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서화

秋史의 난초그림

산야초 2016. 3. 10. 23:32

秋史의 난초그림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김정희, 조선 19C
액자, 종이에 먹(지본묵화)
54.9×30.6cm, 손창근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若有人强要爲口實, 又當以毘耶 無言謝之,… 曼香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은지 20년, 우연히 하늘의 본성을 그려냈도다.
문을 닫고 깊이 깊이 찾아 드니, 이 경지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일세.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마땅히 비야리성에 살던 유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절하겠다. … 만향

김정희의 대표작 불이선란도는 난초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라기보다는 서예적 필묵의 운용이 만들어낸 독특한 묵란도이다. 불이선란도는 그림보다 글씨의 비중이 더 많다. 제발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쓰여졌으며,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방식, 그림의주인이 바뀌게 된 사연을 알려준다. 특히 제발은 그 위치와 글자의 진행방향을 그림의 전체적 균형에 어긋나지 않게 안배하였는데, 이는 김정희의 뛰어난 공간 구성능력을 보여준다.
불교적 초월성이 느껴져서 이 긂의 제작시기를 노년작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학자들에 따라서는 강상시절과 관천시절로 의견이 나누어진다. 그러나 가로획과 세로획의 차이가 분면하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서체의 특징과 제발의 등장인물로 보아 과천시절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희의 난초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난맹첩(蘭盟帖)중 염화취실
조선 19C 미표구, 종이에 먹(紙本墨書)
22.9cm×27cm
澗松美術館 소장
此爲終幅也, 不作新法, 不作奇格. 所以염華就實, 居士寫贈茗薰
“이것은 끝 폭이다. 신법으로 그리지 않고 기이한 격식으로 그리지도 않았다. 꽃을 거두고 열매를 맺는 까닭이다. 거사가 명훈에게 그려주다.”
간송미술관 소장 ≪난맹첩≫은 상하2권에 각각 9폭과 6폭의 묵란화가 수록되어 있어 김정희난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첩의 난초 그림들은 난엽의 구성에 있어 기존의 법식을 무시한 채 강인한 필치의 단엽을 산일하게 베풀어 놓았다. 난엽은 누르고 떼기를 서너번 반복하여 굵고 얇음을 조절하였고 그가 강조하던 三轉의 법을 이용하여 난엽 형태에 변화를 주고 운율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난맹첩은 김정희가 추구했던 서화 일치의 경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이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난맹첩≫은 누구를 위해 그려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많았다. 상권의 마지막 폭에 “거사가 명훈에게 그려주다(居士寫贈茗薰)”라고 적혀 있으나, ‘명훈명훈’이 어떤 인물인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명훈’이라는 이름과 정황을 보아 기녀에게 그려준 것으로 추측되어 왔다. 그러나 <김정희가 유명훈에게 보낸 편지>모음에서 명훈이 김정희의 전문 장황사인 劉命勳의 字임이 새롭게 밝혀졌다.

示佑蘭圖
(예술의 전당 전시)
紙本水墨 22.8×85.0cm, 신효영 소장
寫蘭亦當 自不欺心 始一葉一點辨 內省不? 可以示人 十目所見 十手所指 其嚴乎 雖此小藝 必自誠意正心中來 始得爲下手 宗旨書示佑兒 … 병題
김정희가 아들 상우(商佑)에게 준 작품이다. 『論語』와 『大學』을 인용하여 난초를 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心法을 啓示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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