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짜리 보리밥에 된장찌개로 블랙퍼스트를 대신하다
입력 : 2014.01.02 08:30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대구 고산골 <신토불이 옛날보리밥>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로 아침을 해결하려 했지만…
대구에 출장을 가서 1박을 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로 브런치가 먹고 싶었다. 그것도 베이컨과 토스트, 오믈렛 등이 나오는 미국식 블랙퍼스트가 떠올랐다. 전에 대구 미군부대 인근 브런치 전문점에서 아침식사를 먹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아침이 되자 생각이 싹 바뀌었다. 미국식 조식보다는 필자의 입맛 본능이 자연스럽게 한식을 떠올렸다. 중년 남자치고는 브런치 같은 것을 꽤 즐기는 편인데도 말이다. 한국인의 유구한 식습관 유전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몇 달 전 대구 고산골 소재 한 음식점에서 3000원짜리 시래기국밥을 먹고 감동했던 것이 떠올라 고산골로 차를 몰았다. 고산골은 음식 가격이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1500원짜리 콩나물국밥도 있다. 주 고객이 등산객이라서 대부분 식당이 착한 가격에 음식을 팔고 있다. 그 시래기국밥을 다시 먹고 싶었지만 일행이 오늘은 딴 음식을 먹자고 해서 필자도 동의했다. 한 번 입에 맞으면 그 음식을 계속 먹는 패턴이 있지만 짧은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다.
주인아주머니 나 홀로 식당
우연히 선택한 곳은 <신토불이 옛날보리밥>. 간판이 촌스러워서 들어 간 이유도 있다. 간판이 촌스러우면 뭔가 손맛이 있는 식당일 가능성이 높다. 가게 안이 협소하다. 달랑 두 테이블 밖에 없다. 그러나 안채에는 좌석이 또 있다. 이 식당은 주인아주머니 혼자 운영하는 곳이다. 깔끔한 곳을 좋아하는 세련된 젊은 여성들은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 않다. 메뉴판을 보니 음식 가격이 역시 저렴하다. 안주도 6000원이 넘어가는 것이 없다. 난로도 연탄난로다. 소싯적 연탄가스에 중독된 쓰라린 추억이 있지만 세월이 지나니 이런 연탄난로도 어째 정감이 간다.
우리 두 명은 보리밥(4000원) 두 그릇과 별도로 고등어구이(3000원)를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주인아주머니가 된장찌개를 가스 불에 올린다. 반찬으로 나오는 찬들이 소박하다. 지극히 서민적인 풍이다. 보리밥에 넣는 고추장도 된장찌개 된장도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담근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전국의 식당 중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담그는 곳은 거의 없다. 특히 고추장은 거의 대부분 제조한 고추장을 사용한다.
장맛은 모든 음식의 으뜸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된장찌개를 보면서 브런치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맛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보리밥은 평범했지만 이 된장찌개가 압권이다. 직접 담근 것도 그렇지만 입에 짝짝 붙는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산림경제’에서 언급한 ‘장맛이 모든 음식의 으뜸’이라는 경구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구수하고 정겨운 맛이다. 다른 테이블 위에 앉은 나이 든 분들은 아마도 거의 매일 이 식당에 오는 것 같다. 장맛 때문이다. 그분들이 대구 유명 갈빗집 된장찌개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갈빗집은 필자도 아는 곳이다. 전에 본란에 기고했던 한우 갈빗집이다. 보리밥에 된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 먹으니 진수성찬이 전혀 안 부럽다. 꿀맛이다. 고등어구이도 열심히 싹싹 발라서 먹었다. 보리밥과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면 아침식사로는 정말 황홀한 구성이다. 이른 아침식사이고 전날 다소 과식을 했지만 된장이 맛있어서 결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여기에 누룽지도 있다. 이 누룽지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법. 누룽지를 보고 안 먹으면 그 사람은 절제를 잘 하든지 아니면 무지 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음식 관련 책을 구입했는데 50세가 넘으면 탄수화물을 줄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런 된장찌개와 밥은 우리에게 영혼의 음식이다. 술을 줄일 수는 있어도 이런 밥상을 어찌 줄일 수 있을까?
주인아주머니에게 주소를 물어보았더니 절대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한다. 식당이 작아서 기존 단골손님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 하는 당부다. 그럴 거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 본인 마음이다. 필자도 이런 소박한 식당을 소개해주는 것이 나름 뿌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4000원짜리 서민 식사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는 대구 고산골은 소탈한 손님 입장에서 아주 매력적인 지역이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주소를 물어보았더니 절대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한다. 식당이 작아서 기존 단골손님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 하는 당부다. 그럴 거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 본인 마음이다. 필자도 이런 소박한 식당을 소개해주는 것이 나름 뿌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4000원짜리 서민 식사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는 대구 고산골은 소탈한 손님 입장에서 아주 매력적인 지역이다.
*지출 내역 : 2인 보리밥 8000원+ 고등어구이 3000원 = 1만1000원
<신토불이 옛날보리밥> 대구시 남구 봉덕동 1190-3 (053)476-5219
<신토불이 옛날보리밥> 대구시 남구 봉덕동 1190-3 (053)476-5219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면서 인심 훈훈한 서민음식점을 일상적인 형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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