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2.27 15:22 | 수정 2020.02.27 16:13
1. 한라산
은하 잡아당기는 뜻이 ‘한라’
고려 후기에 한라‧제주 지명 등장…산의 형체 본떠 두무악‧원산 등으로도 불려
한라산(漢拏山), 우리가 쉽게 자주 쓰는 말이지만 그 의미는 아리송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그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한라산은 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한라(漢拏)라고 말하는 것은 운한(銀河의 의미)을 라인(拏引: 끌어당김)할 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이라고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그 산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사람이 떠들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서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다. 5월에도 눈이 있고 털옷을 입어야 한다.’
한라산은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한 높은 산이란 의미다. 해발 1,950m로 남한 최고봉이다. 예부터 부악釜嶽·원산圓山·진산鎭山·선산仙山·두무악頭無嶽·영주산瀛洲山·부라산浮羅山·혈망봉穴望峰·여장군女將軍 등 많은 이름으로 불려 왔다. 전설상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두무악은 머리가 없는 산, 원산은 둥글게 생긴 산, 부악은 솥 같이 생긴 산이다. 모두 산의 형체를 본떠 명명한 것이다. 5월에도 눈이 있다고 할 정도니 천변만화하는 기상변화는 옛날부터 여전했든 듯하다.
고려 충렬왕 무렵 대략 1275~1308년 즈음 육지에서 제주로 들어와 여러 편의 시를 남긴 승려 혜일의 시에 ‘한라’란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한라산이란 지명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란 지명도 고려 후기 처음 나타난다. <고려사>에 나온 제주 지명의 첫 기록이다. ‘고종 어느 해(1214~1224), 이 때 탐라(耽羅)를 고쳐 제주(濟州)라 하고 부사 및 판관을 두었다. 이 지방 풍속이 옛날에 밭 경계가 없어 강폭한 무리들이 날로 잠식하여 백성들이 괴로워했다.’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칭한 것은 한라나 제주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러 서복을 보냈다는 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을 한라산으로 명명한 것은 시기상으로 맞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고적편에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중략) 한라산 동북쪽에 영주산(瀛洲山)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탐라를 일컬어 동영주(東瀛洲)라 한다. (후략)’라고 나온다. 한라산을 영주산이라 명기한 최초 기록이다. 조선 중‧후기 들어 한라산이 유산록에 등장하면서 명산반열로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탐라지> ‘김치의 유한라산기에 세상에서 말하는 영주산이 곧 한라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 등에 잇달아 등장한다.
조선 전기 지도에서는 제주도나 한라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중기부터 한라산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다가 조선 후기 들어 <여지도> <팔도총도> <지도서> 등에 한라산 옆에 ‘영주’라고 조그맣게 병기돼 있다. 이로 볼 때 한라산이 삼신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불러진 것은 불과 300여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한라산의 월별 방문객 추이를 볼 때 눈꽃과 상고대를 즐길 수 있는 겨울산의 성향을 뚜렷이 드러낸다. 2016년 기준 연중 탐방객은 1월이 12만 6,000명으로 가장 많다. 그래도 덕유산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3월까지 탐방객이 8만 2,328명으로 여전히 많이 찾는다.
역시 한라산은 겨울산이다.
2. 사량도 지리산
한국의 대표 섬산에 출렁다리까지 조망 일품
봄기운 전하는 남녘의 섬… 수만 명 찾는 3월이면 등산로 정체로 사고 위험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섬산, 남녘의 봄바람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섬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섬산은 사량도 지리산池里山(397m)이다. 매년 수십 만 명이 찾는다. 봄에 남녘의 섬산을 찾는 이유는 중부지방과 다르게 찬바람 속에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기준을 정해 선정한 월간<산> ‘한국의 100대 명산’ 중에 섬산으로서 남해 금산, 거제 계룡산과 더불어 뽑힌 산이기도 하다.
사량도蛇梁島 지리산은 흔히 한국 최대의 명산 지리산을 쳐다보는 산이라 해서 지리망산智異望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유래다. 사량도 원래 이름은 박도撲島였다. 파도가 원체 세게 부딪히는 섬이란 의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사량도 웟섬과 아랫섬을 상박도, 하박도로 기록하고 있으며, ‘상박도는 둘레가 24리이고, 하박도는 둘레가 50리이다. 현 남쪽 바다 한복판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량이라는 지명은 상박도와 하박도 사이에 있는 작은 해협이 마치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했다. 섬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설, 섬의 형상이 뱀처럼 기다랗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도 있다. 해협을 사량이라 부른 이후 당시 수군지를 육지에서 이곳으로 옮겨 설치되면서 사량 지명을 따서 사량만호진이라 칭하게 됐다. 최영‧이순신 장군 등이 왜군을 격퇴하는 전략적 기지로 활용되면서 원래 이름인 박도 보다는 사량진 혹은 사량으로 널리 알려지고 바뀌게 된 이유다.
사량도 최고봉 지리산이란 이름은 섬에 있는 돈지리敦池里의 돈지마을과 내지內池마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라 해서 명명했다는 설이 정설에 가깝다. 지리산이란 지명 이전에는 산 남쪽 바위 벼랑이 새드레(사닥다리)를 세운 듯한 층애를 형성하고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새들산이라 일컫기도 했다.
상도(윗섬) 최고봉은 지리산이고 하도(아랫섬) 최고봉은 칠현산(349m)이다.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연도교는 이미 조성됐다. 하지만 하루 만에 상도와 하도를 전부 등산할 수 없다. 윗섬 지리산에서 옥녀봉(304m)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만 해도 4시간 걸린다. 아랫섬도 정상 칠현봉을 거쳐가는 등산코스는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섬이라고 절대 얕볼 수 없는 등산코스다. 온통 바위산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산 남쪽에 있는 벼랑으로 한때 새들산으로 불렸다. 몇 년 전 원체 험한 등산로에 사고가 잦자 아예 구름다리를 조성했다. 그 뒤로 사고가 확 줄었다. 섬산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조망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사량도에 가면 꼭 살펴봐야 할 유적지와 스토리가 있다. 바로 최영장군 사당이 이곳에 있다. 한국 최고의 산신이라 불리는 최영 장군 사당이 왜 여기 있을까 의아할 수도 있지만 최영 장군이 남해 일대에서 왜군을 무찌른 공로가 원체 뛰어나서 민간에서 그를 신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최영 장군에 대한 민간인들의 존경은 이성계를 훨씬 능가한다고 전한다.
한국의 대표적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섬산 사량도 지리산을 등산하면서 남녘의 봄바람을 만끽한 뒤, 최영 장군 사당을 찾아 그를 떠올려 보는 것도 봄맞이 산행의 묘미일 수 있다. 사당 부근에 있는 사량도 최고의 맛집은 덤이다.
3. 여수 영취산
‘진달래 바다’ 자랑하는 최고 군락지
진달래축제장 있는 흥국사가 산행 기점… 지리정보원은 ‘진례산’으로 변경고시
여수 영취산靈鷲山(510m)은 4월이 되면 핑크빛 여왕이 된다. 군데군데 핀 진달래가 아니라, 산사면 전체가 한꺼번에 분홍색 꽃으로 가득 찬다. 진달래의 바다라 해도 좋을 이 화려한 경관이 510m 높이의 작은 산을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취산을 스타로 만든 건 8할이 역경이었다.
영취산이 자리한 곳은 여수국가산업단지다. 끝없이 늘어선 공장들이 지독한 공해물질을 쉴 새 없이 내뿜는 자리에 있다. 역설의 꽃 진달래는 키 큰 나무들이 죽은 자리에 억척같은 생명력으로 버텨, 영취산의 주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공해에 강한 진달래가 지금의 영취산 명성을 만든 것이다.
산 이름은 석가모니가 최후로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과 유사하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전하나 너무 허무맹랑했던지 2003년 국가지리정보원에서 지명을 영취산에서 ‘진례산’으로 변경고시 했다. 따라서 지도에는 영취산이 아닌 진례산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산꾼들은 아직 관례적으로 영취산으로 부르고 있다. 지명은 사실 여부를 떠나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영취산은 코스를 길게 잡아도 3~4시간 정도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과거에는 정상 동쪽 상암마을을 기점으로 산행을 많이 했으나, 최근에는 북쪽의 진달래축제장과 여수를 대표하는 천년고찰 흥국사가 주된 기점이다. 다만 흥국사는 문화재관람료를 내야 하기에 진달래축제장으로 올라 능선을 종주해 흥국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달래축제장은 공장산업단지 뒤 공터다. 축제가 없을 때는 이곳이 축제장인지 공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시작은 임도다. ‘영취산 정상 1.9km’라 적힌 이정표를 따른다. 임도의 경우 굽이굽이 횡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직상으로 능선을 올려치는 성질 급한 임도다.
급경사 산길로 30분이면 주능선에 오른다. 여수와 광양 사이의 바다가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공장이 조망된다. 주능선부터는 진달래와 억새가 많아 시야가 트인다. 정상 전의 위성봉인 가마봉이 보인다. 진달래가 빼곡한 산등성이 사이로 데크계단이 나있다. 가마봉 정상에 닿자 시원한 경치가 동서남북으로 반긴다. 능선 너머에는 마침내 영취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마봉부터는 화려한 바윗길의 연속이다. 편안한 흙길과 바윗길이 번갈아 나온다. 가마봉과 정상 사이에 암봉이 있다. 오르내림이 있는 코스지만 경치가 시원해 정상으로 이어진 오름길은 곳곳이 바위 전망대다. 여수시에서 친절하게 데크계단으로 모두 정비해뒀다.
명산답게 정상은 1,000m대 산 꼭대기만큼 경치가 시원하고 너르다. 데크 헬기장과 통신탑, 정상 표지석, 등산안내도, 전망데크를 모두 수용하고도 공간이 남는다. 영취산 산행의 정점다운 경치가 드러난다. 멀리 동쪽 남해와 서쪽 순천까지 시야가 열린다.
정상 아래에는 도솔암을 보며 끝없이 가파른 계단으로 한 번에 고도를 내리면 드넓은 안부인 봉우재에 도착한다. 이곳이 진달래축제장이다. 4월이 되면 시장통처럼 등산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보통 여기서 흥국사로 하산하지만, 능선을 타고 계속 시루봉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4. 점봉산
둥근 봉황의 산?… 야생화의 산
한계령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마주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예약해야 입장
점봉산(1,424m)은 야생화 천국이다.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점봉산은 설악산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다.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하고 있다. 점봉산 자락에는 주전골, 12담계곡, 큰고래골 같은 수려한 골짜기와 만물상과 오색약수 같은 명소를 품고 있다.
점봉산 일대는 잘 보전된 원시림으로 전나무와 분비나무가 울창하고, 모데미풀 등 여러 희귀식물을 비롯해 참나물∙곰취∙곤드레∙고비∙참취 등 10여 가지 산나물이 자생한다. 특히 한반도 자생식물의 남북방한계선이 맞닿은 곳으로, 한반도 자생 종의 20%에 해당하는 854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때문에 점봉산은 산행이 통제되는 곳이 많아, 곰배령을 비롯한 일부 구간만 산행 할 수 있다. 3월부터 꽃 피우는 야생화는 늦가을까지 온갖 형형색색의 꽃들로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점봉산點鳳山의 원래 이름은 덤봉산으로 알려져 있다. 덤은 원래 둥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둥근 봉황의 형세이거나 있었던 산이란 의미다. 인근 곰배령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형이 곰의 배와 같아 유래했다고 전한다. 봉황과 곰이 나란히 있는 형국이면 정말 예사롭지 않은 땅이다.
곰배령은 점봉산 자락의 해발 1,164m 고지의 넓은 평원이다. 멀리서 보면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해 곰배령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무가 없는 고산 평원은 온전한 야생화 천국이다. 곰배령에 나무가 없는 까닭은 바람이 워낙 거센 탓이라고 한다.
야생화 천국으로 이름 높은 곰배령은 산이 깊은 탓에 다른 곳보다 꽃이 늦다. 겨울을 지나 봄이 시작되는 3월부터 복수초를 시작으로 얼레지, 한계령풀, 홀아비바람꽃, 동이나물, 노란제비꽃, 금괭이눈, 미나리아제비 등이 핀다.
곰배령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사전 예약을 해야만 입산이 가능하다. 산행은 귀둔리로 오르는 코스와 진동리 강선마을로 오르는 코스가 있다. 귀둔리는 설악산국립공원에서 관리하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한다.
국립공원 귀둔리 탐방센터에서 고배령까지 3.7㎞ 거리이며 2시간 정도 걸린다. 산불조심기간과 날씨에 따라 통제가 이뤄진다. 인터넷 예약만 가능하며 현장접수 불가하며,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다. 매일 300명 입장 가능하며 1인 2매까지 예약 가능하다. 진동리 강선마을에서 곰배령까지 5.1㎞ 거리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강선마을 원점회귀다.
생태관리센터에서 시작해 곰배령에 올랐다가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 전망대에 올랐다가 곧장 5.4㎞의 하산길을 따라 생태관리센터로 원점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총 10.5㎞ 거리이며 4~5시간 정도 걸린다. 본격적인 산행을 원한다면 곰배령에서 능선을 따라 북진하여 정상을 거쳐 단목령으로 내려서는 16㎞의 긴 산행 코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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