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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칼국수

산야초 2015. 9. 15. 21:14

[맛대맛 라이벌] 칼국수

[중앙일보] 


‘후루룩’ 넘어가는 소리만으로도 입맛을 자극하는 게 바로 칼국수입니다.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줄 칼국수집 두 곳을 소개합니다. 1960년대말 문을 열어 50년 가까이 서울의 대표 칼국수집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꼭 닮은 식당들입니다. 그러나 조리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한 곳은 닭으로 낸 국물에 면을 함께 넣어 삶고, 다른 한 곳은 소고기로 국물을 낸 후 면은 따로 삶아 함께 담아냅니다.

1 명동교자 칼국수는 영계를 5시간 이상 푹 고아 낸 육수에 면을 넣어 함께 삶는 충청도식이다. 직원이 삶은 면을 건져내는 모습.
 
 
1위 명동교자
(구)명동칼국수


◆ 대표 메뉴: 칼국수(8000원), 만두(8000원), 비빔국수(8000원)
◆ 개점: 1966년(69년에 현재 1호점 자리로 이전)
◆ 특징: 신선한 영계를 5시간 이상 푹 고아낸 육수에 당일 반죽해 숙성시킨 면을 넣어 끓인 충청도식 칼국수집. 조그만 만두를 고명으로 함께 얹어내는 게 특징. 칼국수 사리와 육수, 밥을 계속 서비스로 준다. 본점에서 130m 떨어진 곳에 분점이 있다.
◆ 주소: 중구 명동10길 29(중구 명동2가 25-2), 분점 명동10길 8(중구 명동2가 33-4)
◆ 전화번호: 02-776-5348 (분점 02-776-5348)
◆ 좌석수: 250석(1·2·3층), 분점 210석(1·2층)
◆ 영업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9시30분(설·추석 명절 당일 휴무)
◆ 주차: 불가

"값 오르면 재료 더 팍팍 써요, 우리집에서라도 배불리 먹으라고"

5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칼국수를 팔고있는 명동의 터줏대감 명동교자.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명동칼국수라고 더 많이 부른다. 1960년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름이 명동칼국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7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름을 바꾼 건 역설적으로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명동’과 ‘칼국수’란 단어를 결합한 칼국수집이 명동에 워낙 많다보니 아예 옛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만들어 브랜드를 지키기로 한 거다. 명동교자의 본점과 분점은 딱 두 곳으로, 모두 명동에 있다.

2 당일 반죽해 만든 생면.
 
 
명동교자는 1966년 박연하(82) 대표가 친척이 운영하던 수하동의 작은 칼국수집 장수장을 인수한 게 출발점이다. 69년 지금 분점이 있는 자리로 옮기며 명동칼국수로 이름을 바꿨다. 박 대표 둘째 며느리이자 남편 휘준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채연희(44) 재정이사는 “입소문이 나며 손님이 늘자 아버님이 좋은 곳으로 진출하겠다며 당시 최고의 동네인 명동으로 이전했다”며 “명동은 수하동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단골이 따라올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명동에 문을 연 첫날부터 문전성시였다. 76년엔 지금 본점 자리에 있던 건물을 통째로 사서 두번째 매장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명동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가게에 불이 난 거다. 집기와 지붕, 간판이 다 타버렸다. 갑자기 닥친 재앙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데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정신이 번쩍 나더래요. 급하게 천막을 치고 국수를 만들 수 밖에 없었죠. 한동안 손님들이 지붕 없는 가게에 앉아 칼국수를 먹었는데 아버님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손님들은 오히려 ‘괜찮다’며 웃더래요. 감사한 일이죠. 꽤 오랫동안 간판도 못 달았는데도 사람들이 ‘여기가 그집이야’라며 찾아왔다는 거죠. 맛에 대한 자신감이 당연히 생기죠. 아, 맛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오는구나, 하고요. 이번에 분점 리모델링 하면서 아직 간판을 못 달았는데 그때 생각이 자꾸 나네요.”

3 최근 리노베이션한 본관. 아직 간판을 안붙였지만 처음 오는 손님도 잘 찾아온단다.
4 손님상에 나갈 칼국수를 들고 있는 채연희 재정이사.
 
예상치 못한 문제는 또 있었다. 여기저기 명동칼국수라는 이름의 국수집을 연 것이다. 전혀 다른 집을 원조 명동칼국수집에서 하는 집으로 오해하는 손님이 늘었고, 결국 박 대표는 78년 명동교자 (구)명동칼국수로 상호를 바꿨다.

 “똑같은 이름의 국수집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우리만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이름을 바꿨죠. 명동칼국수란 이름은 명동이라는 지명과 칼국수라는 고유명사를 합친 것이라 어차피 상호로 등록할 수도 없거든요.”

 명동교자의 교자는 교자상을 뜻한다. 손님에게 정성스레 한상 차려낸다는 의미란다. 특허청에 상호를 출원해 인정받았다. 다른 가게는 명동교자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명동교자 칼국수는 육수에 면을 넣어 함께 삶는 충청도식으로, 박 대표 어머니가 만들던 국수를 재현한 것이다. 물론 50여년 가까이 지나면서 칼국수가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소뼈를 우려낸 육수에 닭고기를 일일이 찢어 고명으로 얹어냈지만 요즘은 닭 육수에 돼지고기 간 것과 작은 만두를 얹어낸다.

 “명동으로 옮긴 후 닭 육수로 바꿨대요. 닭 육수가 여러 사람 입맛에 맞다고 판단한거죠. 닭을 잡아 삶고 이를 일일이 찢어 내던 고명도 손님이 많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된거죠. 그래서 돼지고기 볶은 걸 얹고 좀더 푸짐하게 내기 위해 고민하다 만두를 함께 냈답니다.”

명동교자 칼국수는 작은 만두와 볶은 돼지고기 고명을 푸짐하게 얹는다
 만두 고명은 박 대표의 넉넉한 인심이나 마찬가지다. 명동교자는 칼국수 사리와 육수, 밥까지 손님이 원하면 계속 무료로 준다.

 명동교자가 50년이나 계속 유지돼온 이유를 채씨는 재료에서 찾았다. 재료값이 올라도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배추값이 올라 김치가 금치로 불릴 땐 오히려 더 많이 내가는 식이다. 채씨는 “아버님은 ‘아마 다른 데서는 적게 먹을테니 이곳에서라도 넉넉하게 먹고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또 그날 사용할 식재료는 당일에 받아 사용하고 남은 것은 모두 버린다. 가게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냉동실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늘조차 미리 갈아서 보관하지 않고 요리할 때마다 빻아서 사용한다.

 명동교자가 잘 나가는 집이라는 건 예약을 받지 않는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유명한 사람도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한 번은 대선 직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게에 왔다. 수행원이 미리 와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줄 서서 앞뒤에 서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고 한다.

 위생은 기본이다. 명동교자 김치는 칼국수 만큼 유명한데, 직원이 가게를 돌아다니며 손님 상 위의 김치 그릇이 비워질 때마다 김치를 일일이 채워놓는다. 간혹 김치가 아까워 조금씩만 덜어주는 게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위생을 고려한 배려다.

 “테이블 위에 김치통을 올려 놓으면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들 얘기하는데 그렇게 하면 위생적이지 않아요. 모두 집게로 덜어먹는 것 같지만 가끔 자기 젓가락으로 김치를 꺼내 먹는 사람이 있거든요. 양념장은 어쩔 수 없이 테이블에 올려놓기는 하는데 직원이 주의깊게 봐요. 혹시 개인 숟가락으로 양념장을 덜어내는 걸 보면 즉시 수거해 버려요.”

 손님 상에 한번 올라간 음식은 모두 버린다. 그렇게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비용만 한 달에 300만원에 이른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이를 갚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았다. 98년 8월15일에는 개점 30주년을 기념해 칼국수 한 그릇을 개업 당시 가격인 100원에 팔았다. 수익금은 전액 수재의연금으로 기부했다. 외환위기 직후라 명동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몰렸고 주변 가게의 항의가 거셌다. 오히려 경찰이 나서서 “좋은 일 하는데 좀 참아달라”고 부탁했단다.

 채씨는 “시할머니 손맛에서부터 부모님 노력으로 이어진 명동교자를 100년 넘게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국시집은 47년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칼로 반죽을 직접 썰어 면을 뽑는다. 15년 이상 경력의 직원이 1시간 넘게 면발을 썰어야 한 끼 장사 분량이 나온다

3위 국시집

◆ 대표 메뉴: 국시(9000원, 곱배기 1만1000원), 수육·문어(小 1만7000원, 大 2만8000원)
◆ 개점: 1968년
◆ 특징: 정재계 인사의 단골집으로 유명하다. 1++등급 한우만 넣어 우려낸 육수에 면을 따로 삶아 담아내는 경상도식 국수집이다. 매일 아침 반죽하고 칼로 썰어낸 국수는 식감이 하늘하늘 부드럽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 주소: 성북구 창경궁로 43길 9(성
북구 성북동1가 9)
◆ 전화번호: 02-762-1924
◆ 좌석수: 80석, 별관 40석
◆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2시30분, 오후 5시30분~오후 9시(설·추석 명절 휴무)
◆ 주차: 가게 옆 유료주차장 이용(무료)

2 따로 삶은 면을 육수와 함께 담아내고 있다.
3 본관 1층 모습.
4 칼국수집과 역사를 함께 한 작은 간판.
 
 
"맛 비결? 재료 좋으면 솜씨 없어도 맛있어요"

“인터뷰? 할 말 없는데. 일단 국수를 먹어봐. 먹어야 내가 하는 얘길 알 수 있어. 우리 국수는 부드러워서 배 불러도 후루룩 넘어가.”

 성북동 골목에 있는 칼국수 전문점 국시집의 이수자(64) 사장은 식사 때도 아닌데 이렇게 국수부터 내왔다. 그릇이 넘칠만큼 가득 담긴 국수의 외양은 소박했다. 면에 애호박, 고기를 갈아 볶아낸 고명이 전부였다. 국수를 한 젓가락 뜨자 그제서야 이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때. 우리 국수 먹어본 사람은 모두 담백하다고 해. 우린 뭘 더 넣지 않아. 국물은 한우 1++등급으로만 우려내.”

 국시집은 이 사장의 어머니인 고(故) 이옥만 여사(2007년 작고)가 1968년 지금 자리에 문을 열었다. 올해로 47년째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거다. 처음엔 지금 본관(※바로 옆에 별관도 있다) 1층에 테이블 너댓개만 놓고 칼국수를 팔기 시작했다. 간판도 없었다. 그저 경상도에서 국수를 부르는대로 국시 파는 가게라는 뜻으로 국시집이라 불렀다. 입소문이 나면서 하나 둘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

 “어느날 당시 서울시장님이 오셨대.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맛있는 집이 간판도 없이 장사하냐며 유명한 간판만드는 사람한테 요청해서 간판을 만들어주셨다더라고.”

 지금 국시집 앞에 걸려 있는 작은 나무 간판이 이때 만든 것이다. 매년 고치고 다시 칠해가며 계속 사용하고 있다. 입소문이 나고 손님이 더 많아지자 80년대에 2층까지 가게를 넓히는 걸로 모자라 옆에 별관을 만들었다. 국시집엔 정재계 인사들이 즐겨 찾았는데,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고 별관은 일부러 룸으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자주 찾던 단골 중 하나가 칼국수 좋아하기로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칼국수 먹으려고 종종 찾았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오기 전날부터 청와대 경호원이 와서 가게를 샅샅이 살폈고, 경호원만 40명씩 함께 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분들이 많이 오는데 그걸 보면 자부심이 생겨. 누가 오느냐는 건 말해줄 수 없어. 그 사람들 사생활이잖아. 그리고 난 주방에 있으니까 잘 몰라. 높은 사람 왔다고 내가 일부러 인사 나갈 필요 없잖아. 난 국수만 잘 만들면 돼.”

국시집은 애호박·돼지고기만 올려 소박해보이지만 국물이 고소하다. 
 국시집이 인기를 끌자 성북동과 혜화동엔 비슷한 스타일의 칼국수를 파는 가게가 여럿 생겼다. 그러나 원조 국시집 인기는 좇아오지 못했다.

 이 사장이 가게 일을 하기 시작한 건 마흔 살 무렵인 2000년이다. 결혼하면서 미국 이민간 이 사장을 어머니가 불러들였다. 가게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이 사장도 어머니가 피땀 흘려 평생 이룬 것을 지키고 싶었다. 세 자녀도 모두 장성해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없기도 했다. 한국에 온 후 3년간은 하루종일 가게에만 매달렸다. 반죽부터 설거지까지 모든 과정을 배우고 익혔다. 그렇게 3년을 하니 어머니가 내는 맛을 낼 수 있었다. 어머니도 그제서야 딸을 인정했다.

 “친척들은 다 내가 얼마 못 버티고 미국으로 도망갈 거라고 말했어. 내가 무남독녀거든. 귀하게 키우셨지. 결혼 전까지 걸레 한 번 안 빨아봤으니까. 그런데 엄마 생각을 하니까 포기할 수 없었어. 요즘은 행복해. 이 나이에 어디서 일할 수 있겠어.”

 이 사장은 지금도 어머니가 하던 방식 그대로 칼국수를 만든다. 면은 밀가루로만 반죽하고 직접 칼로 썬다. 아침 7시부터 밀가루를 뭉치고 치대고 밀고 끓여내야 낮 12시 영업시간에 맞출 수 있다. 육수는 밤새 핏물을 뺀 양지·사태를 펄펄 끓는 물에 넣고 오전내 푹 끓인다. 육수를 우릴 땐 고기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파·양파도 안 넣는다. 고기 자체의 고소한 맛으로만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면은 따로 삶아 육수와 함께 담아내는 경상도식 조리법을 따른다. 간은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으로, 김치는 매년 11월에 1000포기씩 담가 김치보관실에서 보관하며 1년내 사용한다.

 “재료가 좋으면 음식을 못해도 맛있어. 처음 가게 온 직원은 조미료 어디 있냐고 물어. 조미료 안쓴다고 말하면 다들 놀라더라고. 조미료를 쓸 필요가 없지. 좋은 재료만 쓰니까. 우리집 칼국수를 먹으면 속이 편하다는데 밀가루만 쓰고 조미료를 안쓰는 게 비결이야.”

 식사가 아니라 술 한잔 하려 찾는 사람도 많다. 육수를 낸 양지·사태를 두툼하게 썰어낸 수육과 포항 죽도시장에서 공수하는 문어 때문이다. 문어는 어머니 고향인 경상도에선 잔치상에 빠지지 않고 내는 메뉴다.

 국시집과 함께 나이가 든 오랜 단골들은 이 사장을 딸처럼, 동생처럼 여긴다고 한다.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사장이 직접 국수를 삶는다.

 “내 나이가 올해 예순넷이거든. 나이가 들어서인지 힘들 때가 많어. 그래도 엄마, 그리고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들 생각하면 계속 해야지. 적어도 일흔때까진 해야지. 그 이후엔 어떡하냐고. 아마 직원들이 함께 해나갈거야. 지금도 그런 얘길 가끔 하거든. 직원이라고 하지만 10년 넘께 함께 하다보니 다들 한 식구같아.”

글=송정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블루리본 서베이』김은조 편집장과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식도락동호회 에피큐어 최유식 대표, 요리연구가 강지영씨의 추천을 받아 6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6곳을 3월 12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명동교자와 소호정이 각각 1, 2위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2위로 선정된 소호정 측에서 사장이 건강상 이유로 해외에 나가 있어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해 3위인 국시집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