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쫀득한 피에 꽉 찬 소… 만두에 우주를 빚어넣었네

산야초 2021. 4. 4. 12:48

[아무튼, 주말] 쫀득한 피에 꽉 찬 소… 만두에 우주를 빚어넣었네

[정동현의 Pick] 딤섬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1.04.03 03:00 | 수정 2021.04.03 03:00

 

 

 

서울 회현동 레스케이프 호텔 중식당 '팔레드신'의 메추리알 트러플 샤오마이, 하가우, 사천식 교자, 크리스피 차슈바오.(앞에서부터)/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세계 어디를 가든 빨갛게 장식한 간판이 있다. 차이나타운이라고 부르는 이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금융, 유통, 정치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층위를 이룬다. 그 두터운 상자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다 보면 마침내 작게 빛나는 접시 하나에 이르게 된다. 바로 딤섬(點心)이다.

 

호주 멜버른의 한 주방에서 일하던 시절, 휴일이면 꼭 차이나타운 단골 식당에 들러 딤섬을 시켰다. 고급 호텔처럼 종류가 다양하거나 캐비아가 올라간 화려한 딤섬은 없었지만, 시키면 빠르게 나오고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다. 화장실을 오가며 슬쩍 주방을 엿보면 오래된 성곽처럼 내려앉은 어깨에 큰 흉터처럼 깊은 주름살을 한 노인이 허리를 숙인 채 딤섬을 빚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여든의 나이에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듯 작은 주방의 노인도 여전히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딤섬을 빚었다.

 

한국에서는 딤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최근 딤섬을 주로 하는 곳이 몇 생겼다.

 

서울 북촌에 가면 적색으로 벽을 칠한 ‘티엔미미’가 있다. 벽에는 대나무로 만든 딤섬 접시가 가득 붙어 있었다. 딤섬에 승부를 걸겠다는 기개가 느껴졌다. 아내가 딤섬을 빚고 남편이 홀을 맡은 이곳은 여느 중식당과 다르게 손님을 맞는 태도에 예의와 섬세함이 짙게 깔렸다. 오랫동안 훈련 받은 티가 났다.

 

메뉴판에 올라온 딤섬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중 ‘트러플 쇼마이’는 돼지고기, 새우, 트러플오일, 오징어 먹물을 썼다. 색은 까맣지만 증기와 함께 올라오는 향은 침엽수림에 들어온 듯 그윽했다. 입에 넣었을 때는 적당한 열기와 함께 씹을 때마다 재료가 입속에 흩어졌다. ‘부추수정교자’는 전분을 뜨거운 물로 반죽해 투명한 피를 만들고 새우, 부추, 죽순으로 소를 빚었다. 재료의 구성은 단순했지만 맛의 조합은 명쾌하게 다가왔다.

 

요리 쪽도 볼만했다. 무엇보다 ‘황금볶음밥’은 달걀지단을 잘게 풀고 시뻘건 불에 쌀알을 알알이 날려가며 확실히 볶은 티가 났다. 동네 중국집 볶음밥에 느꼈던 허기가 쉽게 채워졌다.

 

숙명여대 입구에 가면 ‘구복만두’가 있다. 이 집은 이른바 중국에서 넘어온 ‘동포’들이 차린 식당 중 하나이지만 딤섬을 주력으로 한다는 면에서 특이점을 가진다. 대학가 근처라서 그런지 가격도 동네 프랜차이즈 분식집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구복전통만두’는 돼지고기와 부추를 소로 쓰고 피를 살짝 도톰하게 잡은 뒤 기름에 한쪽 면을 부친 군만두다. 군만두라 이름 붙이고 아예 튀겨 내는 흔한 군만두와는 결이 달랐다. 입에 물면 치밀한 조직감에 실한 느낌이 들었다. 새우만두는 새우를 통째로 넣은 뒤 달걀과 채소로 소를 채웠다. 꽉꽉 찬 소와 재료와 짠맛 사이의 균형감이 팽팽하여 먹는 속도를 줄이기 힘들었다. 속에 젤라틴과 함께 굳힌 육수를 넣어 익힌 ‘샤오롱바오’는 전문점처럼 피가 하늘거리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적었지만 오히려 편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소박함에 정이 갔다.

 

남산 자락으로 자리를 옮기면 레스케이프 호텔 6층에 ‘팔레드신’이 있다. 빛을 발하는 강한 적색으로 콘셉트를 잡은 실내는 홍콩 영화에서 봤던 화려한 색감에 마음이 동했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느꼈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되는’ 남국 특유의 퇴폐미도 엿보였다.

 

이곳의 딤섬은 호텔 이름 아래 있는 식당답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를 마음껏 썼다. ‘메추리알 트러플 샤오마이’는 반숙으로 익힌 메추리알을 소로 넣고 트러플 버섯 향을 입혔다. 이 딤섬은 갓 나왔을 때 그 열기를 무릅쓰고라도 맛을 봐야 한다. 반숙 메추리알이 터질 때 뜨끈하게 흘러내리는 노른자의 미끈한 질감은 매혹적이었다. 콧속을 메우는 이국적인 향기와 찰진 질감은 감각의 밀도를 한층 높였다.

 

반투명한 피에 새우 살을 으깨 넣은 ‘하가우’는 쫀득한 반투명 피와 꽉 찬 소가 밀고 당기듯 조화를 이뤘다. 매콤한 고추기름으로 만든 소스에 교자를 버무린 ‘사천시교자’는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일련의 맛에 전환점을 줬다.

 

‘크리스피 차슈바오’는 소보루 빵처럼 바삭하고 고소하지만 얇은 반죽 안에 돼지고기를 익혀 만든 차슈를 넣었다. 정교한 공작기계처럼 구성 요소 하나하나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오직 숙련된 기술로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가 있었다. 작은 접시 위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작은 우주가 있었다.

 

#티엔미미: 트러플 쇼마이 8000원(4개), 부추수정교자 8000원(4개), 황금볶음밥 9000원. (02)732-0719

#구복만두: 구복전통만두 6000원(6개), 새우만두 7000원(6개), 샤오롱바오 7000원(6개). (02)797-8656

#팔레드신: 메추리알 트러플 샤오마이 1만5000원(3개), 하가우 1만7000원(4개), 크리스피 차슈바오 1만5000원(3개), 사천식 교자 1만5000원(5개). (02)317-4001

 

<아무튼주말> 정동현픽_딤섬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