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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속을 청명하게 훑는 기세에 국물 한그릇 말끔히 비웠다

산야초 2021. 5. 30. 13:20

[아무튼, 주말] 속을 청명하게 훑는 기세에 국물 한그릇 말끔히 비웠다

[정동현의 Pick] 짬뽕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1.05.29 03:00

 

 

 

경기도 하남 '조짜장'의 소고기짬뽕.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짬뽕에는 한국이 담겼다. 거창한 말이지만 짬뽕의 기원과 역사를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짬뽕의 기원은 중국의 초마면(炒碼麵)에 두는 것이 일반적인 듯 싶다. 19세기 중국에서 넘어왔지만 이후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본래 맑은 국물이던 짬뽕은 고춧가루를 사랑하는 민족의 취향을 거부하지 못하고 빨간 국물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인터넷 보급에 따라 ‘전국 5대 짬뽕’과 같은 콘텐츠가 2000년대 초반부터 넓게 퍼졌다. 대중이 여러 곳을 다니며 짬뽕 맛을 비교하기 시작하자 전국 중국집 짬뽕 맛이 상향 평준화됐다. 하지만 이는 맛이 어디를 가나 비슷해졌다는 뜻도 된다.

서울 종로5가 지하철역 바로 뒤편 골목에 있는 ‘홍릉각’은 어딜 가나 비슷해서 실망도, 그렇다고 기쁨도 없는 짬뽕을 거부한다. 약국과 한약재상이 공존하는 종로5가의 오래된 은행나무 같은 이 집은 나이든 주인장이 주방을 지킨다.

 

간짜장은 잘게 다진 양파와 고기의 맛이 일일이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던 어머니 손길처럼 곰살스러웠다. 양파를 씹을 때는 달지만 고기가 혀에 걸리면 기분 좋게 짭짤한 맛이 신경을 거슬러 뇌에 닿았다.

 

짜장도 좋지만 이곳의 짬뽕은 모범 답안을 넘는 수준이다. 고기보다는 채소를 많이 써서 국물이 엷지만 오히려 시원한 맛이 났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볶는다는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고 짬뽕의 맛은 거짓이 없는 수학 공식처럼 따박따박 일정한 수준을 지켰다. 곱게 고춧가루를 볶아 국물에는 탄 맛이 없었다. 채소는 과하게 익혀 무른 기색 없이 아삭한 맛이 여전했다.

 

자리를 남산 밑으로 옮겨 필동에 가면 ‘수엔190’이 있다. 12층 빌딩 꼭대기 이 집에 가면 창 밖으로 다른 빌딩 하나 없이 훤히 남산이 보인다. 남산과 한옥마을이 어깨동무를 하며 어우러진 경치를 즐기려면 이음새 없이 꽉꽉 짜인 코스를 선택하는 게 좋다. 하지만 짧게 툭툭 치고 나가야 하는 점심에는 간단하게 요리와 식사를 곁들이는 이도 많다.

 

옛날 식으로 하얗게 튀긴 뒤 소스에 볶아낸 ‘탕수우육’은 돼지 대신 소를 썼다. 고기는 핏물을 말끔하게 빼서 맛이 깨끗했다. 튀김옷은 쫀득하면서도 아삭한 맛이 살아 있었다. 화려하게 부푼 튀김옷도, 한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과시적으로 자른 고기 덩어리도 없었다. 대신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곱게 집어 먹을 수 있는 우아한 배려가 있었다.

 

식사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역시 해물짬뽕이다. 이 집 역시 불 맛이라는 명목하에 과하게 볶은 티가 없이 채소의 숨을 살짝 죽일 정도로 빨간 불을 어르고 달랬다. 갑오징어와 같은 해산물이 넉넉하게 들어가 맛이 둔탁하지 않았다. 거침없는 바깥 풍경처럼 청명하게 속을 훑는 국물의 기세에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말았다.

 

한강변을 따라 경기도 하남시에 오면 ‘조짜장’이 있다. 아파트 단지가 웃자란 잡초처럼 이곳저곳 쑥쑥 큰 이 땅에 겸손한 이름을 달고 영업을 하는 이 집에는 뜨내기 손님이 드물다. 가격을 보면 하나같이 저렴한데 안내 문구를 보니 주문을 받으면 그때 조리를 시작한다고 했다.

 

경기도 하남 '조짜장'의 조짜장.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식사 메뉴 제일 위를 차지한 ‘조짜장’은 단돈 5000원이지만 다른 집 간짜장처럼 물기 없이 재료를 볶아낸다. 꾸덕하게 면에 달라붙은 소스와 면을 잘 모아 한꺼번에 입에 넣었다. 고소하면서도 짭짤하고 달달한 느낌이 들었다. 넉넉하게 든 고기에서 이 집 주인장 인심도 느껴졌다.

 

깐풍기는 닭고기 순살을 큼지막하게 잘라 튀기고 붉은 소스를 얹어 볶았다. 신맛과 단맛이 매운맛 뒤에 숨어 맛에 높낮이를 줬다.

 

그렇게 배가 불러올 쯤 옆 테이블을 슬쩍 봤다. 단골로 보이는 노인 셋 모두 함께 먹고 있는 음식이 있었다. 소고기짬뽕이었다. 요 근래 소고기를 넣은 짬뽕은 기름이 많은 소고기 뱃살을 주로 써서 맛이 텁텁한 유가 많다. 이 집은 대만 우육탕처럼 국물이 맑고 시원했다. 매운맛을 골랐지만 혀를 아리게 매운 통증이 아니라 얼큰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쾌감이었다. 하얗게 익은 양파를 비롯한 당근, 목이버섯 같은 채소가 은근한 단맛을 줬다.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자 보들보들 익힌 소고기가 내놓는 소박한 기름기가 입가에 묻었다. 그리고 그릇을 내려놓았을 때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밖으로 구김 없이 너르고 잔잔한 초여름 산들바람이 가로수 가지를 흔들었다.

 

#홍릉각: 간짜장 6000원, 짬뽕 6000원, 볶음밥 6000원. (02)762-3941

#수엔190: 삼선자장면 8000원, 해물짬뽕 1만원, 탕수우육 2만8000원. (02)2000-2888

#조짜장: 조짜장 5000원, 소고기짬뽕 8000원, 미니깐풍기 1만1000원. (031)796-3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