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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그 섬… 난 楸子島로 간다

산야초 2016. 9. 1. 23:29

이 가을, 그 섬… 난 楸子島로 간다

    입력 : 2016.09.01 04:00

    추자도

    가을, 추자도(楸子島)로 간다. 215년 전 젖먹이 아들 데리고 바다를 건넌 한 여인을 생각한다. 1801년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 때였다. 여인의 이름은 정난주. 정약용의 큰형인 정약현의 맏딸, 백서(帛書) 사건 주인공 황사영의 아내다. 조선 첫 세례교인 이승훈이 고모부, 조선 천주교회 창설 주역인 이벽이 외삼촌이었다. '황사영 백서'는 조선의 가톨릭 박해 상황을 베이징 주교에게 알리는 내용이다. 서양 선박과 군대를 보내 조선을 위협하면 종교 자유를 얻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대역(大逆)'이었다. 스물여섯 살 혈기 방장한 청년 황사영은 충청도 제천 땅으로 도피했다가 이해 가을 체포돼 극형을 당한다. 아내 정난주와 두 살배기 아들은 제주도 유배길을 떠났다.

    추자도는 위 아래 두 섬이 다리로 이어져 있다. 하추자도 동쪽 끝 언덕에 아들 황경헌(황경한)의 무덤이 있다. 추자도는 제주도로 갈 때 거쳐가는 길목이었다. 보길도~추자도~관탈도~제주도로 징검다리처럼 이어지는 뱃길이다. 추자도에 딸린 남쪽 끝섬 관탈도에 이르면 유배객은 '갓(冠)을 벗어야(脫)' 한다 했다. 스물여덟에 남편 잃은 정난주를 실은 배도 추자도에 들렀다. 그녀는 아이를 갯바위에 내려놓았다. 이름과 생년을 적었다. 이곳에서라도 살아남길 바랐다. 오상선이라는 어부가 아이를 주워 길렀다. 추자도에선 지금도 황씨와 오씨는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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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추자도 등대전망대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본다. 상·하 추자 두 섬이 다리로 이어져 있다. 추자도는 4개 섬이 유인도, 38개 섬이 무인도로 구성된 군도(群島)다. 사진 속 오른쪽 위 아득히 보이는 봉우리는 제주도 한라산이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운명이란 얄궂다. 황사영은 16~17세 때 장원급제한 엘리트, 정난주의 친정 집안은 남인 명문가였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양반집 도련님으로 잘 살아갔을 터였다. 아이는 갑자기 낯선 섬마을에서 부모 잃은 천애 고아가 됐다. 섬 처녀와 혼인하고 아들 둘을 낳았다. 지금 6세손이 살고 있다 한다. 이번 여행길에서 만나지는 못했다. 정난주는 유배지 제주 대정에서 66세에 죽는다. 무덤이 그곳에 있다. 바다 건너 아들을 생각하며 무던히 울었을 것이다. 상추자 등대 전망대에 오르니 한라산이 보였다. 황경헌 무덤에선 보길도가 보인다.

    추자도는 전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다. 각각 40~50㎞ 떨어져 있다. 예부터 경계의 섬이었다. 전라도 영암군 소속이었다가 1884년 제주목에 이관됐다. 1896년 전남 완도군에 속했다가 1908년 다시 제주도 소속이 됐다(추자면사무소 자료). 주민 수는 2000여명.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육지에서 건너온 이들이 다수 정착했기 때문이다. 현 행정 지명은 제주시 추자면이다. 공무원은 대부분 제주에서 파견된다. 면사무소나 파출소 직원은 제주 사투리를 많이 쓴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영후(48)씨는 "주민들 말투나 음식은 전라도식"이라고 했다. 추자도에는 중학교밖에 없어 고등학교는 거의 대부분 제주도로 진학한다. 김씨는 "동기생 70~80%가 제주도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제주 소속이니 당연하다는 얘기다.

    제주 올레 코스가 추자도에도 있다. 제주 소속이니 역시 당연하다. 18-1 코스. 올레를 완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상추자도 추자항에서 하추자도 신양항을 거쳐 다시 추자항으로 돌아오는 17.7㎞ 코스다. 8시간쯤 걸린다. 다 걷지 못하더라도 두 곳은 꼭 가야 한다. 상추자 등대 전망대와 하추자 돈대산 정상이다. 두 곳 모두 먼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이틀 머무는 동안 첫날 등대 전망대에 올랐다. 약간 흐리고 바람 많은 해질녘이었는데 멀리 한라산이 보였다. 이튿날 돈대산에 올랐다. 맑은 날이었는데 해무(海霧)에 가려 제주도가 보이지 않았다. 추자도에는 "바람이 불려면 섬이 가까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한다. 맑은 날에 오히려 먼 섬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낚시꾼에겐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참돔·돌돔·감성돔 같은 고급 어종이 청정 바다에서 낚싯바늘에 걸려온다. 식당에서 내는 회는 모두 추자도 인근에서 잡은 자연산이라고 했다. '추자 굴비'가 특산이다. 9월부터 조기잡이를 시작한다.

    옛 유배객에겐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머나먼 남쪽 섬이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려면 웬만한 남도 섬들보다 가깝다. 제주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제주항에서 배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다. 멀어도 가까운 섬이다. 가끔은 복잡한 세상 떠나 조용한 절도(絶島)로 자발적 유배를 떠나고 싶다. 그래서 이 가을, 추자도로 간다.

    제주~추자~해남 우수영을 오가는 ‘퀸스타2호’(064-758-4233), 제주~추자~완도를 오가는 ‘레드펄호’(064-751-5050)가 운항한다. 퀸스타호는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9시 30분 출발해 상추자 도착. 레드펄호는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오후 3시 출발해 하추자 도착. 두 배가 출항하는 터미널을 혼동하기 쉬우니 주의. 1시간 반 걸린다.

    바다 간조로 레드펄호는 9월 1·17·18일은 오후 2시, 16일은 오후 1시 30분 제주 출발. 추자 출발은 하추자에서 오전 11시, 상추자에서 오후 4시30분. 마침 제주도 여행 중이라면 오전 배를 타고 들어가 오후 배로 나가는 짧은 추자도 여행도 할 수 있다.

    섬을 도는 버스가 약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4회 운행한다. 렌터카(010-3698-3937)가 있으나 하루 대여료 10만원으로 비싸 추천하지 않는다.

    숙박은 여관·민박. 허름한 방인데 8만원(2인)으로 비싸다. 하지만 저녁과 아침 식사를 내준다. 전라도 밥상 같은 집밥이 식욕을 돋웠다. 식당에서 내는 회는 모두 추자도 자연산이라고 한다. 면사무소 인근 제일식당(064-742-9333). 돌돔 1㎏ 13만원, 감성돔 12만원, 농어 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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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 장군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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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박집에서 낸 저녁 식사. 전라도 밥상같은 집밥이다.

    최영 장군도 기다렸던… 이 섬의  順風

    추자도의 한자 ‘추(楸)’는 가을 나무라는 형상. 추자는 가래나무 열매를 뜻한다. 섬에 가래나무가 많아 이름 붙었다는 설이 있다. 고려 때 이름은 후풍도(候風島). 바람을 기다리는 섬이란 뜻이다. 고려말 최영(1316~1388) 장군도 이곳에서 바람을 기다렸다. 1374년이었다. 원나라 간섭기 제주에서 말을 키우던 몽골의 잔존 세력 ‘목호(牧胡)’가 일으킨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길이었다. 최영은 추자도에서 순풍을 기다리다 다시 제주로 출발했다. 섬에 머무는 동안 그물(어망)로 물고기 잡는 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 한다. 상추자도 북쪽에 최영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위패에는 ‘조국도통대장최장군신위(朝國都統大將崔將軍神位)’라고 적혀 있다. 추자도에 관련 이야기가 전한다. 130년 전이었다. 섬에 한 바보가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자신을 최영 장군이라고 했다. 설마 장군의 영혼이 바보에게 들렸을까 의심한 주민이 물었다. “장군님, 위패를 어떻게 쓸까요?” 바보는 “먹을 갈아라, 붓을 들어라” 하더니 위패에 쓸 글씨를 읊더란다. 지금 위패는 그때 쓴 것이라고 한다. 1970년 현 모습으로 복원했다. 올해는 최영 장군 탄생 700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