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4.17 09:41
고려시대 때 설치한 정상 봉수대 눈길…최근 해상케이블카 개통돼 관광명소로 발돋움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술렁이고, 꽃샘추위에 날씨마저 갈팡질팡. 여전히 봄은 멀어만 보인다. 그렇지만 새파란 생명들은 이미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배기 보리밭에는 늦자란 보리가 바닷바람에 넘실댄다. 남녘 해안에 다가선 봄은 한결 부드러워진 갯바람을 타고 뭍으로 올라온다.
봄기운이 무르익은 사천의 각산角山을 올랐다. 지금은 사천시로 통합돼 겨우 삼천포항이라는 지명만 남아 있는 옛 삼천포시가지의 끄트머리에 솟은 각산은 ‘엎드린 용의 뿔처럼 생긴 형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북쪽의 와룡산(798m)과 이웃하면서도 단절된 평지 돌출형 산세이다. 그동안 와룡산의 명성에 가려져 외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천시민들에겐 친근하고 가까운 산이다. 최근 섬 초양도와 각산을 잇는 케이블카가 2018년 4월 개통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산행은 기점이자 종점인 사천시 실안마을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버스정류장을 출발, 95.2m봉~225.8m봉~248.2m봉(삼각점)~창녕 조씨 묘~활공장~송신탑(헬기장)~봉수대(각산 정상)~각산산성~211.3m봉~실안마을까지 되돌아오는 약 10㎞를 걷는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해안가 실안동을 말발굽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릉을 따르는 코스다. 다른 코스도 많지만 모두 거리가 짧아 아쉽다.
버스정류장에서 실안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하천을 오른쪽에 끼고 마을길로 들어선다. 마을 끝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 민가 쪽으로 방향을 튼다. 골목길 옆 콘크리트 배수구로 올라서면 수령이 오래된 고목나무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행길의 초입이 되는 고목나무 뒤 야트막한 능선으로 오른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산길은 묵었지만 걸리적거리는 잡목이 거의 없어 그런대로 진행은 수월하다.
숲속에 둘러싸인 95.2m봉에 오르면 돌담에 함석지붕으로 된 용도를 알 수 없는 시설물을 만나고, 소나무 재선충으로 벌목된 소나무가 훈증 처리용 포장을 둘러쓴 것도 보인다. 길 없는 능선을 벗어나면 임도 같은 넓은 길이 나타나고 뒤이어 철망이 둘러쳐진 잘 단장된 묘지를 지난다. 소나무 숲길로 올라서면 묵묘가 있는 225.8m봉. 이곳은 삼거리 갈림길로 왼쪽은 산분령이나 영복원으로 이어지는 와룡지맥의 끝자락이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확연한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잠시 내려서면 흥룡사(1.2km) 갈림길인 안부에 닿는다.
이제부터 완만하게 오르는 숲길이다. 묵은 낙엽이 발길에 바스락거린다. 삼각점이 있는 248.2m봉 나무에는 ‘와룡지맥, 준·희’의 표찰이 걸려 있다. 양지바른 언덕바지의 창녕 조씨 묘역을 지나면 송포동(묘충사)과 실안동 갈림길이다. 숲길로 이어지던 능선 길에 북쪽 전망이 잠시 열린다. 사천시 용현면과 서포면을 이어주는 사천대교가 사천만을 가로지르고, 멀리 지리산도 보인다. 342.6m봉을 넘어 향림사 갈림길을 지나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널찍한 능선에 산과 바다가 보이는 활공장은 전망이 좋다. 사천만을 서쪽에 둔 진주 쪽 사천시가지와 시가지를 보듬고 솟아 있는 와룡산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케이블카 정류장 건물이 자리한 각산이 손을 뻗으면 덥석 잡힐 것 같고, 실안골 아래 열린 바다 건너로 보물섬이라는 남해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시루떡처럼 생긴 큰 바위 지대를 빠져나온다. 이후 세 번의 포장된 임도를 만나지만 곧바로 산길로 이어지기에 도로를 걷는 부담은 없다.
올라선 335m봉은 와룡지맥과 갈라진다. 오른쪽 건너편 송신탑을 바라보고 내려서면 운동기구가 있는 정자 쉼터에 닿는데 문화예술관에서 올라오는 합류점이다. 송신탑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경사가 가파른 통나무계단 길. 묵묘가 있는 347.5m봉을 지나 헬기장을 만나고 곧 송신탑 옆 정자 쉼터에 닿아 잠시 땀을 식힌다. 한 굽이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전망대. 옛 삼천포시가지가 포구를 껴안고 펼쳐진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는 사량도, 두미도, 수우도, 신수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다.
데크가 놓인 계단 길로 내려서면 야자매트가 깔린 소나무 숲길이다. 다시 데크 계단을 오르면 봉수군의 막사를 거쳐 봉수대에 이른다. 이곳이 각산 정상으로 정상석이 서 있다. 복원된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을 전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설치한 것이다. 통영 우산봉수에서 시작된 봉수를 고성 좌이산봉수를 통해 받는 경로와 남해 금산봉수에서 올린 봉수를 대방산봉수를 통해 받는 두 경로가 있었으며 이를 용현면의 안점산봉수로 전했다고 한다. 봉수대와 함께 복원한 봉수군 가옥의 세간살이가 이채롭다. 되돌아 나와 각산 전망대에 선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에 뿌려진 섬들이 점묘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창선·삼천포대교가 이어주는 해상국도(국도 3호)는 섬과 섬을 건너 남해로 뻗어가고, 하늘에는 케이블카가 새처럼 움직인다. 창선의 대방산 너머로 남해의 금산·망운산이, 그 옆으로 하동의 금오산, 멀리 지리산 주능선과 천왕봉이 아스라하다. 물론 삼천포항 일대의 풍경도 고스란히 조망된다. 탁 트인 풍광에 답답했던 마음도 단번에 뻥 뚫리는 기분이다.
전망대 왼편 하산길로 이으면 곧장 각산산성角山山城을 만난다. 바다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각산의 8부 능선에 돌로 쌓은 성이다. 605년 백제(무왕 6)가 가야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 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져 1990년대 세 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산성을 벗어나면 고즈넉한 숲길이다. 이정표(대방 0.5km, 실안 0.8km)가 있는 갈림길에서 방향은 실안마을. 산행을 끝내고 돌아온 실안마을에는 따사로움이 가득하다. 산골짜기 아래 옹기종기 지붕을 맞댄 어촌의 평화로움과 마을 앞바다를 오가는 어선들의 모습이 정겹다.
산행길잡이
실안마을 버스정류장~95.2m봉~225.8m봉~248.2m봉(삼각점)~창녕 조씨 묘~활공장~송신탑~봉수대(각산 정상)~각산산성~211.3m봉~실안마을 버스정류장 <5시간 소요>
교통
삼천포버스터미널(1688-3006)에서 산행 기점이자 종점인 실안마을까지는 삼포교통(055-832-1992) 시내버스 20번을 이용하면 된다. 하루 18회 운행된다.
숙식(지역번호 055)
삼천포 중심가 어디든 숙박할 곳은 많다. 싸고 싱싱한 해산물은 삼천포수협회센터를 찾아야 한다. 1층에서 횟감을 고른 뒤 2층에서 상차림 비용을 내고 먹는 방식이다. 삼천포항 뒤편의 파도한정식(883-4500)과 오복식당(833-5023)은 다양한 제철 해산물로 저렴한 한정식을 내는 집이다. 자연산횟집(832-2228)과 해안횟집(832-2700)에서는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