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32) 솥밥
내 맘대로 고른 솥밥 맛집 best 4
글 : 최선희 객원기자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 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 유안진, ‘밥해 주러 간다’
밥을 이야기하자면, 엄마를 빼놓을 수 없다. 구경꾼들을 숙연하게 만든 할머니의 한마디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다. 그들에게는 자식 밥 먹이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하다. 다 큰 자식이라도, 게다가 “취직 못한 막내” 같은 아픈 손가락이라면 더욱 품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엄마의 밥은 자식들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이고, 위로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나 역시 엄마 밥의 귀함을 몰랐다. 당연하게 여겼고, 때로는 지겨워 투정도 부렸다. 식구들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먹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쌀을 안치고, 저녁이면 또다시 부엌에서 똑같은 일과를 하루도 쉼 없이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큰 노동이고 희생인지를 나중에서야 알았다.
감사한 마음을 채 전하지도 못 했는데, 엄마는 몇 해 전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오랫동안 반복해온 일마저 서툴러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밥 짓기다.
엄마의 밥에는 변주가 있어 좋았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맨밥이 심심할 즈음이면 한 번씩 색다른 밥을 상에 올렸다. 봄이면 향 좋은 취나물이나 곤드레 등을 푸짐하게 넣어 나물밥을 만들었고, 겨울이면 제철을 맞아 단맛이 한껏 오른 무와 굴을 얹었다. 콩나물시루에서 통통한 콩나물을 한 줌 뽑아 넣어 쌀 반 콩나물 반이었던 밥도 별미였고, 가끔은 밤·고구마·표고버섯·은행 같은 재료를 섞은 영양밥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밥에는 맛있는 양념간장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쓱쓱 비벼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면 구수한 누룽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룽지는 또 얼마나 구수한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그 맛있는 솥밥을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결혼한 뒤에도 ‘엄마 밥이 그리워 왔다’는 한마디면 행복한 표정으로 밥상을 차려주던 엄마는 이제 밥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법을 모두 잊었다. 엄마의 기억이 더 지워지기 전에 ‘엄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그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났다’고, 이번에는 꼭 말해야겠다.
제주 도미가 입 안에서 살살~
도꼭지
서울 마포구 백범로 10길 30
© 네이버블로그 - tonyny35 |
솥밥 전문점인 만큼 밥맛에 신경을 많이 쓴다. 쌀 전문가에게 샘플을 받아 가장 좋은 상태의 제품을 골라 쓴다. 대표 메뉴는 도미솥밥. 제주에서 당일 직송한 최상급 도미를 손질한 뒤 머리 부분은 따로 굽는다. 구운 도미 머리로는 서너 시간 육수를 우려 밥물로 쓰고, 도미 살은 직접 만든 누룩 소금으로 숙성해 부드럽게 만들어 솥밥에 올린다. 바지락솥밥은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만든 육수로 밥을 짓는 등 메뉴에 따라 육수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도 전복솥밥, 고등어·삼치·갈치구이와 계절솥밥, 제육볶음과 계절솥밥도 유명하다. 도꼭지란 ‘어느 한 분야의 으뜸이 된다’는 뜻의 순우리말로, ‘최고의 밥을 짓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미슐랭 ‘묘미’가 야심 차게 내놓은 우리 밥
미상
서울 용산구 한남동 699-36 지하2층
© 네이버플레이스 - 미상 |
미슐랭 가이드 1스타를 받은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묘미’가 새롭게 선보인 브랜드. 한국 전통 쌀로 밥맛의 진수를 보여온 묘미에서 호평받은 메뉴 중 쌀밥과 기본 찬을 세트로 구성해 대중화를 시도했다. 솥밥을 통해 최고의 밥맛과 식감을 내기 위해 쌀은 물론 물까지도 신경을 많이 썼다. 백진주 쌀과 골드퀸 3호 쌀을 섞어 사용해 밥알이 살아 있으면서 고소한 누룽지 향이 나는 것이 특징. 매일 아침 신선한 도미를 받아 그 자리에서 손질해 올린 도미솥밥이 유명하다. 생선살을 잘게 부셔서 양념간장을 넣고 밥과 섞으면 그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부드러운 갈비를 얹은 갈비솥밥도 인기다. 이외에도 송이 향이 은은한 송이솥밥과 전복솥밥, 아무런 토핑 없이 쌀밥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미상솥밥이 있다.
그날 도정한 쌀로 갓 지은 포슬포슬함
도마
서울 종로구 인사동8길 6-1
© 인스타그램 - doma_insa |
매일 도정한 신선한 쌀로 밥을 짓는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지루함을 느낄 손님들을 위해 “기다리면서 멋진 한옥에서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눠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표 메뉴로 ‘솥밥 3총사’로 불리는 삼계솥밥·갈비솥밥·곤드레연근솥밥이 있다. 단품과 정식으로 구분되는데, 정식에는 특제 된장찌개인 일명 마약 된장찌개가 같이 나온다.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솥밥에는 보통 뜨거운 물을 붓지만 삼계솥밥에는 예외적으로 뜨거운 닭 육수를 부어준다. 점심 메뉴로 마약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 제육 등이 한 상으로 나오는 ‘마약 된장찌개 정식’도 인기다. 단품으로 닭다리숯불구이나 고등어숯불구이 등을 주문할 경우에도 1000원을 추가하면 솥밥으로 바꿀 수 있다.
특허 받은 솥밥은 이런 맛!
모랑
오피시아타워점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92 지하1층
© 네이버블로그 - midori95 |
모랑은 “김이 모락모락 난다”는 뜻의 순우리말로, 예로부터 귀한 손님이 오면 밥이 남아 있더라도 새 밥을 지어 대접하던 우리 전통을 담아 음식점 이름을 지었다. 2014년 육수를 이용한 솥밥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해물솥밥이 대표 메뉴로 굴·소라·새우 등 해산물의 향이 밥과 잘 어우러진다. 김에 간장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불고기솥밥은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양념에 재운 불고기를 얹은 것으로, 날달걀과 함께 비벼 먹으면 고소하고 부드럽다.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다. 태백산 고지에서 자생하는 곤드레를 듬뿍 넣어 담백한 곤드레솥밥, 무와 콩나물에 굴을 넣어 특유의 굴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굴솥밥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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