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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된 나무 있는 대통령 산책로 걷고… 해변서 추억의 낙서도

산야초 2019. 9. 21. 22:59

400년 된 나무 있는 대통령 산책로 걷고… 해변서 추억의 낙서도

입력 2019.09.21 03:00

[아무튼, 주말]
47년 만에 개방 '대통령의 섬' 저도

대통령의 휴가지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경남 거제시 ‘저도’가 지난 17일 임시 개방됐다. ‘대통령의 섬’은 이제 누구나 갈 수 있는 ‘모두의 섬’이 됐다.
대통령의 휴가지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경남 거제시 ‘저도’가 지난 17일 임시 개방됐다. ‘대통령의 섬’은 이제 누구나 갈 수 있는 ‘모두의 섬’이 됐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고요하던 작은 섬이 떠들썩해졌다. 지난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저도(猪島)에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입항했다. '대통령의 섬'으로 불리던 저도의 문이 47년 만에 열리는 순간이었다. 1972년 저도는 청해대(靑海臺)로 지정됐다. 대통령 별장과 군사시설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돼왔다. 저도는 우선 내년 9월 16일까지 1년간 시범 개방된다. 이후 운영 성과 등을 평가해 전면 개방이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던 곳을 누구나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이날 저도를 찾은 관광객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저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베일에 싸여 있던 미지의 섬으로 들어갔다.

47년 만의 저도 산책

위에서 보면 돼지가 누워있는 모양이라 해서 저도라 불리는 섬. 대통령 휴양지답게 입구부터 잘 관리된 티가 났다. 항구에 정박한 해군 함정과 해군 콘도, 골프장까지 여느 섬의 풍경과 다른 느낌이다. 저도를 관통하는 거가대교마저 섬의 풍경을 생경하게 만든다. 해송과 동백, 후박나무 등이 자생하는 숲을 따라 조성된 고즈넉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진짜 저도의 풍경을 만났다. 산책로에서 마주친 수령 400년 된 곰솔에선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느껴졌다. 때묻지 않은 섬의 상쾌한 공기와 바람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이제는 대통령이 아니라도 누구나 이 길을 걷는다. 풍경을 가슴에 새긴다.

저도행 유람선.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월·목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2회 운항한다. /저도행 유람선.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월·목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2회 운항한다.
저도행 유람선.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월·목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2회 운항한다. /저도행 유람선.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월·목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2회 운항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하계 휴가를 떠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써내려갔던 모래 해변.
하계 휴가를 떠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써내려갔던 모래 해변.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시범 개방 기간 탐방객은 1시간 30분 동안 문화해설사와 함께 조를 이뤄 산책로와 연리지 공원, 모래 해변을 둘러보게 된다. 산책로는 총 3코스지만 현재는 제2전망대와 2분기점을 거쳐 연리지 공원과 둘레길, 모래 해변을 돌아보는 구간만 운영된다. 1.5㎞의 거리를 걷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책로는 추후 추가 개방될 예정이다. 산책로지만 다소 가파른 구간들이 있어 저도를 찾을 땐 꼭 편한 신발과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기존의 미니 골프장은 연리지 공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잘 관리된 잔디밭과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따라 걸을 땐 눈부신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다. 인공 조성한 200m 길이 모래 해변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며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써내려간 곳. 이제는 이 해변에 누구나 글씨를 새길 수 있게 됐다. 모래 위에 자신만의 추억을 새겨보는 것도 좋다.

역사의 흔적도 만나게 된다. 일본군은 1920년부터 저도에 살고 있던 주민을 내쫓고 탄약고와 통신소를 설치했다. 부산, 진해와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제2전망대와 제1전망대에는 일본군이 만든 포 진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제1전망대에는 벽돌로 쌓아 만든 탄약고가, 제1전망대와 제2전망대 사이에는 일본군 막사 건물과 우물이 남아 있다. 제1전망대에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첫 승리한 옥포해전, 그 역사의 현장을 조망할 수 있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땐 UN군이 저도에 탄약고를 설치하고 군사시설로 활용했다. 국방부가 저도를 소유·관리하게 된 건 전쟁이 끝난 1954년의 일이다. 같은 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으로 지정하면서 저도는 금단(禁斷)의 섬이 됐다.

임시 개방 첫날 저도를 찾은 한 가족이 연리지 공원 옆 둘레길을 걷고 있다.
임시 개방 첫날 저도를 찾은 한 가족이 연리지 공원 옆 둘레길을 걷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임시 개방의 한계, 아쉬운 목소리도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 별장이었던 충북 청주의 '청남대(靑南臺)'를 일반에 개방하면서 저도를 개방하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국민에게 저도를 반환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7월 30일 저도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저도를 우선 임시 개방하고 관련 시설 등 준비가 갖춰지면 완전히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별장과 군사시설은 이번 임시 개방 구역에서 제외됐다. 대통령 별장과 관련 시설을 기대하며 저도를 찾았던 관광객들은 아쉬워했다. 대통령 별장과 군사시설의 사진 촬영도 금지됐다.

부산에서 온 김정자(60)씨는 "저도까지 와서 대통령 별장도 못 보고 자연경관만 보다 돌아가는 것 같다"며 "대통령 휴가지인데 특별한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개별 탐방을 제한하고, 방문 시간이 짧은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거제에서 온 직장인 박준석(45)씨는 "저도가 누구나 갈 수 있는 섬이 됐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많은 사람이 찾다 보면 문제점이 조금씩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제2전망대 근처에 남아 있는 일본군 포 진지.
제2전망대 근처에 남아 있는 일본군 포 진지.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사흘 전 예약 필수

저도는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5일간 개방되며, 군 정비 기간에는 입도가 제한된다. 하루 방문자 수는 최대 600명까지다. 오전과 오후 각 1회씩, 탐방 시간은 회당 1시간 30분이다. 저도행 유람선 탑승은 거제시 장목면 궁농항에서 한다.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20분과 오후 2시 20분. 궁농항을 출발한 유람선은 거가대교 3주탑을 지나 저도로 갔다가 거가대교 2주탑과 중죽도·대죽도를 지나 궁농항으로 돌아온다. 거가대교와 남해 관광도 덤으로 즐길 수 있는 코스다.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일대 해역에서 상괭이 떼를 만날 수도 있다. 저도 탐방까지 왕복 총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입도를 위해선 반드시 승선일 기준 3일 전까지 예약을 완료해야 한다. 예약 시 승선 명부에 정확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군사시설이 있다 보니 입도 허가를 위한 절차다. 저도행 유람선 예약은 저도유람선 홈페이지와 전화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