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5일 오후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비대위원장 등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사드배치 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선DB |
2013년 아베가 “중국은 터무니없는 국가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 게임이 가능하다. 한편, 한국은 단지 어리석은 국가”라는 말을 했다고 일본의 한 잡지가 보도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비분강개의 여론이 들끓었다. “왜구의 후예 주둥아리를 봉해 버려야 한다.”, “전범 처벌이 제대로 안되어 아직도 허튼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분노의 글들이 인터넷을 날라 다녔다.
중국은 터무니없지만, 한국은 어리석다.. 무슨 말일까?
중국 정부는 일본을 다룰 때 이분법을 취한다. 즉, 과거 군국주의 전쟁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소수 파쇼 군국주의자들이고 일본 인민들은 피해자라며 양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연안(延安)리포트’라는 게 있다. 1944년 7월 對적국 프로파간다와 심리전을 담당하는 미국의 전시정보국(OWI) 소속 군사시찰단(딕시 미션)이 공산당의 본거지 연안을 방문한다. 이들은 연안에 머물면서 당시 중국 공산당이 일본국 포로를 전향시켜 협력세력으로 삼기 위한 선무공작의 노하우와 실태에 대해 보고서를 남긴다. 그것이 연안리포트이다.
중국 공산당은 당초 일본군을 포로로 잡으면 그냥 죽였다. 그런데, 죽이면 죽일수록 일본군의 저항이 더 거세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였다. 공산당은 일본군의 막강한 전투력이 단순히 질 좋은 무기와 훈련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국가에 대한 충성심 등의 심리적 측면이 있음을 간파한다. 마침 소련의 프로파간다 전술에 대한 지침이 중국 공산당에도 전파되자, 중국 공산당은 생각을 고쳐 먹는다. 일본군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일본군 병사들을 세뇌시켜 공산당의 동지로 만들어 일본군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산당 특유의 사상 세뇌공작에 들어간다.
그러한 전술은 1938년경부터 시작된다. 시작은 전선에서의 선무공작이다. 토치카 등에 쳐박혀있는 일본군 병사에게 일본어로 크게 소리친다. “일본에서 혁명을 일으키자!”, “천황제를 타도하자!”, “군국주의자를 타도하자!” 등등. 삐라도 뿌리고 메가폰 방송도 한다. 그러면서 일본군이 포로로 잡히면 처형하지 않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석방한다. 석방전까지 정중하게 대하면서 “이 비참한 전쟁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일본 군벌과 재벌에 있으며 일반 병사들은 피해자들일 뿐이다. 공산당군은 중국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을 뿐이며, 일본 병사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연안에는 일본군 포로의 사상교육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다. 일본군 포로들은 이곳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아비판을 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천황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에 대한 비판의식을 함양하게 된다. 성과는 꽤 컸다. 일본군 포로의 상당수가 공산주의에 동조하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저항감을 갖게 되었으며, 팔로군에 의용군으로 참여하겠다면서 일본인민해방연맹에 가입하는 사례가 속출하였다. 이러한 공산당의 세뇌공작은 군사참관단의 단장이었던 피셔 중령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이 아무리 세뇌공작을 해도 꿈쩍 않던 일본군 병사들이 스스로 천황을 부정하고 일본의 반대편에 서서 군국주의 타도의 첨병이 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이러한 ‘군국주의자 vs 일본 인민’ 이분법은 대일 외교정책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일본과 정치외교적 문제가 있을 때 중국은 일본 전체를 싸잡아 공격하지 않는다. 핀포인트로 몇몇을 특정해 공격하고, 그들이 중일우호관계를 망치는 원흉이며, 중국은 어디까지나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원한다는 메세지를 발신한다. 대표적으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은 A급 전범 합사 문제를 비판의 논거로서 분명히 한다. A급 전범이 합사되기 전인 1978년 이전의 총리 참배에 대해서는 항의를 하지 않다가, 1985년 나카소네가 참배하자 “중일관계를 파괴하고 무고한 인명살상에 책임이 있는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의 총리 참배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A급 전범이 분사된다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천황의 전쟁책임론에 대해서 NCND 입장을 견지한다. 실상이 명백하지도 않은 사안에 대해 일본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은 되도록 터치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나쁜 것은 군국주의자들이지, 일본 인민이 아니다”는 원칙은 지금도 중국의 대일외교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보수, 우파들은 중국의 이런 접근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일본을 쪼개고 분열시키며 갖고 놀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심전심으로 서로 국내사정에 따라 적절하게 밀당하면서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대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일단 무조건 반일이다. 이분법이나 전략적 접근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만약 한국 정부가 “A급 전범이 분사되면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해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국 정부는 답을 못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야스쿠니에 대한 입장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그 논리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여론은 A급 전범이고 뭐고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참배에는 무조건 반대한다는 것인데, 정부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문제 해결의 여지를 남겨두고 반일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지만, 한국은 문제해결의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고 여론이 형성되고, 정부가 이에 등 떠밀려 공세를 취하는 형국이다. 그 결과, 중국은 일본내에서 중국편을 들어줄 세력을 확보하며 전선을 형성하는데, 한국은 그나마 편들던 사람들도 고립시키며 악순환을 만든다.
이것이 아베가 말한 터무니없는 나라와 어리석은 나라의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까지 링크 기사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한 서론이었다. (서론이 본론보다 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항주 임정은 중국 공산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상해 홍커우 공원 폭탄 사건 이후 장개석은 임정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고 임정을 지원키로 마음을 먹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일경의 수색망이 좁혀오는 김구를 도피시키는 일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낸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에 따르면 김구가 일경에 의해 체포 위기에 처하자 장개석이 조직부장 천궈푸(陳果夫)에게 “김구를 보호하라”고 지시했고, 천궈푸는 상하이에 숨어 있던 김구를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으로 피신시켰다. 장개석은 김구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시진핑이 무슨 의도로 항저우 임정과 김구의 저장성 체류를 언급했는지 알 도리는 없다. 단순히 한국과 항저우와의 인연을 소개하기 위해 덕담으로 한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중국 공산당은 항저우 임정이나 김구의 저장성 체류에 도움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며, 그런 측면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국민당이건 장개석이건 다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자신들의 외교자산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이다. 생각해보면 장개석과 만나 항일만큼이나 ‘반공’을 얘기하던 김구를 공산당이 추켜세우는게 이빨이 가려운 일 아닌가. 하지만 프로파간다에 능한 실용주의 중국 공산당에게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쪽에 있다. 시진핑이 건넨 말 한 마디에 난데없이 국내의 건국절 논란을 갖다붙여 견강부회하며 자중지란을 자초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自主를 외치지만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에만 부합하면 자기들이 먼저 외세에 놀아나는 모습이 보인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굳이 신중하고 전략적인 이분법을 쓸 필요도 없는 나라이다. 말 한 마디 던지면 알아서 쪼개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