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남김없이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부족했는지, 청와대는 “철저히 점검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까지 공개했다. 지난 20일 하루 벌어진 일이다. 15일 오전 강원도 삼척항에 북한 소형 목선이 유유히 들어온 사건이 시작이었다. 경계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과 함께 은폐ㆍ축소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쉽게 진화가 되지 않고 있다. 지난 일주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의혹이 터졌길래 그럴까.
(※◇는 실제 일어난 일, 번호는 제기된 의혹을 각각 뜻한다.)
◇8일 북한 소형 목선, 함경북도 경성군 집삼포구 출항
①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나=요즘 오징어잡이 철을 맞아 북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 많이 모였기 때문에 군 당국은 경비함ㆍ해상초계기ㆍ해상작전헬기를 추가 투입하며 경계를 강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북한 소형 목선은 아군의 3중 경계망 속에서도 우리 측 해역을 57시간 아무런 제지 없이 돌아다녔다.
길이 10m, 폭 2.5m, 높이 1.5m, 무게 1.8t의 규모에 28마력의 엔진을 장착한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까지 항해하려면 최소 1000ℓ의 기름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성에서 삼척항까지 직선거리로 500㎞ 이상이다. 하지만 소형 목선에 이 정도 연료를 실을 공간이 충분치 않다. 연료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다른 선박으로부터 월남 계획을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북한 소형 목선의 도착지가 어디였는지부터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예비역 장교는 “관계 당국의 설명만 보면 이들이 동력을 최소화하고 조류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귀순 계획이라고 보기엔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다”고 말했다.
북한 선원들의 행색이 8일간 바다 위를 헤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점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들의 발견 직후 모습은 다소 피곤한 듯 보이지만 탈진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중간에 다른 선박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15일 북한 소형 목선, 삼척항 입항
②왜 발견하지 못했나=북한 소형 목선은 14일 오후 9시 삼척항 동쪽 4∼6㎞ 떨어진 곳에서 대기한 뒤 동이 트자 엔진을 켜고 15일 오전 6시 22분 삼척항 방파제 부두에 정박했다. 이 과정에서도 북한 소형 목선을 발견한 기회가 세 번 있었다. 그러나 북한 소형 목선을 반사파로 인식하거나(해안 감시레이더) 우리 어선으로 판단했다(지능형 영상감시체계, CCTV). 북한 선원 4명은 112 신고로 경찰과 해경이 출동할 때까지 주민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다른 예비역 장교는 “감시장비뿐만 아니라 항내엔 경비정이, 부둣가엔 병력이 순찰을 돈다. 이런데도 아무도 북한 소형 목선을 식별하지 못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군의 경계태세가 극히 느슨해진 때문이라는 질타가 이어지는 이유다.
◇17일 국방부 1차 백 브리핑
③군, 축소ㆍ은폐 논란 자초했다=국방부는 군의 경계태세가 허술하다는 기사가 잇따라 나오자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을 15일 바로 투입해 조사를 벌였다. 전비태세검열실은 작전ㆍ지휘에 대해 감찰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17일 백 브리핑을 자처했다. 백 브리핑(백그라운드 브리핑)은 정부가 보안이 필요한 내용을 익명으로 발표하는 브리핑을 뜻한다.
군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언급했다. 또 “조사 결과, 전반적인 해상ㆍ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면서 “탐지 장비가 낡거나 성능이 일부 제한돼 소형 목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소형 목선이 표류했다”며 “해안에서 6㎞ 떨어진 곳에서 2t 정도의 목선이 기동할 경우 (해안 감시레이더가) 잡는다(발견한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 소형 목선이 동력으로 삼척항에 입항한 뒤 방파제 부두에 배를 댄 사실이 밝혀졌다. 나중에야 군 관계자는 “당시 조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확인이 필요해 포괄적으로 답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합참이 군 기강 해이와 구멍 난 경계태세를 감추기 위해 축소ㆍ은폐 브리핑을 했다는 비난이 불거졌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말을 바꾼 게 아니다”며 “‘항’은 보통 방파제ㆍ부두를 포함하며, ‘인근’이라는 표현은 군에서 주로 많이 쓰는 용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인근은 근처라는 의미인데, 북한 소형 목선이 정박한 부두는 삼척항 안에 있다”며 “이럴 때는 ‘항내’ 또는 ‘삼척항 내’로 표기한다”고 말했다.
◇18일 북한 선원 2명 귀환
④평소보다 빨리 돌려보냈나=통일부는 18일 북한 선원 4명 중 50ㆍ30대 남성 2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다.
경성~삼척간 직선거리 500㎞ 넘는 구간을 8일간 항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귀환 선원 2명은 NLL 남쪽으로 가겠다는 선장의 지시에 순순히 따른게 된다. 또 북한 목선은 삼척항에 들어오기에 앞서 하룻밤을 엔진을 끄고 바다 위에서 대기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으로 떠내려온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한 뒤엔 2명이 되돌아가겠다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국정원ㆍ군ㆍ경찰의 1차 합동신문(합신)이 끝난 뒤 통일부가 이들을 인수했다”며 “조난이 아니라 스스로 한국을 찾은 북한인을 1차 합신만으로 보낸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는 북한 어선을 해상에서 구조하고도 5일 이상의 합신을 거친 뒤 송환 절차를 밟았다.
◇19일 국방부, 2차 백 브리핑
⑤군, 책임자 문책 뭉개려 했나=국방부는 2차 백브리핑 때 “육ㆍ해군 지휘관의 징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경두 장관이 이날 전군지휘관회의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 데 따른 조치다. “책임 물을 사안이 아니다”는 17일 1차 백 브리핑과 정반대다. 군 관계자는 “미비점이 새로 밝혀졌다”고만 설명했다.
그러나 윤도한 청와대 소통수석은 21일 “문 대통령이 18일 오전 ‘어떠한 상황에서도 뚫려서는 안 된다’고 국방부를 질책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이틀 만에 분위기를 180도 바꾼 셈이다.
◇20일 문 대통령ㆍ이 총리ㆍ정 장관, “철저한 조사” 약속
⑥청와대 행정관, 왜 군 브리핑에 나타나나=야권은 북한 소형 목선 귀순 사건을 놓고 청와대를 맹공격하고 있다.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이 17ㆍ19일 국방부 백 브리핑에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현역 군인 신분인 그는 사복을 입고 국방부 기자실 구석에서 백 브리핑 내용을 들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국방부의 축소ㆍ은폐 브리핑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주요 국정 현안의 브리핑 내용은 소관 부처가 청와대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만든다”고 말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도 20일 ‘청와대에도 17일 브리핑 내용이 보고됐나’는 질문에 “대강의 틀로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답했다. 국방부가 북한 소형 목선의 발견 장소를 ‘삼척항 인근’으로 흐린 배경에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윤도한 수석은 21일 “행정관이 당시 어떤 방식으로 여론이 흘러가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브리핑에 갔던 것”이라며 “행정관이 국방부 관계자와 협의하거나 조율한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윤 수석은 또 “지난 1월 16일 일본과의 초계기 갈등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행정관이 국방부 백 브리핑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한편 윤 수석은 “(북측 선원) 4명이 넘어왔을 때 보도가 나가서는 안 됐다. 보도로 인해 남북 관계가 경색된다”며 관련 언론보도를 문제 삼기도 했다. 그는 “만약 그들이 모두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고 언론이 ‘북한에서 4명이 넘어와 귀순하려고 한다’고 하면, 북한에서 ‘당장 돌려보내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귀순 의사를 갖고 온 분들은 돌려보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남쪽으로 오면 조사가 끝날 때까지 발표를 안 하는데 (언론 보도는) 일종의 사고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재ㆍ위문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