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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운대

산야초 2016. 5. 14. 20:56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운대

  • 부산=글·최보윤 기자   
  • 사진·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 입력 : 2014.04.10 04:00

      

    "근래 들어 해운대만큼 매력적인 곳은 많이 보지 못했어요. 항구에 늘어놓은 생선 말린 걸 보면 꼭 내 어린 시절 보낸 시골집이 생각나면서도 하늘까지 솟은 현대적인 마천루에 입이 떡 벌어지기도 하죠."

    최근까지 파크 하얏트 부산 총주방장을 지낸 스테파노 디 살보(42)는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웃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항구도시인 제노바에서 15세 때부터 요리를 배웠다는 그는 "1년 반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다 부산은 더 진취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런던이 지루하다면 인생이 지루하다'고들 하지만 내겐 부산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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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운대

    지금껏 부산을 떠올리면 영화 속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부산 싸나이' 같은 느낌이 강했다. 부산 출신 시인 강정 말대로 '거칠고 투박하고 타인에 대한 애정과 간섭을 혼동하는 다혈질의 남자들이 부각되는 도시' 같았다.


    (위부터) 동백섬 선착장에 비친 해운대 마린 시티 야경. /
    찻집 '비비비당'서 본 청사포

    하지만 다시 가본 부산, 특히 해운대 일대는 이보다 훨씬 오묘했다. 남성과 여성이 적당히 결합한 듯한 형세였다.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2009년 기네스북에 오른 신세계 센텀시티를 비롯해 80층의 초고층의 빌딩 숲이 늘어진 마린시티 등은 마치 어깨 덜미에 솟은 승모근을 으쓱하며 위세를 자랑하는 듯 거대하게 느껴졌고, 굽이굽이 언덕길이 매력적인 달맞이 고개는 마치 교태를 부리는 여인네의 몸체처럼 풍성하고 여유로웠다.


    트렌드에선 서울을 앞선다는 평가도 있다. 신선한 식재료로 신개념 수퍼마켓이란 평가를 들은 신세계 SSG 푸드마켓은 부산에서 먼저 생겼고, 해운대 팔레드 시즈 앞 식당인 스페인클럽·문타로·게코스 가든은 이태원·청담 본점의 명성을 뛰어넘는 맛으로 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달맞이 고개를 걷다 만난 포르투갈 출신 주얼리 디자이너 산드라 브리기도 역시 '해운대 예찬론자'다. 남편과 함께 해운대에 정착한 그녀는 얼마 전 노르웨이, 브라질, 태국 등 각국 주재원 가족들과 동백섬 등을 걷는 '트레킹 계'도 들었다. 최근 부산 거주 외국인이 5만명을 돌파했고, 특히 해운대에 사는 주재원만 5000여명 이상이라고 하니 이런 '동네 모임'이 있는 것도 더는 낯설지 않다. "포르투갈 출신이라고 하면 휴양지인 '카스카이스'나 인근 스페인의 '이비자'가 최고 아니냐고들 하는데 해운대도 못지않다고 생각해요. 해운대 곳곳은 샌프란시스코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고 풍요롭죠. 나파밸리에 온 듯한 기분도 들어요."


    그랬다! 해운대는 묘하게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닮아 있었다. 광안대교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나 베이브리지와 비슷했다. 달맞이 고개를 둘러보다 보니 금문교 건너 예술가들이 모인 항구도시 소살리토가 연상됐다. 요트와 부호들의 별장, 고층빌딩을 품고 있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소살리토는 청사포 항구를 머금고 있는 달맞이 고개와 데칼코마니 같다. 소살리토는 '작은 버드나무'라는 뜻이라는 데 달맞이 고개는 나무 천지이니, 도시에 '도플갱어'가 있다면 바로 이 둘이 그렇지 않을까.

    바다야, 널 보니 밥도 더 맛있다

    부산에서 마침 8일부터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을 시작했다. 해운대 시립미술관에서 박수근·천경자 등의 작품을 즐긴 뒤 해운대의 풍광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보석' 같은 곳을 안내한다. 부산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끌어올린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과 소설가인 함정임 동아대 교수, 스테파노 디 살보 전(前) 파크 하얏트부산 총주방장,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 노상덕 총지배인,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에게 의견을 들었다.


    그래픽 = 김충민 기자

     

    메르씨엘

    부산행을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이다. 재계에서 '미식가'로 소문난 이우현 OCI 사장을 비롯해 '맛'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는 이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칭찬했기 때문이다. 소설가인 함정임 동아대 교수는 "정통 프랑스 퀴진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며 "맨해튼 풍의 현대적이고 구조적인 건축미가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평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메르씨엘.
    바닷바람과 테라스에서 느끼는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달맞이 고개에 있는 메르씨엘은 'Mer(바다)'와 'Ciel'(하늘)의 합성어답게 해운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보게 디자인됐다. 프랑스 정찬을 하는 1층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테이블 배치에 통유리로 바다와 하늘을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해 바닷가 휴양지에 온 듯 우아했다. 프랑스 리모주산 식기도 눈에 띈다.


    앙트레로 시킨 푸아그라 테린은 녹아내리는 듯한 질감, 진득한 뒷맛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고, 메인 요리 중 하나였던 오리다리 콩피는 풍부한 향미가 입안에서 녹아들었다. 함께 자리한 파크 하얏트 부산 총주방장 출신의 스테파노 디 살보는 메인으로 농어구이를 시켰는데, 파삭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힌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울 청담동이나 호텔급의 가격(점심 코스 5만5000원)이 부담된다면 그 절반 가격으로 피자나 파스타, 각종 주류를 즐길 수 있는 2층의 브라스리도 준비돼 있다. 브라스리는 밤 12시까지 운영되는데, 바닷바람을 즐기며 테라스에서 느끼는 야경은 그야말로 '보석' 같다. (051)747-9845

     

    비비비당

    (위부터) 비비비당에서 내려다본 풍경. / 우려내서 먹는 전통 숙성차.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맞이 고개 언덕을 넘고 넘어 맞이한 전통 찻집이다. 달맞이 고개에서 제일 뷰(view)가 좋기로 소문났던 '해 뜨는 집'을 리모델링해 2012년 선보였다. 건물 꼭대기인 4층. 마치 대청마루에 온 듯한 느낌의 고풍스러운 내부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외국인들이 해운대 최고 명소로 꼽는 곳 중 하나다.


    '비비비당(非非非堂)'이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류효향 대표는 "불교에서 추구하는 탐욕도 형상도 없는 세계인 무색계, 그중에서도 최상인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을 추구하며 지었다"고 미소를 짓는다.

    전통차의 매력에 푹 빠져 이곳을 열었다는 류 대표는 지리산 해발 700m 깊은 산에서 나는 백초차를 구하기 위해 직접 산을 다니고 절을 다니며 숙성된 한국차를 구했다. 어혈을 풀고 부기를 가라앉힌다는 으름덩굴차(1만원), 동의보감에 '피부를 충실하게 하고 몸 푼 뒤 병을 낫게 한??고 적힌 겨우살이차(8000원) 등 시중에서 보기 어려운 차가 상당하다.


    청사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당'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날이 좋으면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동양학자 조용헌씨가 이곳에 들렀다 '땅의 기운이 대단한 명당'이라며 하룻밤 잠을 청하기도 했다. (051)746-0705

    코티지

    달맞이 고개에 들어서면 '문탠로드'라고 적힌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청사포와 미포 사이에 있는 와우산에 만들어진 2.2㎞ 길로, 달빛을 받으며 명상할 수 있는 산책길이다. 벚나무 호위를 받으며 숲길을 헤치다 보면 상념은 지나온 길에 버려둔 것 같다.


    기장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코티지 내부. 시골의 한적한 집이란 뜻이다.

    한 시간여 길 밟기를 끝낸 뒤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해운대를 지나 기장군에 '한국의 나파밸리'로 불리는 곳이 있다는 '첩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각종 한정식집을 지나 숲길을 달리다 보니 코티지(cottage)란 대형 입간판이 눈에 띈다. 시골에 한적한 집이란 이름답게 시골구석에 기장 앞바다를 마치 자기 앞마당처럼 끼고 레스토랑 하나가 서있다.


    이 식당은 인근 한정식집 '바우덕이' 등을 운영하며 음식점에 잔뼈가 굵은 자매가 7년에 걸친 프로젝트로 완성한 곳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는데 맛집 마니아들에겐 벌써 입소문이 났다. 바다가 보이는 좌석은 예약이 필수다. 맛보다는 풍경이라는 평가였지만 최근 서울 두가헌 출신 매니저와 셰프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맛이 한층 나아졌다는 평가다.


    파래 딸리아 뗄레는 파래맛이 강하게 느껴지면서도 비리지 않고 신선했다. 가리비 날개를 다졌는데 쓴맛 없이 파래와 무척 잘 어울렸다. 저녁 코스(7만8000원)에 포함된 메뉴. 기장 곰장어 리조또(2만3000원)도 입맛을 돋웠다. 부산 하면 짚불 곰장어가 유명해, 특유의 불 맛을 내려고 토치로 그을렸다. (051)722-5585

    송정집

    하늘색 외관이 마치 카페 같은 이곳은 '자가도정'에 '자가제분'을 내세운 고급 '분식집'. 선보인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대기표를 받고 입장해야 할 정도다. 입구 오른편엔 제면실이 있어 면을 반죽하고 뽑아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송정집은 면을 직접 뽑은 물국수와 소바가 유명하다.
    4월 중순까지는 메뉴판 가격에서 30% 할인해준다.

    부산에서 외식업 경력 40년의 장석관 대표가 2년간 준비해 열었다. "분식이라는 게예, 대부분 주방이 열악하잖아예. 같은 값이면 좀 더 품격 있는 분식을 보여 드리고 싶었지요."


    첨가물 없이 멸치 육수로 국물을 뽑은 물국수(4000원)는 깨끗한 뒷맛이 일품이다. 쌀국수 면발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탱글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4000원짜리 찐만두. 딘타이펑에서 먹던 샤오룽바오가 연상될 정도로 육즙이 살아있었다. 진주식 비빔밥을 선보이는 비빔밥(6500원)과 청도 할매김밥(양념 단무지와 잔멸치 등을 볶음 고추장에 비벼 고명으로 쓴 김밥)식 송정김밥(2000원)도 이 집의 대표 메뉴. "안동에서 맛 좋기로 소문난 영호진미를 계약재배해서 받아요. 국수 먹으면 밥도 서비스로 주는데, 지은 지 한 시간 반 넘은 건 우리가 먹든가 누룽지로 해먹지 손님한테는 갓 지은 밥만 드리는 게 원칙입니다." 4월 중순까지는 '가오픈' 기간이라 메뉴판 가격에서 30% 할인해준다. (051)704-0577.

    시립미술관 근처에 있는 면옥향천 역시 '자가제면'으로 소문난 집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요즘 부산의 대세로 꼽히는 소바집"이라고 평했다. (051)747-4601

    영변횟집

    소설가 김영하와 함정임 동아대 교수가 송정 앞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접시를 비우는 곳이라는 영변횟집(051-703-7590). 40년 전통의 세꼬시(뼈째 썬 회) 전문(1인분 2만3000원). 보통 세꼬시 하면 꼬슬꼬슬한 질감 때문에 꺼리는 이들도 있지만, 이 집의 세꼬시는 푸슬푸슬하고 보들보들하니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이?? 함 교수는 이와 함께 근방에 있는 완도횟집(051-703-8989)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회로 '배 터지게' 채우고 싶을 때 향하는 곳이다.


    영변횟집 세꼬시

    역시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으로 개미(gae-mi)를 빼놓을 수 없다. 해운대 마린시티에 있고 탤런트 유아인이 부산 영화제 기간 동안 매일 이곳에서 밥을 먹어 유명해졌다. 한식 재료를 접목시킨 퓨전 레스토랑으로 치즈먹물김치전(1만5000원), 한우 차돌박이 파스타(2만2000원) 등이 유명하다. (051)746-6857


    '물 좋기'로 소문난 데다 경치 보며 술 한잔 하는 데는 25년 전통의 '오킴스'를 따라잡기 어려워 보인다. 부산 웨스틴조선 호텔에 있는 국내 최초의 아이리시 펍으로 거의 매일 손님 절반 이상이 외국인으로 채워져 가만히 있어도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051)749-7439

    여기는 꼭 가보자, 맛집 옆 그 미술관

    김동호 위원장은 간결하게 코스를 정리해줬다. "당일치기 코스로 부산에 오면 시립미술관 전시회와 영화의 전당을 꼭 둘러보시고, 1박 2일로 온다면 시립미술관과 영화의 전당을 본 뒤 달맞이 갤러리 투어를 해보세요. 부산이 이렇게 문화적 깊이가 있는 곳이구나, 부산이 왜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설계회사 쿱 힘멜블라우가 디자인한 영화의 전당은 비대칭으로 물결치듯 굽이치는 지붕이 그 자체로 그림을 만드는 곳이다. 12만개 LED 조명이 부산의 야경을 새로 그린다. 지난해부터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등으로 범위를 넓혀 복합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영화 이론이나 시나리오 작법, 촬영 등을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도 있다. (051)780-6000


    조현화랑

    달맞이 고개는 '미술관 투어'로도 인기 있는 코스다. 카페와 갤러리가 줄지어 있어 '동양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불린다. 김동호 위원장의 추천을 비롯해 복수의 표를 받은 곳은 '조현화랑'. 갤러리 카페 '반'과 이웃하는 곳으로 건물을 감싸 안은 담쟁이덩굴마저 예술적이다. 독특한 '자화상 시리즈'로 독일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이소연 작가의 개인전이 5월 11일까지 열린다. (051)747-8853


    김성종 추리문학관

    역시 달맞이 고개에 있는 '김성종 추리문학관' 역시 추천 코스에 들었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여명의 눈동자'로 잘 알려진 김성종 작가가 사재를 털어 1992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 문학 전문 도서관이다. 런던에 가면 셜록 홈스 박물관에 들르고는 하는데, 장서 4만7600여권을 보유한 추리 문학관도 뒤지지 않아 보인다. 입장료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051)743-0480


    바나나 롱 갤러리

    부산에서 가장 '귀여운' 갤러리로 꼽히는 '바나나 롱 갤러리'는 달맞이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노란 오두막 미술 전시장이다. 색상과 아기자기함 때문에 부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한 번쯤은 '인증 샷'을 찍고 가는 곳으로 꼽힌다. 입장료 5000원. (051)741-5106



    1. 이기대 해안길. 절벽과 해송(海松)이 동해바다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2. 해운대 문탠로드 산책길.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3.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의 하나인 해동 용궁사.
    4. 해운대 동백섬. 오랜 세월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5. 태종대 자갈마당 앞에 벚나무가 도열해있어 봄이면 꽃잎이 눈처럼 날린다.
    6. 해운대 달맞이길. 부산팔경(釜山八景)의 하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