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자작자작한 육수에 살살 익혀서… 좋다, 참 좋다

산야초 2016. 6. 20. 23:21

[Why] 자작자작한 육수에 살살 익혀서… 좋다, 참 좋다

  •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  

    입력 : 2016.04.30 03:00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서울 주교동 '보건옥'

    "두 유 라이크 불고기?"

    외국인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늘 한결같다. "나이스 투 미츄. 아임 파인, 땡큐"가 끝나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사느냐 죽느냐'가 아닌 '김치냐 불고기냐'의 순간이 온다(그다음은 보통 소주냐 막걸리냐다). 안부를 묻고 바로 식생활 탐구로 들어가는 신기한 대화의 맥락은 사실 불고기를 논하기 위한 섬세한 플롯이다. 일 년에 약 200억원을 버는 추신수 선수는 무료로 뉴욕타임스 불고기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최악의 광고로 혹평받아도 별 탈 없을 그 광고는 한국인들의 불고기 사랑을 방증한다. 그 사랑의 시작은 저 옛날부터다.

    고기를 재워 직화로 굽는 풍습은 고대로부터 한반도 대대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시대가 되면서 이름과 음식의 형태가 애매해진다. 일단 너비아니라고 하던 그 이름이 불고기로 바뀌었다. 불고기를 일본어로 번역하면 야키니쿠가 되는 것이 첫째 문제이고 50년대 이후 등장한 '전골식 서울 불고기'가 간장과 설탕으로 달달하게 간을 한 일본 스키야키와 매우 흡사한 것이 둘째 문제다. 이름이야 전문가에게 맡겨두더라도 음식의 톤(tone)과 관련 문헌을 보면 흔히 먹는 서울 불고기는 스키야키와 공진화(共進化)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맛만 있다면 그게 큰 문제인가? 이쯤 되면 나는 옛날 이방원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何如歌)를 읊으며 서울 주교동 '보건옥'으로 간다.

    불고기
    39년 됐다는 이 노포(老鋪)가 있는 을지로4가를 둘러보면 불고기 잘하는 집이 꽤 있다. 우선 점심시간마다 1억원 넘는 외제차들이 줄 서서 들어가는 우래옥이 있다. 1인분에 150g, 3만원에 파는 그 집 불고기를 먹을라치면 손님 대접이 달라진다. 냉면만 먹으면 선불이지만 불고기 손님은 후불이다. 맛을 보면 수긍이 가고 운 좋게 남이 밥값을 치른다면야 감사하지만, 소풍 가는 기분으로 "불고기나 먹자"고 할 만한 가격이 아니다. 그럴 때는 역시 보건옥이 제격이다. 불고기 1인분에 150g, 1만4000원. 옛날식으로 중간이 볼록한 황동 불판은 이제 없어졌지만 맛은 여전하다. 한우 암소 앞다리 살을 저며 쓴다는 불고기에는 육수가 자작하고 앞뒤로 마주 앉은 사람들은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동한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직구처럼, 아삭거리지만 무르지 않고 풋내가 가셨지만 아린 맛이 생생한 파김치는 이 집의 명물이다. 길고 가는 그 녀석을 먹으며 작은 잔을 채우고 비우면 예로부터 음주 가무에 능했다는 동이족(東夷族)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지경이다. 얇게 썰린 고기를 솜씨 좋은 사람이 잘 헤집으며 솔솔 익히는 것은 그다음이다. 육향이 그윽한 소고기와 팽이버섯, 파채를 달래고 어르면 먹을 준비는 금방이다. 어차피 고기가 얇아 익는 데 오래 걸리지 않고, 또 시간이 지날수록 고기는 부드러움을 잃어버리니 빠른 젓가락질이 흉이 되진 않는다. 모자라면 또 어떤가? 호기롭게 "여기 2인분 더요!" 해도 우래옥보다 값이 덜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배가 부르고 흥이 올라 불 꺼진 을지로 공구 거리를 걷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는 누군가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없고, 또 누군가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 혼자 "좋다, 너무 좋다"고 중얼거릴 뿐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