터타이(rafter tie, 서까래 타이) / 지붕의 하단 1/3까지 설치하며 서까래가 양옆으로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부재

구조 안전성을 위해 앞으로 돌출된 처마를 받치는 부재를 보강하고, 박공지붕을 엮어주는 칼라타이는 철물로, 레프터타이는 구조재로 보강했다. 처마를 다락장선과 엮은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내부 천장에 노출된 레프터타이 한곳에는 구조목 사이에 레일을 넣어 식탁 조명을 설치하고, 또 한곳에는 T5 조명을 삽입하여 전반조명으로 사용하였다. 칼라타이를 철물로 대체한 것 역시 디자인과 구조적 안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비와 바람이 많은 제주에 처마가 길게 나온 목조주택을 짓는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목조건축협회의 5-STAR 인증을 받기로 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간의 시공 경험과 노하우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왕이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제주의 바람은 생각보다 훨씬 거셌다. 돌풍이 처마 밑에서 위로 솟구쳐오를 때를 대비한 계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80㎝ 폭 처마가 나온 부분은 모두 다락장선과 연결하고 박공지붕 아래 보이드 공간에는 레프터타이 역할의 구조목을 보강했다. 또, 지역 특성상 풍압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에 대비해 구조와 기초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홀다운 공법을 적용했다.


창 너머 제주의 풍경을 담아내는 회랑 / 다락방에서는 삼각형의 지붕 모양대로 만든 전면창으로 오름이 한아름 담긴다.


작은 집이지만 최소한의 공간으로 꾸려 구석구석 쓰임이 없는 곳이 없다. 창마다 담기는 풍경은 마주한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집을 짓고 나서 부부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제주에 갈 계획을 세운다고. 

설계를 맡았던 하우스스타일 김주원 소장은 이 집을 모델로 하여 지어질 집이 이미 세 채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내 집의 모습이 조선 선비의 검박한 집을 그리며 지은 산·들·바람집과 가장 닮아서가 아닐까. 집의 원형에 가까운 이곳에서 부부는 느리고 단순한 삶의 원형을 조금씩 찾아 나갈 것이다.


취재협조_㈔한국목조건축협회 02-518-0613,  www.kwca.co.kr

                ㈜하우스스타일 02-564-7012,  www.livingcub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