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의 바다로…'만리포 사랑'
충남 태안(泰安) 앞바다엔 '죽음의 바다'라는 오명(汚名)이 수년간 따라다녔다.
하지만 손으로 기름을 퍼내고, 조약돌 하나까지 닦아낸 어민과 자원봉사자 등 123만명의 힘으로 태안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자연의 치유와 국민의 염원으로 '검은 악몽'에서 깨어나 이젠 푸른 생명의 바다로 거듭나고 있다.
입력 : 2016.08.03 08:27 | 수정 : 2016.08.03 08:42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10㎞쯤 떨어진 해상에서 해상 크레인(삼성중공업)과 유조선(홍콩 선적)이 충돌하며 국내 최악의 유류 오염 사고가 발생했다. 유조선에 구멍이 뚫리면서 중동산 원유 1만900t이 바다로 쏟아져 나왔고, 태안 해변까지 덮쳤다. 기름을 뒤집어쓴 철새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삶의 터전인 양식장을 잃은 어민들의 가슴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해양 생태계를 회복하려면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잿빛 전망까지 나왔다.
세계자연보전연맹도 가치 인정
해양 상태, 기름 사고 이전으로…
상괭이·점박이물범도 돌아와
서핑·스킨스쿠버 명소로 인기
◇사고 이전 수준으로 환경 회복
지난 1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생태적 가치를 '해상 경관보호지역'에서 '국립공원'으로 높였다. 실제로 태안의 해양 상태는 기름 유출 사고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해양수산부 조사 결과 원유 잔류 성분 중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다환방향족 탄화수소류(PAHs)가 갯벌 어장 퇴적물 1g 중 11.03나노그램(1ng=10억분의 1그램)만 검출됐다. 2001년 검사 수치(13.7나노그램)보다 낮아졌다. 지난 6월엔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이 붙은 국제 멸종위기종 상괭이 100여 마리가 신진도 앞바다에 나타났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점박이물범도 발견됐다.
- [태안 '검은 재앙' 그 후 1년]
- 바지락 잘 잡혀 '웃음'… 관광객 늘지 않아 '한숨'
바지락 양식을 주업으로 삼는 법산리의 김두환(56) 어촌계장은 "유류 사고 이후 2~3년간은 작황도 좋지 않았고 기름 피해 때문에 바지락을 사려는 사람도 없었다"며 "지금은 바지락 대부분을 일본에 수출하며 연간 4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만리포니아'로 통하는 레포츠 명소
개장 61년째를 맞은 만리포 해수욕장은 유리처럼 빛나는 규사 백사장(길이 2.5㎞·폭 100m)이 자랑이다. 썰물 땐 갯벌이 백사장 넓이만큼 펼쳐져 해수욕과 갯벌 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지난 24일 가족과 함께 경기도 성남에서 만리포를 찾은 류호철(38)씨는 "예전에 원유로 뒤덮였던 검은색 해변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리포는 낚시, 스킨스쿠버, 서핑 등 해양 레포츠의 명소가 됐다. 특히 서핑족들은 이곳을 미국 캘리포니아에 빗대 '만리포니아'라고 부른다. 해수욕장 입구엔 반야월(1917~2012·본명 박창오) 선생이 가사를 쓴 '만리포 사랑'을 기념하는 노래비가 서 있다. 원유 유출 당시 피해 복구에 뛰어들었던 자원봉사자를 기리는 찬양 시비(詩碑)도 명물이다.
작년엔 해수욕장 개장 기간(40일) 동안 관광객 35만6700명이 다녀갔다. 올해 새롭게 등장한 워터스크린(가로 10m·높이 13m)에선 분수·조명쇼가 펼쳐지고 있다. 오는 6일 개막하는 브라질 리우올림픽의 경기 영상도 방영될 예정이다.
◇탐방로, 수목원… 서해의 푸른 보석
태안엔 제주도의 올레길 같은 탐방로가 170.3㎞에 이른다. 이 중 66.9㎞ 6개 코스로 구성된 솔향기길은 유류 유출 사고 당시 태안반도를 찾았던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태안군은 6억여원을 들여 표지판과 데크,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고 길을 닦았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용이 승천한 흔적이 남았다는 용난굴, 구멍을 통과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직경 8m 구멍 바위 등 절경과 만난다.
해변길 8개 코스(총 103.4㎞)엔 1만5000년 전부터 만들어진 해안 사막 신두리 사구(천연기념물 제431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두웅 습지가 포함되어 있다. 지난 2000년에 국제수목학회가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한 천리포 수목원은 서해안의 푸른 보석으로 불린다. 17만평 대지에 국내 최다인 1만32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한상기 태안군수는 "유류 오염 사고 이후 국민들이 보내준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560㎞에 이르는 해안선,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태안을 보존하고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태안 앞바다 원상 회복… '그날' 이전 수준으로 깨끗"
박광렬 해수부 대변인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의뢰해 2013년 3월 태안 앞바다 상태를 조사한 결과, 태안 만리포 인근 바닷물의 수질과 유분 농도가 국제 수질 기준과 퇴적물 권고치 이하로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2007년 12월 이전과 비슷하다는 얘기이다.
해수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굴과 어류 등 수산물의 오염도 역시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 없는 바다에서 나오는 수산물처럼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태안 앞바다가 대량 원유 유출에도 불과 5년 반 만에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고 초기에 총 213만명이 바위 등에 낀 기름때를 닦아내는 등 국민적인 역량이 모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수부는 분석했다. ▷기사 더보기
안면도 휴양림엔 100년 된 소나무들… 영목항 들르면 명물 '까나리 액젓'
태안 안면도에서 자라는 소나무인 안면송(安眠松)은 조선시대부터 '귀하신 몸'이었다. 목재를 관리·보호하기 위해 나무 베기를 금지하거나 봉산(封山·입산 금지)을 했던 지역이 73곳이었을 정도다. 안면송은 단단한 재질과 굵은 몸통, 잘 썩지 않는 특성 때문에 경복궁과 창경궁 등 국가의 중요 건물에 사용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 화성을 지었을 당시(1794~ 1796년)엔 길이 9m, 지름 67㎝ 이상 안면송 344그루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엔 수령이 100년 된 안면송이 3.81㎢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솔향기와 피톤치드가 몸과 정신을 맑게 해 준다고 알려져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황토초가·산림휴양관 등 숙박할 수 있는 방이 22개인데, 매달 1일 예약 접수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동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정원과 희귀 식물들을 볼 수 있는 수목원과 산림 문화 자료가 보존된 산림전시관도 인기다.
자연휴양림에서 20여 분을 차로 달려 섬의 남쪽 끝으로 내려가면 영목항이 나온다. 5~6월 성어기에 잡은 까나리를 씻은 후 태안산 천일염과 1대1로 섞어 해풍에 1년 이상 발효시켜 만드는 까나리 액젓으로 유명한 곳이다. 냄새가 강하지 않고 맛은 깔끔해 김장철이 가까워지면 전국에서 주문이 몰린다. 가격(5㎏ 8000원·10㎏ 1만5000원 선)이 저렴한 편이라 안면도에 놀러 왔다가 까나리 액젓을 사려고 일부러 영목항을 들르는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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