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틸리엔수도원의 겸재화첩
▲ 정선, 금강내산전도, 조선 18세기 33.0 x 54.5cm,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정선, 함흥본궁송, 조선 18세기 28.8 x 23.3cm,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겸재(謙齎) 정선(鄭敾 1676 ~ 1759)은 진경산수(眞景山水)라는
한국적 산수화풍을 하나의 장르로 완성한 한국화의 화성(畵聖)이다.
2009년은 겸재 서거 250주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겸재 정선전,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라는 특별전이 열려 겸재 작품 142점이 출품되었다.
특히 이 전시회에는 독일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되었다가 국내로 돌아온
<겸재화첩>이 공개되어 그 의의를 더했다.
1925년,
독일 오틸리엔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수도원장은 흑백무성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촬영을 위해 조선에 왔을 때 금강산의 한 호텔에
머물면서 금강산 그림을 비롯한 흥미로운 그림 21점을 구해 귀국 후 화첩으로
만들어 수도원에 보관했다.
이런 사실은 1927년에 그가 펴낸<금강산에서>에 나온다.
이것이 겸재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1976년, 당시 유학생이던 유준영(이화여대
명예교수) 씨가 이 책을 읽다가 수도원을 찾아가 보니 뜻밖에도 겸재의 화첩임을
확인하게 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수도원은 화첩을 더욱 소중히 보관하였다.
크리스티 등 경매회사들이 50억 원을 제시하며 매매를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원은 2006년 베네딕도회 한국 진츨 100년을 맞아 왜관수도원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넘겨주었다.
이것이 이번 특별전에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화첩에 있는 21점의 겸재 작품 중 나를 매료시킨 것은
<금강내산전도 金剛內山全圖> 와 <함흥본궁송 咸興本宮松>두폭이었다.
겸재는 생전에 많은 금강산 그림을 그리면서 몇 폭의 내금강전도를 남겼다.
그는 이 그림에서도 보이듯 옛 지도를 그리는 방식의 부감법을 적극 이용함으로써
웅장한 금강산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35세 때인<신묘년화첩>만 해도 그 시각 구성이 다소 어설퍼 보였지만 59세의
<금강전도>에 와서는 완벽한 회화로 제시되었다.
환갑 무렵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금강내산전도>는 높은 고도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각 구성으로 마치 금강산을 수반 위에 올려놓은 듯
바닥부터 통째로 드러나게 하였다.
여기에 짙고 옅은 채색으로 토산(土山)과 골산(骨山)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준수
한 봉우리 사이로는 계곡과 절집을 아련하게 묘사하여 세부 묘사가 아름다운 그림
으로 만들었다.겸재 진경산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겸재의 진경산수는 단지 조선의 실경을 감동적인 구도로 담아냈다는 점에 머물지
않는다. 나아가서 우리 산하의 화강암 골산과 조선 소나무의 특징을 잡아냄으로써
우리 산천의 멋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사실상 조선 소나무의 멋을 그린<함흥본궁송>에서는 노송의 품격을 실감나게 나타
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림이 사진과 다른 점은 실제와는 다르게 그렸음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보다
더 생생하다는 감동을 받게 하는데 있다.
소나무 줄기를 여백으로 표현하고 솔가지 끝을 아무렇게나 퍼리한 것 같지만 노송의
늠름한 자태를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잡아내기는 힘들다.
모든 점에서 겸재는 누구보다도 진짜 사실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던 대가였다.
겸재의 작품 세계와 미술사적 위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겸재의 벗이었던 관아재
조영석이 일찍이 그의<구학첩 邱壑帖>에 붙인 다음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산수화가들은 중국 화본(畵本)에 나오는 방법을 따랐기 때문에
산세와 계곡이 여러 모습이어도 똑같은 필치로 그리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겸재는 내금강, 외금강을 드나 들고 영남의 경승을 두루 편력하여 그 산세와
계곡의 형태를 다 알고 그리면서 스스로 새로운 화법을 창출하였으니 조선적인 산수
화는 겸재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는 겸재를 한국적 화풍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로 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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