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4.17 09:41
이탈리아 드라이툴링 챔피언 10회 이상 차지한 산악가이드이자 개척 등반가
2020년 겨울은 참혹하게 시작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눈은 거의 오지 않았고 빙벽은 얼다가 말았다. 거기에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온 세상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적당히 정리되겠지 했던 방심은 6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인접국인 우리나라와 일본은 바이러스 폭탄을 맞았다. 눈 폭탄과 얼음 폭탄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국내 산악인들은 이제 빙벽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가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유럽 내 최대 바이러스 폭탄을 맞은 이탈리아도 예년에 비해 눈과 빙벽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11~12월 고산지역은 5~7m의 폭설이 내렸다. 덕분에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은 11월부터 6월까지 겨울 산이다. 올해 1~2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지만 매일 쾌청한 날씨가 이어져 스키장 리프트권은 기록을 세울 정도로 많이 팔리기도 했다. 한편 눈사태로 산악 스키를 하던 여러 명이 조난사 당하기도 했다. 최근 적설량은 적었지만 낮에는 따뜻하고 저녁과 새벽에는 추워 빙벽이 매우 잘 만들어졌다.
세계적인 빙벽등반가이자 건축가인 안나 토레타Anna Torretta와는 20년 지기 친구 사이다. 필자가 등반장비 브랜드인 그리벨에서 배낭과 등반용 장갑을 디자인할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안나와의 만남은 필연적이며 천운이었다. 필자가 디자인한 제품은 안나가 가장 먼저 테스트를 하고 결과를 알려 주었으며 함께 여러 등반을 했다.
에귀디미디(3,842m) 남벽의 가장 어려운 콩타민Contamin 루트(7a)와 크고 작은 북벽과 빙벽을 등반했다. 그녀의 예술적인 등반 모습은 필자의 카메라를 통해 이탈리아 최고 클라이밍 잡지인 <파렛테Parette> 표지와 그리벨 포스터·카탈로그의 단골이었다. 영화 <히말라야>를 제작할 땐 국민배우 황정민을 비롯한 전 제작진 55명이 40일 동안 해발 4,000m대에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당시 필자가 촬영 안전 책임과 등반 기술 책임을 맡았다. 여기에 국내 최고의 클라이머 후배 6명과 안나 토레타 외 3명의 이탈리아 산악 가이드들이 도와주었다.
안나 토레타는 몽블랑 남벽 아래 마을인 이탈리아 쿠르마에르Courmayeur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 부모를 따라 알프스를 산악 스키로 누볐다. 에귀디미디나 쿠르마에르 엘브르너에서 빙하와 크레바스, 세락 지대를 스키로 내려오는 24㎞의 모험적인 산악스키에도 능하다.
무중력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등반 꿈꿔
그녀는 몽블랑 남벽과 그랑드조라스 남벽, 고산 만년설과 약 1,500개의 빙벽이 있는 아오스타Aosta계곡, 수를 셀 수 없는 화강암 암군이 사방팔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할 수 있는 놀이는 클라이밍과 스키였다. 12세에 4,000m대 높이인 그란 파라디죠Gr.Paradiso를 등정했으며, 13세에 피콜라 치마렐라Piccola Ciamarella(3,540m) 북벽을 올랐다.
흔히 말하는 천재 클라이머나 클라이밍 여제는 아니었지만 태어난 환경과 타고난 오르는 재주는 질을 높여 갔고 2000년 산악 가이드가 되었다. 2001년에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최초의 여성등산학교인 ‘어드벤처 우먼’을 설립했고, 2003년 토리노Torino(동계 올림픽 개최지)에 최초의 등산센터인 ‘라트라치아La Traccia(발자국, 흔적)’를 공동 설립했다. 2005년부터 고향인 쿠르마에르에 살면서 유일한 여성 가이드 협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1998년 토리노 폴리 테크닉 대학에서 건축 디자인을 전공하여 ‘고도 3,500m의 비박 산장’으로 학위를 받았다. 건축가이자 빙벽 위의 아티스트인 그녀는 200여 년 역사의 브랜드 그리벨 몽블랑 본사에서 신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등반 경험에 산업 디자이너의 감성과 건축 디자이너의 지식을 더한 그녀는 신개념 인공암장과 익스트림 놀이터를 여럿 설계했다. 토리노의 디자인대학에서 ‘익스트림 스포츠 디자인’ 과목을 수시로 강의한다.
팔방 미녀인 그녀는 이탈리아어 이외에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산악인들의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책도 썼다. 2017년에 출간한 <존재하지 않는 산>에서 자신의 등반관을 밝혔다.
‘많은 산악인들이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활발히 등반을 한다. 그러나 공기처럼, 순수한 물처럼 무중력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등반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16년 Grit&Rock 재단에 의해 설립된 퍼스트 어센트 익스페디션FIRST ASCENT EXPEDITION 상은, 여성들만의 원정 계획서를 받아 심사를 통해 원정 경비 4,000달러를 지원한다. 안나 토레타는 강력한 수상 후보였던 스페인 여성 산악인 세실리아 뷜Cecilia Buil과 멕시코 여성팀 익셀 포드Ixchel Foord와 경합을 벌여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2015년 여성 탐험상 수상
그는 이탈리아 드라이툴링 챔피언에 10회 이상 올랐으며, 다오네 마스터 빙벽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했다. 벽 길이만 1,200m인 그랑드 조라스 북벽을 단독등반으로 올랐으며, 요세미티 조디악을 6일 동안 단독등반으로 올랐다. 아마다블람(6,852m)을 단독등반했으며, 캐나다의 고난이도 믹스 루트인 무사키Musaschi(M12)를 등반했다. 그녀의 집 근처 고난이도 루트인 ‘제국의 역습Empire Strike Back(M11)’을 완등했다. 1998년부터 2010년 사이 수많은 빙벽등반과 믹스등반에서 여성 초등을 해냈다.
2008년 이후 그는 ‘존재하지 않는 산’을 찾는 데 헌신했다. 세계 오지를 돌며 미지의 빙벽등반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중국 티베트, 네팔, 아프가니스탄, 칠레,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캐나다, 미국, 러시아, 한국, 터키,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빙벽 등반지를 개척하거나 등반을 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12~14세의 ‘청소년 빙벽등반팀’을 만들어 훈련시켰다.
2010년에는 해발 8,200여 m의 초오유에서 이탈리아 최초의 스키 활강을 목표로 등반했으나 눈사태로 7,200m 지점에서 돌아섰다. 2015년 1월에는 터키 최초의 ‘국제 아이스클라이밍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두 개의 빙벽을 초등했다. 그 해 9월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탐험상LIFE GATES 2015’을 수상했다.
예술적인 등반의 경지를 보여 주는 빙벽 디자이너이자, 건축 디자이너인 안나 토레타의 다음 디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엄마로서의 자식 교육에 관한 디자인이다. 어린 3명의 딸들이 원한다면, 자신을 능가하는 알파인 가이드와 스키 선생이 되도록 완벽하게 디자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