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다' 한 대접 들이킵니다… 물회
입력 : 2014.06.12 04:00
뜨거운 음식은 생각조차 싫은 여름, 뭘 먹으면 좋을까? 당장 냉면이 떠오르지만 금세 배가 꺼지고 헛헛할 것 같다. 게다가 엊그제 이미 먹었다. 그렇다면 물회다. 왜 있잖은가, 여름휴가철 동해안이나 남해안에 갔을 때 먹던, 매콤새콤달콤한 육수에 잘게 썬 생선살과 채소를 넣고 후루룩 시원하게 마시듯 먹던 음식 말이다.
요즘은 과일즙에 고추장과 각종 양념을 더해 숙성시킨 육수를 사용하는 물회가 대부분이지만,
옛날 어부들이나 어시장 일꾼들이 먹던 물회는 잘게 썬 생선회와 각종 채소에 고추장을 넣고 물을 타서 훌훌 마시는 음식이었다.
물회의 시작은 미약했으리라. 실은 너무 미약해서 그 시작을 아는 이도 없다. 추측해보면 과거 먹을 것 귀하던 시절, 바닷가 어부와 어시장 사람들이 팔고 남은 생선을 잘게 썰어서 푸성귀와 함께 고추장에 버무려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거기에 밥이 있으면 밥을, 때로 국수가 있으면 국수를 말아서 먹으면 더 좋았다. 이게 요새 말하는 '회덮밥'과 '회국수'였다. 여름이라 입맛 없고 입도 깔깔해 잘 넘어가지 않을 땐 여기다 물을 부어 술술 마셨다. 물회의 탄생이라고 추정되는 과정이다.
대략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물회는 이랬다. 서울 충무로 '영덕회식당'에서 물회밥을 시키면 커다란 사발에 잘게 썬 물가자미(미주가리)·청어회, 각종 채소, 얼음 네댓 덩어리와 함께 고추장 한 숟가락이 담겨 나온다. 여기에 물병에 담긴 찬물을 반 컵 정도 붓고 재료들을 잘 푼 다음 밥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 올해로 26년째 이 식당을 하고 있는 신옥자씨는 "옛날 우리 고향(영덕 강구항)에서 먹던 방식 그대로"라고 말했다.
요즘 흔히 식당에서 팔고 있는 물회는 이런 모양새가 아니다. 고추장과 각종 양념을 미리 풀어넣은, 살얼음이 동동 뜬 발그스름한 육수에 생선회와 채소가 잠겨 나오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음식 전문가들은 이 현대적 물회의 탄생지로 경북에 있는 '물회와 과메기의 도시' 포항을 지목한다. 서울 논현동 '동해별관'은 포항시에서 지정한 '포항물회 전문점' 서울 1호다. 이 식당 대표 김도형씨는 "사과·배·파인애플 등 과일즙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 각종 양념을 넣고 숙성시켜 만든 육수가 환여횟집을 포함, 포항의 대표적 물횟집 몇 군데에서 10~15년쯤 전 개발됐다"면서 "이 새로운 스타일의 물회가 포항을 순식간에 평정했고 이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제는 물회의 '대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포항물회 전문점' 서울 1호점인 논현동 '동해별관'의 물회 만드는 과정. 생선회를 떠서(왼쪽) 각종 채소를 깐 사발에 담고(가운데) 살얼음 낀 차갑고 매콤새콤달콤한 육수를 부어 먹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물회를 먹을까? 서울의 이름난 물회 맛집들을 돌며 두루 맛봤고, 이 중 괜찮은 10곳을 가렸다. 포항·제주·속초·장흥 등 전국적으로 물회로 이름난 지역별로 특징은 무엇이며 어떻게 서로 차이가 나는지도 알아봤다.
그래픽=조선닷컴 미디어디자인팀
영덕회식당
고추장에 맹물을 붓고 풀어서 먹는 옛날 스타일의 물회다. 식당에 쌓인 철제 고추장통에는 대기업 브랜드가 박혀 있는데, 주인은 "시골에 통이 없어서 그걸 쓴 건데 내용물은 고향(경북 영덕 강구) 친지분들이 메주로 직접 담근 재래식 고추장"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맛을 보니 주인 말이 맞는 것 같다. 대기업에서 생산한 고추장처럼 가볍고 들뜨는 매운맛이 아니라 깊고 구수하다. 물횟집들이 대개 가자미나 광어 따위 흰살생선만을 사용하는데, 이 집에서는 물가자미(미주구리)와 청어를 섞어 쓴다. 덕분에 복합적이고 깊은맛이 난다. 생선회를 가늘게 썰어서 양념장과 잘 어우러진다. 양념장도 너무 맵거나 달거나 새?僿舊?않고 균형이 잘 잡혔다. 점심 직전 만들었는지 어묵볶음, 부침개, 숙주나물 등 물회밥에 딸려 나오는 반찬들이 따뜻하면서 신선하다. 물회밥(8000원)과 회덮밥(5000원)은 점심에만 판다. 저녁에 내는 안주물회(2만원)는 맛이나 담음새는 물회밥과 같은데 양만 더 많다. 막회(2만2000·2만5000원)도 좋다. 중구 충무로4가 56-3 (02)2267-0942
동해별관
포항시 지정 포항물회 전문점 서울 1호점이지만 물회 전문점이라기보다는 고급 일식당 내지는 횟집이라고 해야 어울릴 고급스러운 식당이다. 매일 올라오는 광어를 비싼 횟집에서 하듯 큼직하고 두툼하게 썰어서 커다란 그릇에 각종 채소와 함께 넉넉하게 담는다. 여기에 과일즙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을 넣고 숙성시킨 육수를 더해 먹는다. 점심 물회정식 1만6500·2만2000원·점심정식 2만2000원, 저녁 동해정식 5만5000원·동해진미 7만7000원. 강남구 논현동 198-18 (02)3445-7979
고래불
놋그릇·놋수저에 도자기 반찬 그릇이 고급스럽고 정갈하다. 돌솥에 지은 조밥만 먹어도 만족스럽다. 물회는 성게·전복·해산물·제철 생선 등이 들어간 명품모둠물회(2만9500원), 전복모둠물회(2만4200원), 성게모둠물회(5월~10월·2만4200원), 식사물회(1만9800원) 네 가지가 있다. 식사물회는 제철 생선을 쓰는데 이날은 광어·도미·농어였다. 고급 횟집처럼 두툼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나 동해별관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론 약간 싱겁다. 집에서 만든 듯한 깊고 진한 고추장 양념이 느껴졌는데, 원래는 집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을 쓰다가 얼마 전부터 '죽장연'이란 브랜드의 고급 고추장을 쓰고 있다고 한다. 강남구 역삼동 828-53 (02)556-3677
죽변항
'올드 & 뉴'랄까, 고추장과 양념 육수가 한 그릇에 담겨 나온다. 점심에는 물회밥(1만2000원)에 밥 대신 소면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저녁에는 물회안주(3만5000원)를 주문하면 된다. 매일 반찬이 바뀌는 '오늘의 점심'이 가격(6000원) 대비 맛과 양이 실하기로 이름 높다. 자연산막회(2만5000·3만5000원), 문어숙회(2만5000·3만5000원) 등 강원도 동해안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서울에서 이만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집도 드물다. 성동구 성수1가 2동 13-157 (02)465-7487
부부횟집
강원 고성군 유명 '부부횟집'과 같은 집이다. 강원도 본점과 서울 송파·장안·상계, 경기도 일산 등 5개 지점이 있다. 양념·재료 모두 본점과 같다고. 물회 1인분이 1만5000원인데 2인분 이상 시켜야 한다. 2인분이 셋이 먹기도 충분할 정도로 푸짐하다. 소면 6덩어리(2인분 기준)가 딸려 나온다. 양념장에서 약간 자극적이고 강한 시큼털털한 맛이 나는 건 단점. 마늘 덩어리도 씹힌다. 이날 재료는 가자미·방어·숭어·오징어 등이었고 해삼도 조금 들어 있었다. 송파구 송파동 59-13 (02)415-8881
영덕물회
보통 1만원, 특 1만3000원. 차이는 생선의 양. 다른 곳보다 쌌지만 생선 양도 적었다. 생선보다는 채소 맛이 더 기억나는 편. 무채가 매우 많았는데 시원한 끝 맛이 해장용으로 좋을 듯했다. 그 위에 오이채, 그 위에 숭어 등으로 장식했다. 이날 재료로는 숭어·농어·가자미 등이었는데 두툼하진 않았지만 식감은 나쁘지 않았다. 가자미는 영덕에서 공수하고 나머지는 노량진에서 새벽마다 가져온다. 서대문구 충정로2가 23-1 (02)752-0584
강구물회
전복(2만원), 도다리(1만5000원), 광어(1만5000원), 영덕물회(가자미·1만원) 등 네 가지 물회가 있다. 한 가지 생선만 쓴다. 주인은 "각 생선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생선은 영덕에서 올라온다. 찬밥을 줬는데, 주인 말로는 물회를 반쯤 먹은 뒤 밥을 말아 먹으면 톡톡 튀는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그 정도의 환상적인 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고슬함이 물회랑 잘 어울렸다. 물회보다는 곰치나 과메기 등을 더 추천하는 이가 많았다. 섬진강에서 재료를 공수한다는 재첩국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여의도동 35-5 여의도종합상가 4층 (02)785-0831
태평양참치
독특하게 참치로 물회를 만든다. 참치살 중에서도 뱃살 껍질 등 기름진 부위를 주로 쓴다. 의외로 느끼하지 않다. 차가운 육수에 기름진 참치살이 '긴장'하면서 씹으면 오독오독할 정도로 단단한데, 소고기나 돼지고기 따위 '육고기'와 달리 생선의 지방은 녹는 점이 낮아서인지 씹으면 부드럽게 녹으면서 고소한 맛이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국물이 너무 매워서 아쉬웠다. 참치물회 2만·3만원, 참치정식 1만·2만원. 서울 노원구 중계동 본동 366-14 (02)930-3434
속초항 뱃머리
주인 송수현(62)씨는 고향인 강원도 속초에서 20여년간 수협 중매인으로 일했다. 속초에서 10년 횟집을 하다가 4년 전 서울로 상경했다. 매일 속초에서 올라오는 생선을 사용한다. 물회에는 광어를 주로 쓴다. 커다란 유리 볼에 가늘게 썬 생선회를 담고 그 위에 각종 채소를 산더미처럼 올린다. 매운맛과 단맛, 신맛이 둥그렇다기보다는 날카롭게 삐죽 튀어나온 느낌이다. 중자(3만원)면 성인 남성 2~3명이 술안주로 먹기 충분하다. 소면 2덩어리가 딸려 나온다. 점심 식사용으로는 1만2000원에 물회를 낸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잡히는 장치를 매콤짭짤하게 조린 '장치조림'(3만·4만·5만원)이 별미다. 서초구 서초동 1572-9 (02)3471-5431
한라의 집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제주 음식점이다. 자리돔 철이 되면 자리물회(점심 1만원, 저녁 1만2000원)를 낸다. 이 밖에 갈치회·국, 고등어회, 소라회, 성게국 등 제주 전통 음식을 적당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모든 재료는 매일 비행기로 공수한다. 중구 당주동 20-2 (02)737-7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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