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집만큼은 며느리에게"…유언장 대신 은행 찾은 이유는?
“강남집만큼은 지금까지 날 돌봐준 며느리한테 물려주고 싶어요. 딸이 자기 몫을 달라는데 어떡하나요.”
A은행 강남지점을 찾은 최순례(가명·90)씨는 3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내외와 본인 명의 서울 강남 소재 주택에서 살았다. 10년 전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며느리는 계속 함께 살면서 최씨의 삼시세끼뿐 아니라 병수발까지 도맡았다.
그러던 중 외국에서 살던 딸이 최근 사업자금을 마련해 달라고 해서 지방의 공장 부지를 매각해 현금으로 증여해 줬다. 딸은 나아가 최씨가 오래전부터 며느리에게 주겠다고 한 강남 주택마저 달라고 졸랐다. 최씨는 고민 끝에 오랫동안 거래하던 은행을 찾아 본인 사후 며느리에게 수십년간 함께 살던 집을 물려줄 수 있게 해 달라며 유언대용신탁을 문의했다.
고령화와 상속 분쟁 증가로 은행에 유언과 상속 집행을 맡기는 상품인 유언대용신탁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 사후 자식들에게 법적 분쟁 없이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고령자뿐 아니라 최근 급증한 1인 가구 및 재혼 가정, 비혼 가정의 이용도 늘고 있다.
2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올해 1분기 말 유언대용신탁 수탁 잔액을 집계한 결과 총 3조3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3월 말보다 1조원 늘어난 수치다.
유언대용신탁은 2010년 하나은행이 처음 출시했는데, 2020년 말까지만 해도 5대 은행의 수탁 규모는 8800억원에 그쳤다. 최근 3년여 만에 수탁 규모가 3배로 불어난 셈이다.
유언대용신탁은 별도의 유언장 없이 은행에 재산을 맡기면 고객(피상속인) 사후 고인의 뜻에 따라 미리 정해 놓은 수익자(상속인)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상품이다. 보험과 달리 상속인, 상속 비율과 재산·시기 등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다. 고령자들은 생전에 노후 대비를 위해 신탁회사(은행)에 맡긴 재산에 대해 종합 컨설팅을 받고 필요할 때는 생활비나 의료비용으로 꺼내 쓸 수도 있다. 상속인에게는 재산을 해마다 일정액을 나눠 주거나, 상속인이 특정 나이가 됐을 때 은행에서 소유권을 넘겨주는 등 다양한 방식의 신탁계약을 맺을 수 있다.
무엇보다 유언장에 비해 상속 분쟁 가능성이 작은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KB국민은행 지혜진 선임변호사는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에 비해 조건 설정이나 변경이 용이한 데다 수탁자(신탁관계에 따라 일정한 사무를 위임받은 주체)를 통해 유언 집행의 안정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며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유류분 제도의 위헌성을 확인한 만큼 향후 지정상속을 원하는 고객의 활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상속·증여재산 규모는 총 188조4214억원으로, 5년 전인 2017년(90조4496억원)과 비교하면 2.1배가량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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