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이드

위에서 보고 아래서 봐도 壯觀

산야초 2016. 12. 22. 00:46

위에서 보고 아래서 봐도 壯觀

지친 몸과 이국의 문화에 익숙해질 무렵 여행은 끝이 난다.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이,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여행의 끝을 일러준다.
코린토스는 사도 바울이 일찍이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린도'라는 곳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관문이기도 하다.

  • 백가흠 소설가
  • 편집=뉴스콘텐츠팀  

    입력 : 2016.12.15 04:00

    [백가흠의 그리스기행] 코린토스

    그리스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행이 오래 지속되면 일상이 되고, 하루하루 일상이 모이면 하나의 인생을 만든다. 지중해의 여름은 강렬했고 뜨거웠으며 여유로웠다. 여름은 긴장감 넘치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그 모든 날의 햇빛은 평온했다. 떠돈다는 것과 머무는 것의 차이에 대해 골몰하고 남겨진 것들과 기다리는 것들을 떠올리며 쓸쓸함이 더해진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그런가 싶었다. 돌아가야만 할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돌아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지친 몸과 이국의 문화에 익숙해질 무렵 여행은 끝이 난다.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이,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여행의 끝을 일러준다.

    총길이 6.3㎞의 거대한 코린토스 운하가 절벽 밑을 흘러간다. 폭은 25m 정도. 배를 타고 유람하거나 운하 위쪽으로 보이는 다리 위에 올라 내려다보거나 아예 번지점프를 할 수도 있다. / 백가흠
    총길이 6.3㎞의 거대한 코린토스 운하가 절벽 밑을 흘러간다. 폭은 25m 정도. 배를 타고 유람하거나 운하 위쪽으로 보이는 다리 위에 올라 내려다보거나 아예 번지점프를 할 수도 있다. / 백가흠

    여행 패턴은 언제나 비슷했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숙소를 구하고 근처에 일하기 좋은 카페에서 오후를 보냈다.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한국의 정치 이슈를 탐색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숙소 앞 교회에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 주를 쉼없이 일하고, 다음 한 주는 어딘가로 떠났다. 그런 반복이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만들어냈다. 내게 특별한 날은 조금 오래 산책을 하거나 바라만 보던 지중해에 몸을 담가보는 것 정도였다.

    어느새 한국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한 주가 남았고 나는 아직 크레타섬에 있었다. 일행을 크레타섬에 남겨두고 나 혼자 배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여행이 길어지면 여행의 정리도 길어지기 마련이다. 막상 빈집에 혼자 있으니 쓸쓸했다. 지난 여러 해의 일상이 그와 같아서 나는 좀 놀랐다. 아침부터 나는 카메라를 들고 아크로폴리스 주변의 아주 익숙한 골목과 오모니아 시장 근처를 돌아다니곤 했다. 혼자 있으려고 일찍 섬을 떠나왔는데, 나는 아테네에서 일행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함께가 아니니 모든 게 즐겁거나 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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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국립정원./백가흠

    하루는 사이클라딕미술관(Museum of cycladic art)을 향해 걸었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인 아이웨이웨이의 전시를 보러가는 중이었다. 숙소가 있는 근대 올림픽 경기장 근처에서 미술관을 가려면 궁을 비롯해 정부 관료 공관이 있는 국립정원 뒤편을 가로질러야 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숲과 근사한 공관 사이로 난 길은 리카비토스 언덕을 향해 뻗어있었다. 총리 공관을 지키는 근위병의 교대 모습이 볼만했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서 있는 그들이 신기했다. 나는 노골적으로 근위병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곧 한 경찰이 와서 카메라를 보자고 했다. 나는 못 알아듣는 척 황급히 자리를 떴다.

    사이클라딕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내친김에 근처 국립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엔 엘 그레코의 그림이 여러 점 있었다. 그의 그림을 스페인에서 본 적이 있었고 몇 년 전 그리스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그리스엔 스페인으로 가기 전 초기작들이 주로 남았는데 그림을 잘 볼 줄 모르는 내 눈에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것 같아서 그저 신기하기만 했고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마음을 놓이게 하는 효과도 있어서 하루를 꼬박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립미술관은 공사 중이었다. 실은 공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보다 방치된 느낌이었다. 전시하던 그림들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배드민턴 경기장에 있다고 해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보니 국립미술관 건물은 독일에 넘어간 듯했고 엘 그레코 그림을 비롯한 작품들은 임시로 배드민턴 경기장에 전시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가 처한 현실은 이런 경우에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국가가 가난하면 자신들의 자랑스럽고 구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일도 쉽지 않게 된다. 예상보다 일찍 귀가하는 길, 오래된 그림들이 상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곧 크레타에서 일행이 돌아왔고,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고민했다. 대부분은 쇼핑이나 가보지 못한 아테네의 골목을 사진에 담으며 보냈다. 이젠 정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한 조바심마저 들었다.

    코린토스 지도

    마지막 여행지를 코린토스로 정했다. 동쪽 해안가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부자들의 아름다운 주택들이 즐비했던 것과 달리 코린토스로 향하는 남서부 해안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장들과 화물선과 큰 배가 드나드는 항구가 많은 것도 그랬고 바다가 커보이는 것도 이전에 보았던 바다와는 달랐다. 코린토스는 사도 바울이 일찍이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린도'라는 곳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관문이기도 하다. 본토에서 반도로 이어지는 이곳에 운하를 만들고 위에 다리를 놓았다. 이제 그곳은 엄연히 섬이 된 것이 맞았다. 이곳의 운하는 아래에서 보나 위에서 보나 거대했고 장관이었다. 배를 타고 한 시간여 운하를 지나며 구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바다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마치 강처럼 비스듬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시각적인 착각이 일었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바닷물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 아름다운 풍경과 햇빛을 두고 떠나는 마지막 하루가 천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 코린토스 운하

    코린토스 만과 에게 해 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하는 운하. 최초의 작업은 기원전 7세기쯤 시도됐고, 이후 카이사르 등이 이어받았으나 결국 19세기가 돼서야 완공됐다. 봄~여름엔 다리 위에 번지점프대가 운영된다