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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의 새콤함, 겨자 톡 쏘는 맛, 메밀면 구수함 어우러져

산야초 2016. 7. 2. 23:42

식초의 새콤함, 겨자 톡 쏘는 맛, 메밀면 구수함 어우러져

    입력 : 2015.05.04 08:00

    [국수매니아 김윤정의 '국수를 쓰다'] 초계탕

    더워지기 시작하는 5월부터는 여름음식에 대한 관심이 쏟아진다. 살얼음이 뜬 시원한 초계탕은 여름철음식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펄펄 끓는 삼계탕도 여름보양식으로 꼭 같이 거론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자신만의 특별한 여름메뉴를 결정하려는 사람들은 삼계탕과 초계탕을 놓고 잠시 고민한다. 여름의 이열치열을 믿는 사람들은 삼계탕을 택할 테고, 더운 날씨에 시원한 국물을 마셔야 살 것 같다는 사람은 또 믿는 그대로 기운을 회복할 것이다.

    예전에는 초계탕이 여름철음식이 아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차가운 초계탕이 여름에 어울려 지금 굳어진 것으로 본다. 초계탕조리법이 최초로 기록된 문헌인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총계탕방(蔥鷄湯方)이라고 적혀있으며 이후 총계탕, 쵸계탕 등을 거쳐 초계탕(醋鷄湯)으로 변화됐다.

    초계탕

    이북음식점 <평래옥(平來屋)>을 찾았다. 여주인장은 초계탕을 위해 하루 종일 닭을 삶아낸다. 바로 옆 중앙시장에서 구매하는 닭은 크기가 꽤 크다. 닭들은 펄펄 끓는 솥에서 종일 삶아지고 푹 익으면 꼬들한 식감을 위해 채반에 널어진다. 꾸득한 듯 말려지면 차게 냉장고에 보관하는데, 이 과정이 꼬박 하루가 걸린다. 모두 식힌 닭은 여주인장을 필두로 손으로 쪽쪽 찢는 과정을 거친다. 결대로 가늘게 찢어낸 닭들은 부위별로 나누어 구별된다. 닭의 제일 넓은 부위인 가슴살과 껍질은 반찬으로 나가는 닭무침으로 사용되고, 초계탕에는 북채를 포함한 쫄깃한 다리살이 들어간다. 닭고기는 고기의 맛으로만 따진다면 소고기의 깊은 육향이나 돼지고기의 고소한 기름 맛보다는 뒤처짐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닭고기는 푹푹 삶아지고 식혀가면서 닭고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재료들이 필요하다. 식초의 새콤한 맛과 겨자의 톡 쏘는 맛, 그리고 메밀면의 은근한 구수함이 어우러지는 음식이 바로 초계탕이다.


    닭고기는 고기자체의 맛보다는 조리방법으로 더 빛이 났던 재료이다. 프라이드치킨, 닭강정, 찜닭, 닭도리탕의 맛을 생각해보면 된다. 시즈닝 된 튀김옷, 간장, 물엿, 고추장의 맛들이 닭고기를 먹게 했다. 원래는 하얗고 밋밋한 닭고기다. 기름기가 쏘옥 빠진 하얀 살코기들은 식초와 겨자를 만나 그 맛이 한층 발랄해진다.


    음식의 이름은 재료를 떠올리게끔 지어진다. 초계탕의 이름은 (식)초를 떠올리게 한다. 신맛은 여러 가지 맛 중에서 가장 즉각적이다. 식초는 사람이 발견한 가장 오래된 조미료이기도 하다. 술을 오래 두면 발효를 해 식초가 되는데, 영어로 식초를 의미하는 ‘Vinegar’가 프랑스 포도주인 ‘Vin’에 그 어원이 있는 걸로 보아 술을 만들어먹다가 신맛으로 바뀌는 걸 발견하고 음식재료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신맛은 음식의 주재료와 부재료의 맛을 돋우고 잡내를 없애는 역할까지도 한다. 그 자체의 맛보다는 음식에 섞였을 때 재료의 맛을 극대화 시켜준다. 닭고기자체만으로는 밋밋한 맛이 식초가 더해지고 겨자를 풀어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다.

    초계탕

    <평래옥> 초계탕의 육수는 동치미국물을 섞는다. 국물 맛을 보니 식초와 겨자도 넉넉히 들어갔다. 닭고기와 채소들을 건져먹고 나면 그 아래에는 메밀 면들이 웅크리고 있다. 70% 비율의 메밀 면을 뽑아내는 메밀 면은 투명하면서도 굵직해 아삭거리며 떠다니는 오이, 양상추, 절인 무와 잘 어우러졌다.


    닭고기, 채소, 식초, 겨자, 메밀 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뒤에서 조금씩 맛을 받쳐준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고기자체의 맛이 덜한 닭고기도 가만히 꼭꼭 씹게 된다. 어쩌면 밋밋한 고기 맛을 상쇄시킬 식초와 겨자 그리고 아삭한 식감을 주는 채소들의 씹힘이 초계탕의 맛이다. 메밀면만 보면 더 잘 뽑아내는 곳도 있을 테고, 육수만 들이켜 보면 아쉬운 점이 영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새콤하고 톡 쏘는 맛이 배어 아삭거리는 채소들은 묵묵한 메밀 면과 씹히는 맛의 대조를 확실히 이루어낸다. 하나하나의 재료가 최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움을 만들어낸다. 60여년의 긴 세월인 동안 3대를 걸쳐 이어져올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초계탕은 이북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조리법을 떠올린다면 누구나 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음식은 아니었다. 닭고기를 손질해 삶아 식힌 후 가늘게 찢어 준비해두고, 차갑게 식힌 육수에 채소를 손질해 메밀국수를 말아내는 번거로운 조리과정을 거친다. 초계탕은 실향민들의 기억 속에도 몇 번 먹어 본 적 없는 특별한 음식이다.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평양 사람이었던 할머니의 초계탕을 먹어봤지만 늘 먹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특별한 날이면 동네에서 남자들이 닭을 잡았다. 아낙네들은 닭 삶을 물을 준비하고 털을 뽑았다. 삶은 닭은 널어두어 손으로 일일이 찢어냈다고 한다. 거칠게 갈아낸 메밀가루로 힘 좋은 장정들이 국수틀을 누르고 국수를 뽑았을 것이다. 같이 누른 메밀 면을 겨울에는 시원한 동치미와 섞어서 내면 메밀 향이 그윽해서 좋았고, 가끔 뜨거운 여름에는 얼음이 서걱서걱한 시원한 맛으로 초계탕을 먹었다. 6.25 전쟁 전후 밀가루가 흔해지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왔고 평안도에서 내려온 할머니는 서울 한복판에 이북음식점을 냈다. 그때가 바로 1950년이다. 지금은 3대째인 주인장이 <평래옥>을 운영하고 있다. <평래옥>은 평안도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옛날에는 왕들도 먹었을 폼 나는 음식이 실향민들에게서 전해지고, 우리에게는 현재 여름철 별미로 자리 잡은 음식이 바로 초계탕인 것이다.
    <평래옥> 서울 중구 마른내로 21-1, 02-2267-5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