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는 영국 시인 Walter Scott의 서사시 'Lady on the Lake' 중 '엘렌의 노래'에 곡을 붙인 것으로 6번째 곡에 해당된다. 소녀 엘렌이 호반의 바위 위에서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성모상에게 비는 내용으로 그 당시에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였던 곡이다. 이 곡은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빌 헬미가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해 더욱 유명해졌다. 마리아 (Maria) :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가톨릭·동방교회 등에서는 성모(聖母) 또는 성모 마리아라고 존칭한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갈릴리 지방 나자렛 마을에 살았고, 목수 요셉과 혼약하였으나 천사의 계시로 처녀잉태하였다. 출산이 임박하여 헤로데왕의 호적 일제조사 명령이 내려 베들레헴으로 갔으나 숙소를 잡을 수 없어 교외의 동굴 안에 있는 마구간에 들었다가 거기서 예수를 낳았다. 그런데 헤로데가 베들레헴에 장차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이 영아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화난을 피해 일단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후에 나자렛으로 돌아와 그리스도가 공(公)생활을 시작하는 30세 무렵까지 그 곳에서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처형되자 그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현재 가톨릭의 교의(敎義)에 의하면 마리아는 죽은 후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것을 ‘성모승천(聖母昇天)’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信心)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盛)하여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숭배되었고, 은총의 중개자로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마리아를 기리는 축일도 많은데, 주의 봉헌축일(2월 2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12월 8일)가 그 주된 것이다. 예로부터 마리아는 회화 ·조각 ·음악 등의 소재가 되어, 화제(畵題)로서는 《성모 영보(聖母領報)》 《성모자(聖母子)》 《피에타》 등이 알려져 있으며, 걸작이라고 할만한 작품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음악에서는 아르카텔트나 구노의 가곡 《아베 마리아》가 유명하다. 아베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성모 찬가로, 고금의 작곡가의 손에 의해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고 루가 복음의 전반부와 15세기 중반 성 베르나르도의 시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아베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주요 기도문 중 GLORIA(대영광송), CREDO(사도신경) 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천사의 축복, 성모 영보 때의 마리아에 대한 찬미와 사촌 엘리사벳의 축하 노래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기도문을 아름다운 선율로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바흐의 평균율 제1권 제1곡 C장조 이 프렐류드는 구노가 「아베마리아」의 선율을 배치하여 널리 알려지고 있다. C장조로서의 분산화음에 의한 밝은 울림을 주체로 한 서법을 취하고 있는데, 그 뼈대는 어디가 지나 5성체의 화음 연결에 두어지고 있다. 이 푸가는 4성. 우선 알토로 주제가 제시되고, 2마디째의 3박째 후반에서 소프라노로 응답되는데, 푸가주제 그 자체는 2마디 3박짜의 E음 까지이다. 극히 쉬운 주제이지만 개성적인 명확성을 가지고 있다. 주제와 응답은 7마디째의 처음에서 끝나는데, 이 푸가에서는 4성의 경우의 통상 형태 (주제-응답-주제-응답)를 취하지 않고, 주제-응답-응답-주제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평균율" 중의 푸가에서는 단 하나의 예이다.그 위에 이 푸가에서는 거의 모든 마디에 주제가 배치되어 있어서 간주부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고, 주제와 주제 사이의 근소한 박수(拍數)의 사이에만 경과적인 부분이 있는 데 불과하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prelude Glenn Gould, Piano '아베 마리아'(Ave Maria)라는 말은 원래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탄생 예고를 위하여 나자렛의 마리아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루가 1, 28)고 인사했던 말의 라틴어 표기이다. 그러나 후일의 교회가 루가의 복음서 1장 28절과 2장 42절에 청원기도를 추가하여 하나의 기도문을 완성하고, 머릿 글자를 따서 '아베 마리아'라는 기도문 제목을 붙임으로써 '성모송'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아베 마리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모송을 가리키는 라틴어 '아베 마리아'는 우리 가톨릭 신도들의 기도 속에만 갇혀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계에서는 성모 마리아님을 칭송하는 가곡을 통털어서 '아베 마리아'라고 부르고, 대개가 성모송의 라틴어 원문을 가사로 하여 종교적 열정을 노래하는 장중한 곡들이다. 16세기의 아르카델트가 자신의 세속적인 곡에 성모송의 가사를 들어 맞춘 곡이 '아베 마리아'의 효시가 된 이래, 퍼시칸, 샤를르 구노, 쥬세뻬 베르디, 그리고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작곡한 곡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깊은 감명을 준다. 대개 라틴어로 부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교회 밖의 무수한 사람들도 절로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성모님께 기도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귀에 익었고 감동을 더 해주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독창곡은 그 가사가 '성모송"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시인 월터 스코트(1771 - 1832)의 시 '호상의 미인'(The Lady of the Lake)인 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스코트의 이 시는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시적 아름다움과 감각이 결코 수그러들지 않은 당대 최고의 서정시로 알려져 애송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의 슈토르크가 번역하여 독일인들도 너나 할 것없이 애송했다고 하느데, 슈베르트가 이 독일어 번역시에 아름다운 곡을 붙여 그의 '아베 마리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슈베르트는,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서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였고, 또 일생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내며 활동하였지만 베토벤과는 사뭇 다른 음악의 길을 걷고 있었다. 베토벤은 음악을 계시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선민으로 자처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독일 유식계급의 눈에 비친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 초기 활동의 지도이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와 같은 선민의식을 갖지 않고, 스스로 즐기고 또한 타인도 즐겁게 해 주려고 작곡하였다. 여기에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이 있 다고 보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음악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열정이 극치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 마리아! 자비로우신 동정녀여,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쓸쓸하고 거친 이 바위동굴에서 나의 뜨거운 기도를 당신께 드립니다. 인류가 여전히 비참한데도 우리는 아침까지 편안히 잠을 잡니다. 오, 동정녀여, 어린 소녀의 슬픔을 보소서. 오, 어머니여, 간청하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숭고하신 동정녀여! 땅과 대기의 악마들은 당신의 자비로운 눈앞에서 도망을 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의 미소와 장미의 향기가 이 축축한 바위동굴로 날아들어옵니다. 오, 어머니여, 당신 아기의 기도를 들으소서. 오, 동정녀여, 어린 소녀의 울음을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는 1826년 7월 25일,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호상의 미인"을 작곡한 저의 새 곡은 성공했습니다. 제가 동정 성모의 찬미가에 표현한 종교적 감정이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고 놀라게 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감동하고 장엄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무리하게 종교적 감정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저 자신보다 강한 그 무엇인가에 의해 느낀 감정에 따라 신성한 음악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정말로 순수한 종교적 감정일 것입니다."슈베르트의 편지에 의하면, 이 성스러운 노래는 교회에서 바치는 전례용과 달라서 아무런 종교적 장식이 없고, 단순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쇼팽의 Nocturn(저녁 기도) 이 전례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전례용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그러나 그 신앙적 열정과 정신은 전례적인 성가 못지 않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줄 안다. 한 마디 부언하고 싶은 것은 슈베르트 외의 다른 '아베 마리아'가사는 모두가 성모송이란 사실입니다. 따라서 작곡가에 따라 음악적 분위기가 다를 뿐이다. 슈베르트의 것과 쌍벽을 이루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성모송을 토대로 전례용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곡의 취향이 딴판이고 안톤 브루크너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자가 '떼데움'을 자곡한 성직자란 선입관 때문인지 지나치게 무겁다는 평을 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