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음식을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말이 ‘개미’다. 다른 지역에서는 잘 모르는 전라도 말이다. 그 지역에서는 이 말을 모르면 전라도 음식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으로 여긴다. 나는 송수권 시인의 글을 통해서 ‘개미’를 처음 알았다.
<그늘이란 말 아세요? / 맺고 풀리는 첩첩 열두 소리 마당 / 한의 때깔을 벗고 나면 / 그늘을 친다고 하네요 / 개미란 말 아세요? / 좋은 일 궂은 일 모래알로 다 씻기고 / 오늘도 남도 잔치 마당 모두들 소반에 둘러앉아 / 맛을 즐기며 / 개미가 쏠쏠하다고들 하네요 (송수권의 시 ‘그늘’ 전반부)>
시인에 따르면 개미는 ‘그늘이 있는 맛’이다. 뜻을 굳이 새기자면 숙성(발효)된 곰삭은 맛, 깊은 맛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개미’라고 말해야 전해지는, 본능에 가깝게 의식 밑바닥에 각인된 아련한 추억 같은 향토미각이다. ‘엄마 손맛’이 사람마다 다르고,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처럼, 그쪽 사람들끼리는 ‘개미’라는 말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맛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개미는 이런 맛이겠구나, 막연한 깨우침을 얻고 본바탕을 터득한 곳이 전남 토속음식점 신안촌(서울 종로구 사직로12길 8/전화 02-725-7744)이다. 지하철 경복궁역 근처 내자동, 음식점이 밀집한 골목 안에 있다. 음식 하나 하나가 개미가 있어 호남인들이 ‘환장을 하고’ 좋아한다는 이 집 대표음식은 낙지꾸리(5만5000원)와 홍어삼합(칠레산 7만7000원)이다. 점심 식사로는 낙지연포탕·매생이탕·홍어된장국(각 1만5000원), 낙지꾸리·홍어삼합 정식(각 2인 7만7000원)이 있다. 영란메뉴 2종(3만원, 2만5000원)도 새로 꾸렸는데, 원가에 비해 계산이 닿지 않아 갈팡질팡 하는 중이다. 탕을 시켰다고 탕과 밥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전남 토속음식이 그럴 수는 없다. 개미가 쏠쏠한 반찬 8~9가지가 함께 나온다. 모두가 맛이 깊어 안주가 될 만한 찬들이다. 산해진미가 상다리 휘도록 차려지는 저녁 코스요리는 1인 7만7000원(부가세 별도)이다.
“그게 아녀요. 낙지호롱이는 작은 낙지로 만들어 호롱(의성어 ‘호록’을 말하는 듯) 먹는 거고, 낙지꾸리의 ‘꾸리’는 큰 낙지를 ‘감는다’는 뜻이지요(둥글게 감아 놓은 실타래를 ‘실꾸리’라고 하는 걸 연상하면 이해가 된다). 낙지꾸리는 아주 큰 잔치에 상 고일 때 올리던 고급음식이어요.”
낙지꾸리는 하는 집이 몇 안 되는, 흔치 않은 별식이다. 내장만 제거한 중간 크기 산 낙지를 통째로 참기름·마늘·설탕(또는 물엿) 약간 넣고 속이 깊은 프라이팬에서 센 불에 빨리 돌려 불맛을 입힌 요리이다. 과정은 단순하지만 겉은 익고 속은 부드럽게, 절호의 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낙지 요리 중 외국인도 거부감이 별로 없을, 가장 세련된 음식이 아닐까 싶다. 영어로 ‘small octopus’라고 썼다고 세발낙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영어에는 낙지라는 단어가 따로 없고 ‘작은 문어’라고 쓴다.
여성잡지 나오면 음식 기사부터 봤다. 박정희 시대 혼·분식 장려할 때 식빵·김치 강습 열리면 엄마랑 꼭 수강하고 집에 와 반드시 해봤다. 50년 전 직장 다닐 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요리사가 해준 카레라이스·하이라이스를 처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하도 맛있어서 요리사를 찾아가 방법을 알아봤다. 그날 집에 가서 설명 들은 대로 루(Roux; 서양요리 소스나 수프를 걸쭉하게 하기 위해 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를 만들어 아버지께 해드렸더니 맛있다고 했다. 신이 나서 또 하고, 또 하고, 집에 카레 향이 진동했다. 밀가루 5~6포대나 마른국수로 뽑아다 놓고 틈만 나면 별의별 음식을 다 했다. 책을 봐도 만날 요리책만 보고, 그게 취미였다. 결혼하고 시댁 식구들에게도 많이 해서 드렸다. 맛있다고 칭찬하니 더하게 되더라.”
개업 전에는 식당 주방 구경도 해본 일이 없었다. 맛있기만 하면 다 와서 먹어주는 줄 알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개업만 한 거다. 하도 허둥대니까 불쌍해 보였는지 어느 손님이 어떤 집에 한번 가보라고 얘기를 해줬다. 삼일빌딩(현 산업은행 종로지점) 뒤 한옥에 있던 식당이었다. 찾아가 주인한테 얘기하니 홀에서 일을 하라고 했다.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 주방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사정해 남의 식당 주방을 처음 구경했다.”
주방 일 하나도 이토록 버거운데 옥호도 시비거리가 됐다.
시댁 고향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같은 전남 신안군 하의면이라 이름을 ‘신안촌’이라고 했다. 그때는 모 종교단체에서 하는 ‘신앙촌’ 간판이 흔했다. 신안군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신앙촌 같으니 바꾸라고 주변에서 성화가 대단했다.”
이 무렵 DJ를 신안촌으로 이끈 사람은 죽마고우인 목포 출신 재일동포 사업가 김종춘씨였다. 이금심 여사 이모부의 형님인 그는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어 DJ를 오래 후원했다. DJ가 도쿄에서 피랍됐을 때는 각계로 소식을 알리고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조용 조용 국내를 오가던 그는 공항에 도착하면 신안촌으로 바로 와 DJ를 만났다. 호텔로 갈 때면 음식을 싸오게 해 DJ와 함께 먹었다. 심부름을 한 사람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였다. 이후 DJ는 종신 단골이었다.
DJ가 어떤 말을 해주더냐고 물으니 주인은 “처음 와서 ‘신앙촌인 줄 알았더니 신안촌이구먼’ 하더라며 ‘어려워도 참고 베푸는 마음으로 하면 나중에 큰 빛을 볼 테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식가인데 특히 낙지, 보리순 넣고 끓인 홍어국, 매생이국을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신안촌 음식 맛의 원천은 좋은 식재료다. 주인이 특별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신안·무안·목포 등 특산지에서 기차 수하물로 보내면 서부역에서 찾아다가 음식을 만들었다. 수하물 제도가 없어진 다음부터는 경동시장에서 매일 구입한다.
경동시장 도매상들은 점포별로 지역 농협과 연결이 돼 있어서 개인이 산지 직거래하는 것보다 같은 품질이면 값이 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경동시장에 가서 장을 봐 돌아오면 7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운수업을 했던 친정아버지께서 ‘운전만은 하지 마라’ 당부했는데 직접 고르지 않으면 직성(直星; 타고난 성질이나 성미)이 풀리지 않아 칠순이 넘었지만 직접 차를 몰아 장을 본다. 남보다 먼저 사야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어 일찍 간다. 가서 ‘비싼 거, 좋은 거 주세요’ 한다. 비싼 거 사려고 일찍 간다. 약점·허점 안 보이려면 내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죽어서 하나님(그는 기독교인이다)이 ‘어떻게 살았냐’ 물으면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거다.”
시절 좋을 때는 수백 근의 고추를 직접 말리고 김장도 1000포기씩 담갔다. 이 글을 쓰려고 파일을 뒤져보니 2006년 11월 17일 음식점 앞 골목을 점령하고 신안촌 김장하는 사진들이 나왔다. 요즘도 김장을 그렇게 하는지 물었다. “손님도 줄고 해서 올해는 600포기만 할 생각이다. 일산에서 계약재배한 배추를 쓴다. 보관식품 저장고도 일산에 있어서 이제 가게 앞에서 김장 안 한다.”
음식점 운영 모토가 ‘즐거움을 팝니다, 행복을 팝니다’예요. 모두 즐겁게, 맛있게 먹으면 행복하잖아요. 하루가 즐겁잖아요. 그래서 음식에 정성을 쏟아요. 내 음식 드신 분들이 모두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문 여는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일요일은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