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방중 기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가지입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당나라 때 시인인 왕지환(王之渙)의 '관작루에 올라'라는 한시가 쓰인 서예작품을 선물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인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는 중국 문학사에 유명한 구절일 뿐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천리를 바라보려고, 누각을 한층 더 오른다'라는 뜻입니다. 한-중 관계의 먼 장래를 위해서는 서로 한 차원 높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선물 가운데 단연 압권은 <중국철학사>의 저자 펑여우란(馮友蘭.1894∼1990)이 직접 쓴 서예작품 족자<사진>입니다. 박대통령이 중국의 명문 칭화대(淸華大)를 방문해 연설을 마치자 칭화대측은 그 자리에서 이 족자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칭화대 대학원장을 역임한 펑여우란은 20세기 최고의 중국 철학자로 그가 집필한 <중국철학사>는 20세기 세계 100대 명저에 꼽힐만큼 대작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뚱은 생전에 "
유물론은 나에게 물어보고 유심론은 펑여우란에게 물어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바로 펑여우란의 <중국철학사>입니다. 박대통령은 과거 어려웠던 시기에 이 책을 읽고 인생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족자는 펑여우란의 외손녀가 보관해 온 것으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이를 선물하면서 "박 대통령이 외할아버지의 책을 보신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선물하는 것"이라며 "만약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를 박 대통령께 드리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족자가 대단한 이유는 중국의 문화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청 격인 국가문물국에 등록돼 있는 '문물(文物)'로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전 문물국의 허가를 얻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이 작품은 문물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과정 때문에 우리 측에 사전에 통보가 없이 칭화대 연설 직후 전달된 '깜짝 선물'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재라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족자에 담긴 내용입니다. 펑여우란은 만 89살이던 1984년에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왕창령(王昌齡)의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을 붓글씨로 썼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寒雨連江夜入吳(한우연강야입오): 차가운 밤비 강물을 따라 오나라 땅으로 흐르는데.
平明送客楚山孤(평명송객초산고): 이른 아침 친구 떠나 보내니 초나라산이 외롭게 보이는구나.
洛陽親友如相問(낙양친우여상문): 낙양의 벗들이 내 소식을 묻거들랑.
一片氷心在玉壺(일편빙심재옥호): 한 조각 얼음같은 마음 옥 항아리에 담겨 있다 하게.
부용루는 중국 강소성 진강에 있는 누각입니다. 이 장소는 처음에 오나라 땅이었다가 나중에 초나라 땅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지역을 뜻합니다. 이 시는 왕창령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신점을 낙양으로 떠나 보내기 직전에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절창(絶唱)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족자를 받은 날은 공교롭게도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시안으로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이 시를 놓고 비유하자면 중국은 저자인 왕창령이고 그의 친구인 신점은 박근혜 대통령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일편빙심'(一片氷心)은 아주 맑고 깨끗한 마음을 뜻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으로 귀국한 뒤 사람들이 중국이 어떠했느냐?고 물으면 박대통령과 한국을 향한 중국의 마음은 한 조각 얼음처럼 순수했다"고 답해주기를 바라는 심정인 듯 합니다.
아무튼 펑여우란의 이 서예 족자는 중국이 엄청나게 고심한 끝에 선정한 '맞춤형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박대통령이 잘 아는 펑여우란과 관계 되는 것 중에서도 중국인의 마음을 담은 것을 고르다보니 국가 문화재를 아낌없이 내주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중국의 '박근혜 사랑'이 중국통인 박대통령에 대한 보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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