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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달이 머물고 폭포에는 피리소리가 스쳐갔네

산야초 2016. 8. 3. 21:52

[박종인의 땅의 歷史] 산에는 달이 머물고 폭포에는 피리소리가 스쳐갔네

    입력 : 2016.08.03 06:38

    [47] 달이 머무는 영동과 당재터널 무명씨(無名氏)들

    당재터널 이야기

    충북 옥천과 영동 사이 경부고속도로 공사 이야기다. 긴 터널을 뚫을 기술이 없던 때라, 산과 산 사이를 골라 굴을 뚫었다. 금강IC와 영동IC 사이는 고속도로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러운 곡선투성이였다. 1970년 고속도로 완공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구간이 이곳 당재터널이었다. 터널 앞과 뒤를 흐르는 금강 구간에는 거대한 다리를 놓았다. 산 사이를 뚫다 보니 뚫으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사람이 죽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기간 사고로 죽은 사람이 일흔일곱 명이었는데, 열한 명이 당재터널을 뚫다가 순직했다.

    터널 개통을 끝으로 고속도로가 완공됐다. 그해 7월 7일 대구에서 열린 개통식 다음 날 대통령 박정희는 금강휴게소 옆에 있는 순직자 위령탑에 와서 조문을 했다. 2003년 잔뜩 휘어 있는 이 구간 직선화 공사가 완료됐다. 폐기된 당재터널 상행선 구간은 저온 저장고가 되었다. 한 시대 한 나라를 이끈 터널이었다. 터널을 떠받치는 아치형 콘크리트 기둥마다 현대사가 읽힌다.

    대한민국 성장에 경부고속도로가 끼친 영향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굳이 터널을 보기 위해 갈 필요도 없겠고 순직자 77명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을 찾기 위해 일부러 금강휴게소에 정차할 이유도 없겠다.
    경부고속도로 위령탑에 있는 순직자 명단.

    폐쇄된 당재터널엔
    고속도로 순직자 흔적이

    노론 거두 송시열은
    달 머문 월류봉에서 와신상담

    세조가 문수보살 만난
    반야사 개울가…

    악성 박연이 찾던 옥계폭포…

    영동을 목적지로 떠난 여행길이라면, 반드시 찾아본다. 당재터널 무명씨(無名氏)들이 없었다면 우리네 필부필부들은 지금 어찌 살고 있었을까. 터널이 이끄는 영동 땅 옛사람들 삶도 그러하다.

    달이 머무는 황간

    터널에서 30㎞ 동쪽으로 가면 영동군 황간면이 나온다. 물은 많아서 땅 이름도 누를 황(黃)에 시내 간(澗) 황간이었다. 가도 가도 첩첩산중이니, 숨어 살기에는 딱 좋은 땅이다. 농사는 거칠었고 경치는 좋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황간은 층층한 산마루를 의지하고 절벽을 굽어보고 있다. 동남쪽 모든 물이 그 아래로 꺾여 서쪽으로 가는데, 돌에 부딪히면 거문고와 비파, 피리 같은 소리가 주야로 끊어지지 않는다. 고을 서쪽 5리쯤 되는 곳에 두어 봉우리가 솟아 있고 가운데 청학굴(靑鶴窟)이 있다. 그윽하고 깊으며 연기와 안개가 아득하여 지나는 사람은 인간 세상의 경계가 아니라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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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 악성(겦聖) 박연은 고향 충북 영동 옥계면에 있는 옥계폭포에서 음악을 익혔다. 셋째 아들이 역모에 연루돼 벼슬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죽었다. 뜨거운 이 여름날 폭포수는 실처럼 가늘게 흘렀다. /박종인 기자
    인간세가 아닐 정도로 깊었으니 꼭꼭 숨어서 살기에도 좋았고 경치 구경하면서 즐기기에도 좋았다. 승람이 '두어 봉우리'라 적은 그곳 이름은 월류봉(月留峰)이다. 달이 머문다는 뜻이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달도 승천하지 못하고 머물렀을까.

    우암 송시열과 월류봉

    송시열(1607~1689)이 숨어 살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암 송시열은 조선 중기 집권 세력인 보수파 노론의 태두였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망하고 대륙에 청나라가 섰을 때, 조선이야말로 명나라를 계승하는 소중화라 생각했던 학자였다.

    1637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임금이 무릎을 꿇었다. 젊은 송시열은 외가가 있던 옥천 옆 이곳 월류봉 아래에 은둔하며 오랑캐 징벌을 꿈꿨다. 숱한 동료들이 찾아와 함께 꿈을 꾸었다. 다시 조정으로 불려 간 뒤 청나라로 끌려갔던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등극하자 대놓고 북벌론을 외치며 중화 부활을 이끌었다. 효종이 죽었다. 동아시아 초강대국과 맞짱을 뜨겠다는 의지는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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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이 머문다는 월류봉. 우암 송시열이 한때 이곳에 은거했다.
    그가 죽고서 영동 일대 제자들이 그가 살던 집터에 그를 기리는 한천서원을 지었다. 고종 때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다. 한천서원도 철폐됐다. 이후 후학들이 그 자리에 한천정사를 세웠다. 월류봉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후손들이 유허비를 세우며 건립 연대를 이리 적었다. '崇禎紀元後百三十六年.'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다. 1644년 대륙에서 사라진 나라 연호를 송시열 유허비는 136년째 잇고 있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 비석들은 상당수가 '숭정 기원후'를 고집했다. 기이하지 않은가.

    금강 지류들이 백화산과 지장산을 감싸며 흐르다 야트막한 다섯 봉우리 앞에서 크게 휘돈다.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풍경 규모도 적당하여, '한 폭 산수화'라는 상투적인 비유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춘하추동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눈 덮인 겨울이 더 아름답다는 사람도 많다. 해 질 녘 월류봉 앞에 닿으면 달과 함께 놀아볼 준비를 한다. 달이 떠도 좋고 별들이 떠올라도 좋다. 그 천체들이 과연 봉우리를 떠나지 않고 밤새 함께 놀 요량인지도 확인해보자.

    세조와 반야사 배롱나무

    월류봉 아래에서 만나는 강줄기 하나는 석천(石川)이다. 월류봉에서 석천을 따라 6㎞를 가면 백화산이 나온다. 백화산에는 반야사가 있다. 불교 용어로 반야는 깨달음이다. 반야사는 문수보살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수양대군 세조(1417~1468) 이야기를 품고 있다.
    500세 된 반야사 배롱나무와 삼층석탑.
    통일신라 시대인 851년 무염대사가 창건했다는 말도 있고 통일 전 원효대사가 지었다는 말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반야사 기원은 문수보살 신앙이다.

    세조는 문수보살과 관계가 깊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뒤 얼마 지나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현몽했다. 왕후가 "이 더러운 놈!" 하고 침을 뱉고 사라진 뒤 세조는 온몸에 종기가 나서 고생을 했다. 명산, 명찰은 다 돌아다니며 기도를 하고 몸을 씻었다. 양양 낙산사도 갔고 오대산 월정사도 갔다. 오대산에서 몸 씻어준 아이에게 "임금 몸 봤다 말라" 했다가 "그대는 문수보살 봤다 하지 말라"는 답을 들었다. 똑같은 전설이 반야사에도 있다. 세조 10년 반야사가 크게 중창을 하고 임금을 초대했다. 법회를 마친 세조가 강변에서 아이에게 이끌려 몸을 씻었다. 드디어 부스럼이 치유되었고, 아이는 절벽 위로 올라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곳에 문수전이 서 있다.

    문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고행길이다. 안내문에는 '가벼운 10분 산행'이라 돼 있지만, 거짓말이다. 힘들게 내려와 절을 다시 보면, 극락전 앞에는 오백 살 먹은 배롱나무가 새빨갛게 꽃을 달고 있고, 그 앞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서 있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면 백화산 중턱 너덜지대에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발톱을 세우고서 용맹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름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만드는 절이었다.

    폭포, 그리고 악성 박연

    영동의 서쪽 끝 옥계면에는 옥계폭포가 있다. 역시 세조와 관계가 있다. 고려 말 이곳 영동에서 박연(1378~1458)이 태어났다. 박연은 고구려 왕산악, 가야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이라 불린다. 성리학이 중시하는 예(禮)와 악(樂) 가운데 박연은 악을 집대성했다. 사회를 규율하는 덕목이 예이고 악은 통합하는 덕목이다. 세종 임금 아래에서 박연은 조선 궁중 음악을 체계화했다. 피리에 능해서 그가 피리를 불면 새들도 화답했다고 했다.

    그러다 셋째 아들 박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자 함께 사형을 받게 되었다. 세조가 이를 보고받고서 "세 임금을 섬겼으니 벌을 깎으라"고 명했다. 그리하여 죽음을 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81세로 죽었다. 그곳이 영동 옥계면이다. 그가 음악을 익힌 자리가 바로 옥계에 있는 옥계폭포다. 폭포를 본다. 폭포수 양쪽 웅장한 암벽에 푸른 나무들이 붙어 있다. 염천(炎天) 더위에 폭포수는 말랐다. 가끔 아랫물을 펌프로 끌어 올려 수량 많은 폭포수를 볼 때도 있다. 무엇보다 저 바위 위에 앉아서 피리를 불며 악상을 정리했을 이 음악가를 상상해본다.

    폭포에서는 피리 소리에 맞춰 산짐승들이 모여들었다. 동쪽 월류봉에서는 달이 놀았다. 피부병을 앓던 권력자가 강변 절을 찾아와 심신을 치유받았다. 다시 서쪽으로 가면 태곳적부터 산으로 서 있던 자리에 누군가 무명씨들이 땀 흘린 터널이 남아 있다. 산이라고 그저 산이 아니었다. 물이라고 그저 물이 아니었다.

    [영동 여행수첩]
    〈볼거리〉 1.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상행선 쪽 언덕. 휴게소에 차를 대고 걸어갈 수 있다. 2.당재터널: 금강휴게소에서 하행 톨게이트를 나와 금강 강변 우산로를 지나 금강로로 2.8㎞. 터널 옆에 주차 공간 있음. 3.월류봉과 한천정사: 내비게이션 검색어는 월류봉. 새벽 혹은 저녁이 좋다. 한천정사는 개방돼 있지만 볼거리는 없다. 정사 건너편 텃밭 언덕에 월류봉 바라보는 송시열 유허비가 있다. 유허비 옆에 새겨진 '숭정 기원' 연호를 찾아볼 것. 4.반야사: 극락전 앞에 있는 500년 된 배롱나무 두 그루와 삼층석탑, 세조와 문수보살 전설이 얽힌 문수전. 문수전 산행은 약간 극기 훈련과 비슷한 가파른 계단 길이다. 극락전 옆 백화산에 보이는 호랑이 형상 너덜지대도 볼 것.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043)742-4199, www.banyasa.com 5.옥계폭포: 주말에 수량이 부족하면 폭포 아랫물을 끌어 올린다. 물이 없어도 장관이다.

    〈맛집〉 한천가든: 월류봉 앞. 쏘가리·빠가사리·메기 매운탕. (043)744-9944

    〈영동 여행 정보〉 영동군 문화관광 tour.yd21.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