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결혼전 임시 주거 옛말…요즘 월셋집, 몸만 들어가면 되네 [혼잘혼살]

산야초 2022. 5. 8. 10:04

결혼전 임시 주거 옛말…요즘 월셋집, 몸만 들어가면 되네 [혼잘혼살]

중앙일보

입력 2022.05.08 06:00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에피소드 신촌369.’ 밖에서 보면 대학가의 흔한 오피스텔이지만 개별 세대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대단지 오피스텔 특유의 살풍경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컨시어지(안내 데스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중정형 구조 덕이다. 가운데 정원과 쉼터를 중심으로 369가구가 둘러싼 형태다. 식당부터 강연 장소, 개인 창고, 세탁 룸, 회의 공간까지 공용 시설의 면면도 알차다. 주방에는 와인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개인 와인 창고도 구비되어 있다. 물론 개인 공간은 여느 오피스텔처럼 철저히 독립적이다. 복층부터 분리형 원룸까지 다양한 구조 내부는 이케아·무인양품 등의 가구로 꾸며져 있다. 붙박이가 아닌 구독(대여) 형태로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일시적 주거 형태로 여겨졌던 1인 가구가 주거 시장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을 위한 보다 다양하면서도 고급화된 주거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SK디앤디]

 

에피소드는 종합 부동산 기업 SK 디앤디가 공급하는 기업형 임대주택 브랜드다. 서울 서초와 강남, 신촌과 수유 지역에서 약 3000여 세대를 공급하고 있다. 국내 기업형 임대주택 중 최대 규모다. 일부 투룸 모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룸이나 복층 원룸, 1.5실 등 주로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족 이루기 전 임시 주거 옛말, 1인 주거의 진화  

최근 주거 시장에서 1인 가구가 새로운 소비자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3~4인 가구를 위한 아파트가 대규모로 공급되는 것과 달리 그동안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1인 가구의 주거는 독립했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기 전 일시적 상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가족을 이뤄야 하기에 주거에 크게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1인 가구의 62.8%는 계속해서 1인 가구로 남기를 원했다. 2020년 서울에 거주하는 만18세 이상 65세 이하 1인 가구 5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 결과다.

1인 가구의 규모도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539만8000가구였던 1인 가구는 2020년 664만3000명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9%에서 31.7%로 커졌다. 2인 가구(28%), 3인 가구(20.1%), 4인 가구 이상(20.2%)보다 비중이 크다. 또한 1인 가구의 절반은 미혼이며, 월세(41.2%) 비율이 전세(17.5%)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소규모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이 대부분이었던 1인 주거 시장이 다양화·고급화하고 있는 이유다. 국내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대안적 형태로 공급됐던 공유 주거(co-living), 셰어 하우스 등도 점차 기업형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엔 에피소드, 맹그로브 등 브랜드를 내세운 임대주택이 느는 추세다.


개인 공간과 편의 시설을 갖춘 공유 주택 브랜드가 느는 추세다. [사진 맹그로브 홈페이지]

 

몸만 들어가면 되네, 요즘 ‘월셋집’ 트렌드

이들의 특징은 단순히 공간 제공이 아니라 1인 가구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를 다양하게 공급한다는 데 있다. 현실적으로 1인 주거 공간은 13㎡(약 4평)에서 33㎡(약 10평) 내외의 작은 공간일 수밖에 없다. 기존 오피스텔이나 원룸이 이 작은 공간에 모든 생활 기능을 구겨 넣는 것과 달리, 공용 공간을 활용해 내 공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운동 공간, 대형 주방, 세탁 룸, 모임을 위한 라운지 공간, 개인 창고 등 작은 집에서 누리기 힘들거나 비용을 들여 외부에서 이용해야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 애완동물 전용 놀이터나 내부 산책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좁은 개인 공간의 면적을 상쇄할 수 있는 다양한 공용 시설을 구비한 것이 특징이다. 에피소드 서초의 펫 플레잉존. [사진 SK디앤디]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 개인 공간의 디자인 특화도 눈길을 끈다. 에피소드의 경우 기본 룸과 가구와 가전이 모두 구비된 ‘풀 퍼니시드 룸’으로 구성된다. 가전과 가구가 구비된 공간의 경우 거의 몸만 들어가 생활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다. 개인이 방을 꾸밀 때도 취향에 따라 이케아 등 가성비 가구부터 루이스폴센 조명 등 하이엔드 소품까지 구독(대여)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에피소드 신촌의 경우 가구 브랜드 무인양품과 협업해 입주민들이 가구를 월 단위로 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유지연 기자

 

 

1인 주거의 고급화, 하이엔드 오피스텔 붐

고소득 1인 가구가 많은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하이엔드 오피스텔 분양도 붐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분양한 하이엔드 오피스텔은 15개 단지 총 1962실에 달했다. ‘갤러리832’‘아티드’‘레이어청담’ 등 3.3㎡당 1억원 내외의 분양가를 책정한 고급 단지들의 공급도 이어졌다.

이들은 일반 주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설계와 인테리어, 고급 자재와 빌트인 가전, 수영장과 테라스를 갖추는 등 고급화에 초점을 맞춰 고소득 1인 가구를 겨냥한다. 특히 개인 공간의 면적을 넓히는 대신 내부 라운지 등의 주민들 교류 장소를 고급화하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사교(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예를 들어 입주민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회원제 클럽을 운영하거나, 클래식·오페라 등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입주민 전용 시설을 구비하는 식이다.

 

 

 

고소득 1인 가구를 위한 하이엔드 오피스텔 공급도 활발하다. [사진 갤러리832]

 

 

영국계 종합 부동산회사 나이트프랭크의 최유나 한국지사 대표는 “1인 고급 주거 시장은 앞으로도 크게 성장성이 있다”며 “기존 소형 평수에 국한되지 않고 1인 가구도 충분히 쾌적한 주거 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평수의 다양화와 고급 컨시어지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