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1) 돈가스
내 맘대로 고른 돈가스 맛집 best 4
글 : 김효정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돈가스만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품은 음식도 드물 것이다. 당장 학창 시절 점심시간을 떠올려보면, 학교 급식이든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이든 간에 돈가스 반찬이 있는 날에는 유독 젓가락이 분주했다. 외식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지금의 30~40대 이상 세대에게 돈가스는 아이들을 위한, 가장 특별한 외식 음식 중 하나였다.
‘돈가스’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사람마다 다르다. 두꺼운 돼지고기를 여러 번 두드려 펴 얇고 크게 만들어 튀긴 다음 소스를 듬뿍 얹는 ‘왕돈가스’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수프와 깍두기가 함께 나오는 데미글라스소스의 ‘경양식 돈가스’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두툼한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 고기의 육즙을 그대로 살린 ‘일식 돈가스’를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돈가스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돈가스 안에 치즈를 넣어 끊어지지 않는 치즈 줄을 만들기도 하고, 보글보글 끓는 멸치 육수에 담가 ‘돈가스나베’로 내기도 한다. 김치를 얹은 ‘김치돈가스’는 한국만의 별미. 생선살로 만든 ‘생선가스’는 아이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문화의 잣대로 보면 또 다른 면이 보인다. 돈가스는 음식 문화가 각 문화권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돈가스의 원조국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양도 맛도 비슷한 음식이 전 세계 각국에서 다른 이름과 스토리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의 ‘슈니첼’과 무척 닮았다. 슈니첼은 서양식 고기 튀김 요리인 커틀릿의 일종인데 원래는 소고기를 주로 쓴다. 오스트리아 음식이지만 독일에서도 자국 음식처럼 대접받는다. 마치 일본의 돈가스가 한국에서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식 돈가스는 일본 방식 거의 그대로 한국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얇게 두들겨 커다랗게 소스를 얹어 내는 경양식 돈가스를 간혹 ‘한국식 돈가스’라 부르지만, 사실 일본에서 맨 처음 유행했던 돈가스의 모습은 경양식이었다. 한국에서는 분식집이나 기사식당 등에서 김치, 깍두기 같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사 메뉴의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일본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런가 하면 두툼한 일식 돈가스는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정돈’이 정통 일식 돈가스를 내어놓기 전까지 ‘한국식 일식 돈가스’는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퍼져 있었다. 그러다 질 좋은 고기를 원형 그대로 얼마나 바삭하게 튀겨내는가에 초점을 맞춰 미식(美食)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손쉬운 분식에서 기술을 요하는 요리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다.
돈가스는 아무 데서나 접할 수 있는 대중음식 수준에서 벗어나 진화 중이다. 어떤 고기를 어떻게 조리해서 튀겨내는지부터 시작해 어떤 소스를 곁들이는지까지 만드는 사람의 개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메뉴로, 가히 ‘덕후몰이’를 할 만한 음식이다. 유명한 돈가스집 앞에 줄지어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을 떠올려보자. 돈가스를 잘 아는 돈가스 덕후는 어디에나 있다.
카츠바이콘반
일식 돈가스를 대세로 만든 그 집!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3길 36 / 02-547-3903
© 네이버블로그_lcw6285 |
대학로 ‘정돈’에서 시작한 정통 일식 돈가스를 최근 미식계의 대세로 만들어버린 돈가스집이다. 원래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강남 도산공원 인근에 2호점을 하나 더 열었다. 장안동 ‘콘반’에서는 돈가스만큼이나 맛있는 카레를 함께 팔고, 기존의 돈가스 정식은 ‘카츠바이콘반’에서 판매한다. 요즘 일식 돈가스는 거의 다 카츠바이콘반의 방식을 따른다. 로스카츠는 비계와 살코기가 이어지는 등심의 살결을 그대로 살려내 연하게 튀긴다. 안심을 사용한 히레카츠 역시 원에 가까운 둥근 고기의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핏기가 가실 정도로만 튀겨낸 고기에서는 육즙과 함께 풍부한 고기 맛이 느껴진다. 바삭한 튀김옷은 고기의 맛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곁들여 나오는 장국도 수준급이다. 로스카츠 한 그릇에 1만 5000원, 싼 편은 아니다. 히레카츠도 맛있지만 한 가지만 고른다면 로스카츠를 추천한다.
북천
매콤한 브라운소스가 일품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8가길 7-2 / 02-796-2461
© 네이버블로그_lgdmut1264 |
한국식 일식 돈가스와 경양식 돈가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집이다. 대표 메뉴는 직접 만든 브라운소스를 적셔낸 브라운돈가스다. 등심 부위를 두툼하게 썰어 직접 갈아낸 빵가루를 묻혀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만 보면 일식에 가깝지만, 곁들여지는 브라운소스는 영락없는 경양식 스타일이다. 갈색 소스는 의외로 매콤한데, 국내산 청양고추를 사용해서 그렇다. 바삭한 돈가스의 튀김옷도 일품이지만, 뒤로 갈수록 소스가 스며들어 부드러워지는 순간에 배어 나오는 맛도 매력적이다. 튀김옷은 고기와 쉽게 분리된다. 튀김 기술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원래 돈가스는 고기와 튀김옷이 분리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고기와 튀김옷을 분리해 따로 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2층도 있지만 좌석이 많지 않아 꽤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한성돈까스
기본 돈가스의 정석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98길 10 / 02-540-7054
© 네이버블로그_flashfinger |
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멀지 않은 한성돈까스는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돈가스집이다. 외관도 낡고, 내부도 좁지만 식사 시간이면 직장인들이 몰려들어 종종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기도 한다. 담음새는 다소 투박하다. 아무 장식도 없이 돈가스와 겨자소스, 채 썬 양배추, 그 위에 뿌린 케첩이 전부다. 돈가스는 아예 잘라져서 나오는데, 가운데를 한 번 자른 후 잘게 썬 모양새다. 냉동하지 않은 생빵가루를 입힌 바삭한 튀김옷부터 부드럽게 익힌 두툼한 고기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다. 고기는 부드러운데 씹을수록 고소하다. 고기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밑간을 잘해서인지 꽤 많은 양인데도 질리지 않고 먹게 된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이 집만의 돈가스소스를 곁들이면 더욱 맛이 좋은데, 겨자소스를 섞어 먹어도 좋다. 워낙 인기 많은 집이라 곳곳에 분점을 냈다. 바로 인근에 별관이 있고, 강남역 주변에서도 맛볼 수 있다.
후니도니
치즈가 주욱~ 가성비는 갑
서울 종로구 종로 19 지하 1층 / 02-722-5402
© 네이버블로그_sssyyy |
한국식 돈가스는 여러 방법으로 변주되는데, 가장 인기 있는 돈가스는 치즈돈가스다. 단지 치즈를 조금 얹은 정도가 아니라, 고기 반죽 안에 치즈를 말아 넣고 튀겨 단면을 잘랐을 때 치즈가 흘러나오듯 넘치는 치즈돈가스가 유행이다. 후니도니는 광화문 오피스빌딩 지하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돈가스집이다. 테이블은 열 개 남짓이어서 점심시간마다 길게 줄이 늘어선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다. 우동에 밥까지 나오는 돈가스가 7500원, 가장 비싼 치즈돈가스가 1만 원이다. 체다치즈와 모차렐라치즈를 섞어 채워낸 덕에 노란빛과 흰빛이 도는 돈가스의 단면을 보다 보면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푸짐한 치즈와 잘 밑간된 고기 맛이 한데 어우러졌다. 먹음직스러운 모양새 덕분에 SNS에서 특히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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