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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흔히 해먹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청국장'이다. 그 냄새의 오묘함 때문에 다세대주택, 특히 아파트에서는 엄두도 못낼 음식이다. 숙성(?)한 양말에서 나는 냄새때문인지 집 밖의 청국장을 잘 하는 집은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필히 메모해 두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국장 마니아라면 이 정보를 필히 스크랩해 두시길.
안국역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별궁식당'. '별궁'이란 이름이 궁금했다. 이 곳은 한국에서도 몇 남지 않은 '한옥마을'로 옛 조선시대 때 상궁들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한옥들 뿐이다. 고층 빌딩 숲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한옥 마을에 청국장은 참 잘 어울리는 '소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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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곳에서 청국장을 맛본 사람들은 '소품'이 아닌 '주인공'으로 낙점짓는다. 이 집의 메뉴는 두 종류다. 청국장과 된장찌개가 메인 메뉴라면 동동주와 파전, 보쌈, 도토리묵, 회무침 등 비교적 다양한(?) 메뉴가 저녁 나절에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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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대표메뉴는 바로 청국장이다. 전남 무주구천동에서 직접 담근 콩을 주1회 공수한다. 장도 직접 담근다.
별궁식당 주인인 진성일(61) 김선옥(58) 부부는 "깨를 갈아서 국물을 내고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면서 "고등어 무조림과 시금치 나물, 버섯 볶음 등 고정 반찬 4개와 계절에 따른 반찬을 3개 더 추가한다"고 설명했다.
주인은 인근이 한옥마을이라 '냄새' 때문에 민폐를 끼칠까봐 메뉴를 더 늘리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곳은 '청국장 마니아'들의 아지트가 됐다. 주인 진성일씨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단골 손님"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단골손님을 모두 밝히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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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던 중 음식이 나와 한 숟갈 들었는데, 그 향이 매우 깊다. 걸쭉한 국물 속에 수 많은 콩 알갱이들이 서로 수저 위로 올라와 김을 뿜어내는 모양이 소리 지르는 듯 하다. 청국장과 궁합이 잘 맞는 마른김 먹는 재미를 덧붙인 건 주인장의 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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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지어진 한옥을 개조해 만든 별궁식당은 풍문여고 뒤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아 쉽게 찾진 못할 것 같다. 그러나 한 번 찾으면 그 길을 외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맛이 좋다. 안방에 걸려있는 '노력 않고 영화는 없느니라'라는 문구가 이 집에서 청국장을 맛있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조용히 대변하는 듯 하다.
진성일씨는 "앞으로 아들에게 물려주어 대를 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이어진 별궁식당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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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손님들이 맛이 좋다며 계속 찾을 때의 보람을 생각하면 음식에 장난 칠 수 없죠. 자신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 글 원창연 헬스조선 PD (cywon@chosun.com)
/ 사진 홍진표 헬스조선 PD (jpho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