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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와 곰취가 화음 이룬 맛...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같네

산야초 2021. 6. 13. 11:59

한우와 곰취가 화음 이룬 맛...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같네

[아무튼, 주말-정동현의 Pick] 떡갈비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1.06.12 03:00

 

햄버거 패티와 떡갈비는 같은 듯 다르다. 햄버거 패티는 빵과 야채, 치즈, 소스와 함께 한순간에 먹는다. 이런 이유로 햄버거 패티에는 소금과 후추를 제외하고는 양념을 크게 하지 않는다.

 

떡갈비는 밥과 함께 먹는 요리다. 빈 여백 같은 밥과 함께하기 위해 그 자체에 맛의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채소와 양념의 맛, 쫄깃한 식감 등이 어우러져야 햄버거 패티가 아닌 떡갈비가 된다.

 

떡갈비는 대량생산 되면서 아우라에 상처를 받았다. 도시락 반찬으로 올라가는 저렴한 떡갈비는 그 이름 덕에 한식 같기도 하고 건강에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 아무 관련이 없는 음식이다.

 

서울 암사동 '동신면가'의 소 떡갈비(앞)와 평안냉면./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첫 번째로 갈 집은 경기도 의정부 ‘고산떡갈비’다. 높은 산이라는 담백하지만 진중한 뜻처럼 1979년부터 자리를 지킨 이곳은 떡갈비가 주력이다. 메뉴도 단순하다. 소 떡갈비, 돼지 떡갈비에 갈비탕과 열무냉국수가 메뉴의 전부다.

 

번듯하게 올린 양옥 건물에 들어서니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종업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기에 몸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빠르게 깔린 찬 중 두툼하게 잘라 담은 도라지 무침은 예전 시골에서 먹던 것과 비슷했다. 씹을수록 황토를 닮은 도라지향이 흘러나왔다. 큼직한 무가 들어간 동치미는 식전과 식후에 나누어 먹으면 좋을 듯했다.

 

겉을 캐러멜처럼 짙게 익힌 소 떡갈비는 소 특유의 향이 강하게 났다. 돼지 떡갈비는 색이 연했고 조금 더 촉촉했다. 양파 같은 채소의 흔적은 별로 없었고 고기의 입자는 굵어서 씹는 맛이 있었다. ‘달달한' 간장에 고기를 찍고 하얀 밥 위에 올렸다. 쌈을 곁들이고 고기를 먹은 후에는 된장찌개를 밥에 말았다. 언젠가 먹어본 듯한 맛에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떡갈비의 맛이 어디까지 향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면 서울 원서동 ‘한식공간’에 가야 한다. 예약만 받는 이곳은 운이 좋으면 창덕궁이 훤히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여름의 초입, 겁도 없이 무섭게 푸른 나무들을 보니 식욕이 돋았다.

 

한식공간은 점심·저녁 한 가지 코스만 내놓는데 구성은 그날그날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흔히 코스 요리가 그렇듯 이 맛 저 맛 뒤죽박죽인 느낌은 없었다. 기교를 앞세운 나머지 뭘 먹었는지 모를 산만함도 없었다. 채소면 채소, 생선이면 생선 주인공인 식재료를 전면에 내세우고 확실히 밀어줬다.

 

정점은 떡갈비였다. 한우 채끝과 등심을 섞어 쓴 떡갈비는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처럼 곰취, 취나물 같은 나물 채소와 고기가 정성 들여 구운 사람의 손을 빌려 흥겨운 화음을 이뤘다. 단맛은 각 재료를 끈끈하게 이어 붙였다. 봄나물은 단맛보다는 짙은 감칠맛을 내뿜으며 전체적인 맛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나물 자체의 향도 소고기 육향과 하나로 어우러졌다.

 

코스의 한 부분이라 떡갈비 양 자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작더라도 완전했다. 시조를 읊듯 정확한 곳에서 멈추어 맛을 느끼는 식사는 허기가 아니라 빈 마음을 채우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갈 곳은 강동구청 근처 ‘동신면가’다. 햇볕이 머리 위로 올라서는 점심나절, 주차장에서 부지런히 수신호를 내는 주인장이 보였다. 오와 열을 맞추어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과 기물을 보니 굳이 손수 주차 지도를 하는 주인장 성격을 알 수 있었다. 동신면가에서 내놓는 음식은 예전 가족 외식 메뉴를 총망라한다.

가볍게 ‘보따리만두’를 한 접시 올려두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만두 속엔 숙주, 고기, 두부 등이 꽉 들어차 있었다. 만두피는 메마른 기색이 없고 간도 정확했다.

 

이 집 냉면도 먹어 봐야 한다. 황해도 쪽 냉면이 그렇듯 육수에 단맛이 적당히 배어 있었다. 이로 씹으면 쫄깃한 듯하면서도 툭툭 끊기는 면을 머리채 잡듯 젓가락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목구멍으로 면을 씹을 기세로 고개를 그릇에 박았다. 액젓에서 비롯된 달큼한 맛이 담백한 면 다발과 어우러져 몸을 메웠다.

 

머리맡 베개처럼 직사각형으로 아담하게 나온 떡갈비는 젓가락으로 조금씩 조각을 내 먹었다. 채소의 단맛이 고기와 합쳐져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그 맛은 내가 이 땅에 있는 한 변치 않을 것 같았다. 오랜 기억만큼 앞으로도 이어질 푸근하고 익숙한 맛이었다.

 

#고산떡갈비: 소 떡갈비 2만5000원(300g), 돼지 떡갈비1만5000원(300g), (031)842-3006

#한식공간: 런치 코스 8만원, 디너 코스 15만원, (02)747-8104

#동신면가: 소 떡갈비 1만9000원(250g), 돼지 떡갈비 1만1000원(250g), 보따리만두 8000원, (02)481-8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