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4) 치킨
내 맘대로 고른 치킨 맛집 best 4
글 : 김효정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치킨은 언제나 ‘진리’지만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우고 나서 느끼는 죄책감 때문에 매일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매일 즐긴 적도 있긴 했다. 15년 전, 대학에 다닐 때 일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아직도 이름만은 선명하게 기억나는 치킨집 세 곳이 있었다. 순살치킨을 주력으로 파는 곳, 두 마리 치킨을 함께 배달해주는 곳, 양념치킨이 맛있는 곳이었다. 기숙사에 살지도 않으면서 밤마다 이 방 저 방 기숙사에 죽치고 앉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던 그때, 매일 밤 치킨집 세 곳을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걸곤 했다.
언젠가 한번은 순살치킨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주소만 묻고는 메뉴 주문도 받지 않고 전화를 툭 하고 끊어버린 적이 있었다. 이미 맥주를 한바탕 들이켜고 거나하게 취한 터라 알아서 오겠거니 마음 놓고 있었는데, 정말 매일 먹던 메뉴로 알아서 왔다! 매일이 그런 일상이었으니 사실 치킨 맛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맛보다 더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때 그 날씨, 친구들과 어우러졌던 잔디밭의 온도, 미지근한 맥주가 주는 한가롭고 마냥 즐거웠던 시간이다.
그러니까 치킨은 즐기면서 먹는 음식이었다. 치킨을 주문해놓은 각자의 표정을 상상해보자. 언제 도착하려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따뜻한 김이 물씬 새어 나오는 치킨 상자를 앞에 두면 기대치가 최고로 치솟는다. ‘치맥’도 있거니와, 치킨에는 늘 어우러지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치킨을 즐길 수도 있지만 친구들과 커다란 맥주병을 둘러가며 먹는 치킨의 맛은 또 다르다.
치킨은 각자의 취향이 뚜렷하게 반영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치킨공화국’이라 할 만큼 수많은 치킨이 있는 사회에서, 치킨만큼 세분화된 맛을 가진 음식도 드물다. 장작에 굽거나, 오븐에 굽거나, 튀김옷만 입혀 튀기거나, 양념을 끼얹거나. 양념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어딘가 최고의 치킨이 존재할 것만 같은 기대감에 계속해서 새로운 치킨을 찾아다니는 것도 즐겁다.
내 인생 최고의 치킨을 얘기하자면, ‘맛집 best 4’에는 넣지 못할 정도로 먼 곳에 있다. 미국 서부,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Bird House’라는 치킨집의 치킨이다. 빛을 받아 색색으로 산란하는 앤털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을 다녀온 후, 서부 영화에서나 봤던 신비한 지형의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로 떠나는 길 한가운데서 찾은 치킨이었다. 커다란 닭 모형이 누가 봐도 치킨집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다소 허술한 목재건물 안에서 최고의 치킨샌드위치, 그러니까 치킨버거를 만났다. 촉촉한 닭다리살에 버터밀크, 향신료로 버무려 튀김옷을 입히고, 버거 번 사이에 채소나 다른 곁들임 재료 없이 치킨만 넣어 파는 치킨버거는 우리 부부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있었다.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맛을 찾아다닌다. 맛있다는 치킨집에 가서 앉아 실컷 맛보고 ‘왜 그때 그 치킨은 그렇게 맛있었던 걸까’를 주제로 한참을 떠들고 나면 어째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다시 말하지만 치킨은 그저 즐기기에 좋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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